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문건 모두 공개해 재판거래 의혹 밝혀야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과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설립에 부정적인 박근혜 정권을 설득하기 위해,
특정 사건 판결을 카드로 재판 거래 의혹이 불거지면서 사법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이 2015년 8월 박 전 대통령과의 회동 직전 법원 행정처가 작성한 ‘현안 관련 말씀자료’ 등의 문건에는 내란 선동으로 수감된 이석기 전 통진당 의원, KTX 해고 승무원 사건,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 긴급조치 피해자 배상청구 사건 등이 청와대에 협력한 사례로 적시돼 있다.
결국 재판에 정치적 고려가 개입된 것으로 의심을 살 수 있는 문건이 발견되고, 이에 전직 대법원장이 해명하는 상황 자체가 사법부의 신뢰 위기 그 이상을 상징한다.
특히 두 사람의 독대 뒤 작성한 문건에서, ‘양승태 사법부’가 숙원사업인 상고법원 도입의 반대급부로, 인권과 기본권 보호 차원에서 법원이 갖고 있는 검찰 통제 수단을 완화하거나 축소해주는 ‘영장 없는 체포 활성화 체포 전치주의 도입, (검찰이 구속 영장 기각에 불복하는) 영장항고제, 반테러법 등 공안사건에 디지털 증거능력 특례 인정’ 등 검찰이 원하는 제도와 ‘빅딜’을 검토한다는 내용까지 확인되었다.
대법원장의 ‘권한 강화’를 위해 법원의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기능마저 포기하려 했다는 비난과 함께, 법원이 ‘국정운영을 뒷받침한다’는 발상은 행정부와 사법부를 엄격히 분리하는 헌법의 삼권분립 정신에 도 위배되는 것이다.
또 법원행정처는 법무부 ‘회유책’으로 상고법원 신설에 대응해 법무부 제2차관(송무차관)직 신설해 법무부 조직과 기능을 확대, 상고검찰청 신설과 함께 추진 시 최소 5명의 검사장 자리 증설 가능, 법무부가 원하는 특정 유형 사건을 필수적 대법원 심판 사건으로 추가 등 검찰 고위직을 늘리는 방안마저 검토했다는 것이다.
세월호 사건에 대해서는 형사재판 경험이 없는 행정처 출신 부장판사에게 맡기는 안을 제시하며 “사법부가 세월호 사건에 대해 관심과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는 대외적 홍보효과 극대화 가능”이라고 분석해 놓았다.
입맛에 맞는 재판부를 지목한 것도 모자라 국민적 비극인 세월호 사건을 대외 홍보의 기회로 삼은 것이다.
이와같은 문제의 문건 추가 공개 요구에 법원행정처는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일부 문건만 골라 찔끔찔끔 내놓고 있어 법원의 자체 조사엔 한계가 있음을 드러내는 것으로, 법원의 자체 판단에 맡길 것이 아니라 강제 수사를 통해서라도 문건 전체를 공개해 국민이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
이번에도 특별조사단 조사 대상이었던 410건을 모두 공개하라는 요구가 커지자 법원행정처는 5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파일 98건만을 자체적으로 선별해 공개했음에도 충격적인 내용이 상당히 포함돼 있다.
게다가 ‘조선일보 보도요청사항, 조선일보 1면 기사 활용, 민변 대응 전략, 대한변협 압박방안 검토, 일선 판사회의 무력화 ’ 등 민감한 제목의 문건은 이번에도 공개하지 않았다.
5일 열린 사법발전위원회에선 강제수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우세했던 것으로 알려졌고, 각 지법의 단독·배석판사들도 잇달아 '성역 없는 수사 촉구'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회의와 서울고법 판사회의 등 중견급 법관 회의체는 정족수 미달로 의결을 못 하거나 수사의뢰보다 대책 마련 촉구에 그쳐 주권자이자 법률소비자인 국민의 정서와 요구에는 한참 멀다는 지적이다.
결국 법원이 그동안 재판을 흥정의 대상으로 삼으며 스스로 사법독립을 침해왔음이 드러나고 있음에도, 법관들이 특권의식과 ‘조직보호’ 논리에 갇혀 사법부의 존립 근거를 흔드는 재판거래 의혹 등에 눈감는다면, 법관의 양심과 법원의 신뢰를 되찾는 일은 더욱더 요원해져 사법부가 불신받는 혼란으로 국가와 국민 모두가 불행에 빠질 수 밖에 없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