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저널 167 – 그녀가 나를 치유했다
달리의 뮤즈이자 아내였던
갈라는 달리에게 어떤 사람이었을까?
달리와 갈라
달리는 "내 어머니보다, 내 아버지보다, 피카소보다도... 그리고 심지어, 돈보다, 갈라를 더욱 사랑한다. 그녀가 나를 치유했다"라고 말했다.
달리와 갈라
1929년 카다케스의 집에서
많은 이들을 초대한 가운데 달리는 운명적인 뮤즈, 갈라(본명은 엘레나 이바노브나
디아코노바(Elena
Ivanovna Diakonova)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당시 프랑스의
시인 폴 엘뤼아르의 부인이었다. 그러나 갈라는 달리의 열성적인
구애에 흔들려 연정을 품게 되었고, 결국 두 사람은 파리에서
달리의 개인전이 열리던 도중 동반 도주하여 홀연히 잠적했다.
이후 갈라는 1934년 폴 엘뤼아르와 이혼하고 1월 30일 달리와 결혼하게 된다. 이때 갈라는 40세, 달리는 30세였다.
Salvador Dali & Gala Eluard
이후 갈라는 달리의
작품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하게 된다. 또한 그녀는 달리의 자타공인 매니저 역할까지
하게 되었다. 그녀는 달리의 작품전시와
일정 조정에 매우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심지어 모든 전시장소
계약과 작품 판매는 모두 그녀의 손을 거쳐서 성사되었다.
살바도르 달리, Galarina, 1944-1945
때때로 그녀는 달리의
그림에까지 직접적으로 관여했다고 전해진다. 사람들은 달리는 갈라가
없다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까지 말했다.
달리와 갈라
그만큼 달리는 갈라를
매우 사랑했다.
살바도르 달리, Three Apparitions of the Visage of Gala,
1945
그는 오직 갈라만을
위해 발레 공연을 기획하고 무대를
제작하기도 했다.
달리와 갈라
갈라는 젊음에 대해
매우 집착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자신의 나이를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성형수술까지 했고, 또한 피부를 위해 고가의 화장품을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사실 달리의 아버지는
불륜 관계에서 시작되었던
갈라와 달리의 결혼에 대해 매우 반대했다. 그 와중에 그의 아버지는
달리가 프랑스 전시에서 '나는 그저 재미로 어머니의
초상화에 침을 뱉곤 한다’ 라고 인터뷰 한 기사를
읽게 되었다.
이에 달리의 아버지는
매우 화를 냈으며 그에게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했지만 달리는 거절했다. 결국 달리는 1929년 상속권을 박탈당했으며 또한 카다케스에 다시는 발을 들이지 말것을 요구받았다.
하지만 다음 해 여름, 달리와 갈라는 포르트리가트(Port-lligat)
해변에 작은 오두막을
사 들이는 것을 시작으로 몇년에 걸쳐 주변의 땅과 오두막들을 매입해 빌라를 건축했다. 이후 달리의 아버지는 달리와 아내 갈라를 차츰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찬란했던 전성기가
무색할 만큼 그의 말년은 비참했다.
살바도르 달리, A Fate of the Parthenon, 1960
(다음에 계속…)
유로저널칼럼니스트, 아트컨설턴트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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