북부론 상 조세프 크뤼의 거장, 도멘 피에르 고농을 방문했다.
아펠라씨옹 상 조세프는 북부론의 9개 크뤼(마을) 중 가성비가 좋기로 유명한 곳이다. 시라의 여왕 코뜨 호티와 파워풀한 시라의 대명사인 코르나스 마을 사이에 위치한 상 조세프는 론강을 사이에 두고 시라의 왕 에르미타쥐를 마주 보고 있다. 상 조세프에서는 화이트와 레드 둘다 생산하는데 화이트 와인은 마흐산과 루산 품종을 섞어 만들고 레드 와인은 시라에 화이트 품종을 10%까지 섞어서 만들 수 있다.
약속 시간에 도멘에 도착하니 고농 형제 중 큰 형인 장 고농 씨가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 우리를 맞아주었다. 피에르 고농은 상 조세프에서만 10여 헥타르의 밭을 경작하고 있다. 올리베 마을에서 2헥타르 규모의 화이트 품종을, 오베흐 마을에서 8헥타르의 시라 품종을 재배하고 있다.
<피에르 고농>이라는 도멘 이름은 현재 와인을 운영하고 있는 고농 형제의 아버지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2차 대전 후 아버지 피에르씨는 할아버지가 남긴 작은 땅에서 포도 농사를 시작했다. 처음엔 남들처럼 수확한 포도를 네고시앙에 넘겼다. 갈수록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포도 판매가 힘들어지자 1964년, 아버지 피에르 씨는 상 조세프 안의 모브Mauves 마을에선 처음으로 도멘 <구스타브 쿠흐소동>과 더불어 설비를 확충하고 도멘에서 직접 양조 및 병입을 시도했다. 그리고 80년대말부터 그의 아들들 - 피에르(작은 아들) 및 장(큰 아들) 고농 씨가 합류하여 현재까지 이어가고 있다. 그 중에서도 아들 피에르 씨가 농업 학교에서 공부를 마친 이듬해 출시한 1989년 빈티지가 현재 그들이 추구하는 와인의 의미 있는 시작점이었다. 2004년부터는 본격적인 유기농 농법을 실험하고 2011년, 비오 인증 협회의 에코세흐트Ecocert 마크를 획득하였다.
< 사진 1. 피에르 고농의 오베흐 포도밭 >
도멘에 도착하자마자 차를 타고 오베흐 마을로 이동해 시라 포도나무 밭을 둘러보았다. 피에르 고농은 일 열심히 하는 도멘으로 지역에서도 유명하다. 밭이 어찌나 깨끗한지 손님 맞이용으로 대청소한 집을 방문하는 듯했다. 좋은 와인을 위해서는 각 단계가 다 중요하지만 특히 땅이 가장 중요하다고하신다. 말끔하게 갈아놓은 밭은 발자국 내는 것 조차 미안해서 뒤꿈치를 들고 다녀야 할 것만 같았다. 땅이 숨을 쉬기 위해 잡초를 제거하고 밭을 갈아주는 게 중요한데 35 - 40%는 말을 이용하고 나머지는 손으로 일일이 쟁기질을 한다고한다. 천천히 걸으면서 설명하시는 중간에도 눈에 거슬리는 포도 나무 가지들을 맨손으로 뚝뚝 잘라내신다. 결벽증이 있는 집 주인이 흠잡을데 없는 집을 쉴 새없이 쓸고 닦는 폼이다. 한 두 달 내에 가지가 길게 올라오면 옆 나무와 연결해서 높게 아치형으로 묶어주는데 보기에 예쁘기도 하고 두 나무에서 올라오는 에너지를 연결해주기 위함이란다.
건너 편의 이웃 포도밭은 무릎까지 잡초가 무성해서 한 눈에 봐도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참 안타까운 일이지요.” 이웃은 밭일을 거의 하지 않는단다. 다들 각자의 방식이 있겠지만 이 좋은 땅에서 저런식으로 포도를 키운다고 한숨을 쉬신다.
도멘으로 돌아와서 본격적으로 테이스팅을 시작했다. 배럴 테이스팅 3종 및 병 테이스팅 5종을 했다.
< 사진 2. 환하게 웃는 장 고농 씨 >
1. 샤슬라 Chasselas, 2017(배럴 테이스팅), 화이트
100년 이상 된 포도나무에서 만든 퀴베이다. 원래 샤슬라는 단순한 테이블 와인을 만드는 품종인데, 이 집에선 집중력 좋은 감귤류 향, 묵직한 산도에 덩치가 있는 전혀 다른 모습이어서 놀랐다. 단일 품종으로 출시하기 보단 레드 와인의 블랜딩 용으로 사용한다.
