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1. 도멘 보트 게일의 전경 >
프랑스 알자스 지방에서 최근 몇년 사이 혜성처럼 등장한 와인이 있다. 도멘 보트 게일 Bott-Geyl이다. 알자스 지역의 유명 레스토랑에 리스트 업 되고 프랑스 다른 지역의 도멘을 방문해도 아, 알자스에 와인 잘 만드는 그 집! 이라고 한다.
와인 라벨도 전통적인 알자스 와인과는 차별화된다. 호기심에 와인 샵에서 리에슬링 품종으로 한 병 사 마셔 봤는데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가격도 착하다. 궁금한 건 못 참으니 무작정 도멘을 방문해봤다.
도멘에 들어서자마자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 건장한 체격의 장 크리스토프 보트 Jean-Christophe Bott 씨가 반겨주었다.
도멘 보트 게일은 비오디뱅 Biodyvin이라는 협회에서 인증을 받고 비오디나믹 농법(Agriculture Biodynamique)에 열심인 도멘이다. 와인을 마시는 내내 어떻게 포도 농사를 짓고 와인을 만드는지 설명하시는데 굉장히 깐깐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장 크리스토프 보트 씨가 추구하고 있는 비오디나미 농법은 밭에 살충제, 제초제 등을 쓰지 않는 면에서는 유기농(비오) 농법과 흡사하지만 본질에서는 완전히 다른 농법이다.
비오디나미(Biodymanie)는 오스트리아의 학자인 루돌프 스테이너(Rudolf STEINER, 1861–1925)의 인지학에 영향을 받은 농법이다. 해와 달, 지구의 움직임을 따른 천체력을 이용해 농사를 짓고 와인을 만든다. 점성술을 믿고 자연의 에너지에 집중한다. 자생 가능한 하나의 유기체로서의 포도밭을 목표로 한다. 포도나무라는 단일 작물을 수십 년 재배하면서 황폐해지기 쉬운 땅을 지속 가능하고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밭에 질병이 생기면 동종요법을 사용해 땅 스스로 회복하기를 기다린다. 그렇게 수확한 포도로 만든 와인은 땅의 에너지를 충분히 표현하는 동시에 스스로 최고의 품질을 낼 수 있다고 믿는다.
도멘 보트 게일은 1795년에 만들어져서 1993년 장 크리스토프 보트 씨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다. 오늘날엔 6개 그랑 크뤼, 4개 리우-디를 포함해 15헥타르의 포도밭을 경작하고 있다. 2000년부터 유기농 농법을 시작하였고 2002년 부터는 비오다이나믹 농법을 접목하기 시작했다.
화학제품은 자연의 리듬을 깬다고 생각하여 살균제, 살충제, 제초제를 전혀 쓰지 않는다.
비오디나믹 농법의 핵심인 소뿔에 담은 쇠똥 퇴비를 밭 군데군데 묻어주어 겨울 동안 땅의 부식을 활성화하고, 꽃이 피기 전에 소뿔에 규소를 담아 땅에 묻어 잎의 광합성 작용을 촉진하고 꽃이 피고 건강한 열매를 맺도록 유도한다. 미생물의 다양성을 위해 쟁기질을 해서 밭을 갈아엎어 주고 봄, 가을로 유기농 비료를 뿌려준다. 어린 포도나무는 지면에 가까운 쪽의 뿌리를 잘라줘서 땅 깊숙이 내려가는 뿌리에 더 힘을 실어 준다. 적당히 밀도 감 있게 포도나무를 심어서 나무끼리의 경쟁을 통해 각각의 뿌리가 지하 깊이 뻗어 다양한 양분을 흡수하도록 한다.
기계를 쓰지 않고 손으로 포도를 수확하는데 수확 시엔 30kg의 바구니를 이용하여 양조장까지 이동한다. 보통은 밭에서 수확한 포도를 큰 트럭에 한꺼번에 담아 양조장으로 이동하는데 그러면 밑에 깔린 포도들은 으깨지면서 발효가 시작되거나 오염이 되어 와인의 품질이 나빠진다고 설명하신다. 발효에서 숙성까지 와인 주스를 옮길 땐 전기 펌프를 쓰지 않는다. 전기 에너지 대신 자연의 힘인 중력을 이용해 와인 주스를 이동할 수 있는 시스템을 설계하고 구축했다.
와인 양조도 결국은 이윤을 남겨야 하는 사업이니 병입 후 바로 출하해서 자금 융통에 집중하는 도멘이 많은데 그러면 안 된단다. 장 크리스토프 보트 씨는 병입 후에 반드시 6개월에서 1년 이상 셀러에서 병 숙성을 한다. 병에 옮겨 담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은 와인이 스스로 회복할 수 있도록 시간을 줘야한다고 하신다.
알자스의 모 유명 도멘을 갔을 때 도멘 보트 게일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열심히 와인을 만드는 집인데 너무 열심히 해서 탈이라고 한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되물으니 “너무 흠잡을 데 없이” 와인을 만들어 개성이 없다고 한다.
< 사진 2. 장 크리스토프 보트 씨 >
직접 방문해서 본 장 크리스토프 보트 씨는 강박증이 있는 사람 같았다, 아니 완벽주의자라고 해야 하나. 두어 시간 동안 14종의 와인을 시음하는데 몹시 열정적으로 와인에 대해 설명하신다. 작은 디테일까지 놓치지 않고 이야기하는 동시에 직원들에게 전화로 업무 진행 상황을 계속 확인한다. 저녁에 있을 비오디나미 세미나 준비도 신경써야 하고 학교가 끝난 아들은 누가 데리러 가는지, 아내는 도멘에 지금 들릴 건지 다른 일을 보러 바로 갈 건지 끊임없이 주변을 챙기는 모습이었다. 아마도 모든 걸 “너무 열심히” 할 수밖에 없는 성격 같아 보였다.
< 사진 3. 도멘 보트 게일에서 시음한 와인 >
장 크리스토프 보트 씨가 만든 와인은 과연 잘 닦아놓은 대리석처럼 반짝거렸다. 혀 위에서 미끄러지듯 목으로 넘어간다. 각각의 와인은 세련된 산도를 뽐내고 있었다. 자로 잰듯한 균형감, 섬세한 아로마와 함께 떼르호아가 잘 묻어나는 그의 와인들은 순수하고 깨끗했다.
문득 “너무 흠잡을 데 없는” 것이 아마도 도멘 보트 게일만의 개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박증이든 완벽주의든 간에 한 개인으로써는 상당히 피곤한 삶이겠지만 와인에 있어서만큼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재능이니 말이다.
임주희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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