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의 프랑스이야기

테오가 걸으며 이야기 하는 서사시와 같은 프랑스 - 옹플뢰르(Honfleur)

by eknews02 posted May 2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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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가 걸으며 이야기 하는 서사시와 같은 프랑스 - 옹플뢰르(Honfleur)



"네가 옹플뢰르를 보고 싶다고 했지 그리고 함께 옹플뢰르를 보았지."

- 1968년 자끄 브렐의 샹송 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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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느강 좌안의 옹플뢰르와 우안의 아르플뢰르Harfleur는 쎄느강 하구를 지키는 두 도시이다. 옹플뢰르는 항구를 향해 웅크린 모습이며, 모래언덕이 끝나는 초원의 경사지에 건물이 밀집되어 있다.


이 경사지에서 하구의 전경과 쎄느강 우안의 백색절벽, 아울러 하구의 산업단지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옹플뢰르는 도시가 세워진 이래 항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발전했다. 중세의 군사항구로, 16세기 이래 탐험가들의 정박항으로, 신대륙 발견 이 후 18세기에 이르기까지 상업항으로, 해적의 본거지 등으로, 다양한 항구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오늘 날 상업과 어업, 그리고 관광으로 알려진 도시이다. 물론 쎄느강 하구의 풍광과 빛으로 150년 전부터 화가들의 만남의 장소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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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고기잡이 항구였던 옹플뢰르는 13세기 외곽에 성벽을둘러친다. 백년 전쟁당시 중요한 거점으로 1346년 영국의 에드워드 3세가 점령하나 1360년 브레띠뉘 협약Traité de Brétigny으로 1369년 철수한다. 


이 후 샤를르 5세는 옹플뢰르의 수비를 강화하고 비옌느Jean de Vienne를 사령관에 임명한다. 1418년 영국군의 침략을 받았으나 7년후 영국의 샌드위치Sandwich를 공격, 상당량의 전리품을 획득하였다. 현재 두 도시는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 


도시 재건과 방벽 강화, 군함 제조, 상업과 해외 원정에 몰두한 옹플뢰르는, 1503년 곤느빌Gonneville의 브라질 상륙과 드니J. Denis의 뽀르또 프랑세Port-aux-Français 도달 이후 라브라도르Labrado와 뉴펀들랜드Terre-Neuve를 프랑스령으로 점유한다. 


프랑스가 21세기 전 세계에서 가장 넓은 바다를 차지하게 된 것은, 바로 이 작은 항구 마을에서 시작된 것이다. 1517년 프랑스와 1세의 르아브르항의 개설로 항구 경쟁이 시작된다. 


앙리 4세는 1590년, 1594년 2차에 걸쳐 구교도와 신교도로 분리된 옹플뢰르를 포위한다. 

17세기 이후 원정을 재개, 뉴펀들랜드의 대구잡이 원양과 피혁거래를 성행시켰다. 


쇼벵Chauvin과 뒤뽕-그라베Dupont-Gravé에 이어 1603년 샹쁠렝Samuel de Champlain(1574 - 1635)이 카나다로 출항, 1608년 퀘벡Québec을 세웠다. 


옹플뢰르는 깔바도스의 해안 마을로 우안의 르 아브르 항구와 마주하고 있는데, 20세기 말에 건설된 노르망디 대교로 연결되어있다. 인구 7913명(2012년)이다.


옹플뢰르 항구는 어항(새우, 쟉끄대합, 가자미, 고등어, 대구)과 상업항으로 매우 활기차다. 동쪽 항과 까르노 항은 목재, 곡류, 점토 등 물류를 교역한다. 세느 강변에 세운 2개의 선창은 최대 9만톤급 선박을 수용할 수 있다. 르아브르와 옹플뢰르는 노르망디 대교로 연결면서 옹플뢰르는 바쓰노르망디의 상공업의 발전에 참여하고 관광사업이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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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플뢰르에는 정돈된 도시의 모습이나 대형 건축물은 없지만 바다를 향해 펼쳐진 건축물들의 독특한 모양과 아름다움으로 17-18세기의 노르망디 분위기를 그 대로 접할 수 있다.


뜨까뜨린느 부두(Quai Sainte-Catherine)에 늘어선 가옥은 해자 외곽에 지어졌던 것으로 외곽은쓰임새가 없어지자 1630년 해체되어 건축자재로 사용되었다. 지반이 높아 가옥의 정문은 높은편이다. 은빛을 발산하는 높고 낮은 집들과 천차만별의 건축자재(돌, 벽돌, 목골, 판암목골)는 일정 건축양식과는 거리가 멀지만 보는 이로 하여금 더없이 다양한 조화를 느끼게한다.


옛 항구는 전면이 짙은 푸른 색 편마암으로 덮여 있는 나무골격 가옥들이 늘어져 많은 예술가들이 찾아와 그렸다.


옹플뢰르파'École de Honfleur를 찾아온 예술가들로 귀스타브 꾸흐베Gustave Courbet, 으젠 부뎅Eugène Boudin, 끌로드 모네Claude Monet그리고 요한 종킨트Johan Barthold Jongkind등이 있다.


이 곳에서 후에 인상파라는 운동이 처음 나타났다고 한다. 

작가이며 이야기꾼 알퐁스 알레(Alphonse Allais)의 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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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작곡가 에릭 사티Erik Satie의 생가는 박물관이 되었다. 20세기 음악의 전설 사티를 만나려면 필수 일정으로 사티의 활동을 일목요연하게 보여 주는 사티 박물관을 찾아야 한다.


벤자멩 비올레Benjamin Biolay의 작사로 앙리 살바도르Henri Salvador 가 부른 옹플뢰르에서 죽는 다는 것은 너무 아름답다. 그건 거의 행복이지 그리고 너에게 어울려«  Mourir à Honfleur C'est joli tout plein. C'est presque un bonheur. Et ça te va bien » 은 프랑스와즈 사강에게 바친 샹송 가사다.


1984년 프랑스와즈 사강(Françoise Sagan)은 그의 책 "가장 귀한 추억에서"말했다.

" 옹플뢰르에 7월 먼지 가득한 큰 집을 세로 얻어 바닷가에 해수욕을 즐길 준비를 했었다. 하지만 선택의 기로에서 항상 바다는 악마의 편이고 도빌의 카지노는 열려 있었다."


<다음 호에 계속>


유로저널 칼럼니스트 테오  

Email: bonjourbible@gmail.com

홈페이지: www.emofrance.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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