2. 레 올리베 Les Oliviers, 2017(배럴 테이스팅), AOC 상 조세프, 화이트
마흐산 80%, 루산 20%를 섞어서 만든 화이트 와인이다. 묵직한 구조감에 기름진 질감이 돋보인다. 파워풀한 감귤류, 향신료향이 잘 어우러진다. 미세한 감귤류 껍질 같은 쓴맛이 남는다.
3.상 조세프 Saint Joseph, 2017(배럴 테이스팅), AOC 상 조세프, 레드
도멘 피에르 고농의 시그니쳐 퀴베다. 붉은 베리류 과실향이 참 좋다. 견과류 향, 미세한 허브 향에 자글자글 귀여운 탄닌이 혀에 남는다. 아직 숙성 중이라 특유의 산소가 부족한 향이 나지만 내년 봄 병입 후의 모습이 한껏 기대된다. 25년 만에 처음으로 포도 전체를 사용하여 양조 중이라고 하신다.
4. 일 페레 Iles Feray, 2016, 레드, 뱅 드 프랑스 Vin de France
일 페레는 <뱅 드 프랑스 등급>으로 이 집 레드 와인 중 기본 퀴베이다. 언덕 위의 포도밭보다 질이 낮은 언덕 아래 도로변 혹은 평지에서 만든 와인이다. 상 조세프 안에 있긴 한데 퀄리티가 달라서 낮은 등급으로 출시한다. 붉은 꽃 향, 붉은 과실 향과 함께 시원한 산도가 잘 어우러지고 스모키한 향신료 향이 인상적이었다.
5. 상 조세프 Saint Joseph, 2016, 레드
한껏 시라스러운 모습을 뽐낸다. 제비꽃 향, 섬세한 붉은 과실향에 탄닌이 부드럽게 넘어간다.
확실히 기본 퀴베인 일 페레보다 집중력이 좋다. 배럴 테이스팅했던 2017년 비해서는 약간 까칠하면서도 직선적이고 딱 부러지는 모습었다.
6. 상 조세프 Saint Joseph, 2001, 레드
2001년은 서늘했지만 꽤 좋은 해였다. 17년이나 된 와인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산도도 좋고 과실 향도 살아있었다. 충분히 숙성되어 부드러워진 탄닌이 아름다웠다.
7. 레 올리비에 Les Oliviers, 2016, AOC 상 조세프, 화이트
노란 과실 향, 감초 향이 지배적이다. 풀바디에 짭쪼름한 미네랄리테, 고소한 견과류 향과 함께 미세한 쓴맛이 난다. 은은한 나무향은 루산의 특징이라고 한다.
8. 레 올리비에 Les Oliviers, 2011, AOC 상 조세프, 화이트
잘 익은 사과, 살구 향, 엄청 높은 산도, 뜨거운 돌에서 나는 화한 미네랄리테가 느껴진다. 굉장히 복합적이면서 동시에 밸런스가 좋다. 7년 묵은 와인답지 않게 아직도 파릇파릇하다. 한 1-2년 더 기다리면 더 맛있어 질 것 같다고 하신다.
배럴 테이스팅을 제외하고는 원래 3병이 준비되어 있었는데 중간에 자꾸 어디 가셔서 에티켓도 없는 와인을 들고 와서 오픈하신다. 참 인심 좋다.
다른 도멘과 비교해서 피에르 고농의 차별점이 뭐냐고 물으니 마음을 다해 일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 단순히 와인을 만든다기 보단 예술을 한다고 생각한단다.
최근 몇년 사이에 도멘 피에르 고농 와인의 가격은 두배 이상 뛰었다. 더 높은 가격을 불러도 구하기가 힘든 실정이다. 갑작스런 유명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물었다. 80년대부터 같은 방식으로 와인을 만들어 왔는데 이제서야 유명해지니 얼떨떨하면서도 고마운 일이라고 대답하신다. 이제 나이가 들어 현역에서 물러날 때가 다 되어가는데 이제라도 알아주니 다행이란다.
도멘 유명세를 이용해 밭을 추가 구매해 생산량을 늘리고 싶지는 않단다. 이제껏 하던대로 동생과 함께 열심히 맛있는 와인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한다. 오, 근데 강 건너 에르미타쥐에 괜찮은 밭이 나오면 그건 고민해볼 것 같다며 웃으신다.
와인을 만들기 위해 하는 모든 작업은 아름다움을 완성해 가기 위함이라는 장 팬. 그의 얼굴에 깊게 팬 주름, 굽은 등 그리고 깡 마른 몸이 얼마나 깐깐하게 와인을 만들어 왔는지 말해주는 듯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와 대조를 이루는 그의 선한 눈빛은 아이 같이 빛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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