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세상 읽기 (14): 특별시민
인생은 무수한 선택을 해야 한다. 삶 자체가 선택의 연속이기도 하다.
그 선택에 의해 비단길을 걷기도 하고 가시밭길을 걷기도 한다. 인생의 뒤안길을 돌아보면 잘 한 일 보다는 후회스런 일들이 더 많다. 물론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다행인 것은 뒤돌아 볼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더 성숙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평생 뒤돌아 볼 수 없는 사람도 이 땅에 많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뒤돌아보는 것은 자기반성이며 또한 자기성찰이다.
반성하고 성찰할 수 있다는 것은 같은 차원에 머물러 있다면 반성할 수도 성찰할 수 없게 된다. 인간은 결국 자기성장만큼 선택할 수 있게 된다. 어린아이는 어린 아이 수준에 맞는 선택을 하는 것이며, 성숙한 어른은 그에 걸맞은 수준의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 현실 인생은 과거의 선택에 대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비록 어리석은 선택이라 여겨질지라도 그것을 지탱해 나가야 한다. 잘못된 선택이라 하여 현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을 만큼 조금씩 자신의 삶을 바꿔야 한다.
어렸을 때 소나무 한 그루가 담벼락을 침범해 들어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집은 더 위태로웠다. 아버지는 밧줄로 소나무를 잡아 당겨 단단한 말뚝을 막고 그곳에 묶어 두었다. 그러면서 조금씩 당기는 일을 쉬지 않으셨다. 몇 해가 지나자 소나무는 담벼락을 피해서 보기 좋게 성장했다.
수적천석(水滴穿石)이란 말이 있다. 힘없고 나약한 물방울일지라도 끊임없이 떨어지면 결국엔 세상에서 가장 강한 바위라 할지라도 매끄러운 구멍을 낼 수 있다는 의미다.
담장을 침범하는 소나무를 하루아침에 담장 옆으로 휘게 할 순 없다. 조금씩 쉼 없이 힘을 가할 때 소나무에 무리 가지 않고, 담장에도 무리가 가지 않으면서 아름답게 휘어져서 오히려 담장을 보호할 수 있게 됨을 어렸을 때 배웠다. 우리네 인생이 그러하다. 무언가로부터 영향을 받아 하루아침에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려 한다면 며칠 가지 못해 포기하게 되는 잠심삼일의 결심이 될 뿐이다.
인생의 뒤안길이 후회스럽다 할지라도 포기하지 말고, 그러면서 실망하지도 말아야 한다. 그때는 그 수준이었음을 인정하고 조금씩 바르고 의로운 쪽을 향해 방향 전환을 해야 한다. 일직선으로 쭉 뻗은 나무도 필요하겠지만 살다보면 때론 구불구불한 나무가 더 작품성 있게 된다.
구부러진 나무는 일종의 변화된 인생을 뜻할 수 있다. 개선한다는 것은 새로운 것을 향해 바꾸는 의미보다는 본질을 찾는 거룩한 몸부림이라 할 수 있다.
개인뿐 아니라 국가도 그러하다. 우리가 꿈꾸는 국가의 틀은 정치인들에 의한 권력의 나라가 아니라 국민을 위해 필요한 권력의 나라여야 한다. 이를 미국의 링컨 대통령은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부'라는 정치 철학의 본질을 마련해 놓았다.
권력이 필요한 것은 국민에 의한 것이며, 정치의 목적은 국민을 위한 것이며, 그리하여 국민이 원하는 정부를 만들어 가는 것이 정치인의 역할이라는 의미다. 한국은 지금 613 지방선거 전쟁을 치루고 있다. 동네 주요 어귀마다 후보를 선전하는 명함과 전단지를 받게 된다. 거리를 걷다 보면 여러 장의 명함을 받게 된다. 동네 상인들은 버려지는 전단지용 쓰레기통을 특별히 준비해 놓은 곳도 있었다. 작은 명함 안에 나라를 사랑하고 그 지역을 최고로 사랑하는 최적의 일꾼임을 요약하여 설명해 놓았다.
그렇게 기록된 문장만으로 본다면 최고의 일꾼이며 국가와 민족, 그 지역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애국자가 넘쳐날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선거와 관련 한 영화 <특별시민>이 새롭게 다가온다. 영화의 내용은 허구를 재밌게 영상화 한 것이다. 주인공 ‘변종구’는 국회의원 삼선을 했으며, 서울시장 역시 삼선에 도전한다. 서울특별시민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그는 젊은이들 앞에서 춤을 추고 렙을 하며 온갖 권모술수로 권력의 힘을 끌어 모으려 한다. 그를 존경했던 다른 주인공 ‘박경’은 청춘콘서트에서 춤을 추는 변종구를 향해 일침을 달린다.
“그렇게 해서는 선거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진실하게 소통해야 합니다. 소통이 안 되면 고통이 옵니다.”
박경은 돌발적 질문으로 변종구 선거 캠프에 특채로 부름 받게 된다. 변종구 선거캠프를 총괄하는 심혁수는 박경에서 최고급 스마트폰을 내민다.
그러면서 말한다. “선거는 똥물에서 진주를 꺼내는 것이다. 진주를 꺼내기 위해선 손에 똥물을 묻혀야 한다. 손에 똥을 묻힐 각오가 되어 있다면 이 핸드폰을 써라.” 이후로 박경은 누구도 상상치 못한 신선한 아이디어로 변종구의 인기를 급상승 시킨다. 그녀가 변종구에게 배운 정치 철학이 있다. “정치는 패밀리 비즈니스다. / 정치의 생명은 명분이다. / 관계가 깨져도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 프로다.” 그러면서 위태롭게 그들의 관계를 유지해 간다. 결국 변종구는 서울시장 삼선에 당선된다.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 남은 것은 대선뿐이라며 치켜세운다. 주인공 박경은 정치판을 떠날 결심을 한다. 그에게서 받은 시계, 최신 스마트폰, 그리고 변종구를 한방에 무너뜨릴 수 있는 비밀이 담긴 메모리칩을 그에게 반납한다. 그러면서 깊이 있는 말을 한다.
“당신들이 그렇게 하잖게 생각하는 유권자로 돌아갈 것입니다.”
후보들은 유권자들에게 강요한다. 자신만이 해결책임을, 자신만이 준비된 후보임을, 자신만이 국민을 사랑하고 지역을 사랑하는 정치인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한발 다가서면 유권자를 하찮게 여길 뿐 아니라 그들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 정치 역시 하루아침에 변화시킬 수 없다.
그런 정치인이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국민의 의식수준이 거기에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는 슬프고 아픈 우리들의 현실이다. 그래서 선거를 통해 권력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정치인들에게 알려 줘야 한다. 선거전에는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 정치인들은 국민들 앞에 개같이 웅크린다. 춤을 추라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라면 노래를 부르고, 개처럼 짖으라 한다면 짓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랬던 그들에게 권력이 허용되는 순간부터는 국민을 위한 섬김의 종이 아니라 정당의 종이 되어 당의 유익을 위해서라면 비리를 감추어야 하고, 국민의 소리를 외면하는 불통의 시대를 만들어 간다. 좀 과격하게 과장된 표현일 수 있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봐왔던 권력의 역사임을 부정할 수 없게 된다.
인생은 무수한 선택의 결과이다. 정치도 그러하다. 박경이 외쳤던 정치인들이 가장 무서워해야 하는 것은 그의 약점이 아니었다. 바로 유권자의 힘이었다.
비록 연약한 물방울이지만 가장 힘 있는 권력자인 바위를 다듬을 수 있으며, 구멍을 낼 수 있는 것이 바로 유권자인 국민 한사람의 물방울인 것이다. 변종수는 인간이 하지 말아야 할 범죄를 저지른다. 그러면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그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들을 제거해 나간다.
심지어는 가족까지……. 그와 함께 더러운 일을 함께 했던 수족으로 부리는 비서 겸 운전수를 부른다. 한 입에 넣을 수 없을 만큼 큼직한 쌈을 거듭 싸서 그의 입에 넣어준다. 비서는 두려움에 휩싸인다. 더 이상 말 할 수 없을 때 그는 나지막하게 말한다. “우리 끝까지 가는 거다.” 비밀을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말아야 한다는 강렬한 협박이었다.
이 땅에 과연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부를 만들어갈 정치인은 존재하지 않는 걸까? 국민이라는 유권자의 힘으로 그런 정치인을 만들어 가야 한다. 하루아침에 이룰 수 없는 한 방울의 나약한 물방울일지라도 끊임없이 바위를 향해 떨어뜨려야 한다. 결국 주인공 박경이 말한 것처럼 유권자의 힘은 그 나라의 정치의 수준이 된다. 정치의 수준은 결국 국민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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