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일상이 하나가 되는 ‘캠퍼밴 라이프’>
우리는 작은 밴에서 매일 밥을 먹고, 씻고, 일을 하며, 잠을 잔다. 그렇기에 생활에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물, 전기, 가스, 식재료 등은 매일 체크해야하는 필수적인 것들이어서 밴 라이프를 시작한지 한달이 넘어가는 지금, 우리는 언제 어떤 것을 채워야 하고 확인해야 하는지 감을 잡았다.
자연 속에 들어갈 땐 상온 보관이 가능한 재료들을 10유로 이내로 구입한 뒤, 이틀 정도 먹을 수 있는 요리를 해 먹고, 서비스 존을 찾아 물을 가득 채운 뒤 오수가 넘치지 않게 미리 비워주는 일을 한다.
도심에 있을 땐 무료 주차가 가능하고, 와이파이 연결이 가능한 곳을
찾아 다니며 주차를 할 땐 태양열을 잘 흡수하도록 그늘진 곳을 피해 주차한다.
또 시골과 도시의 물가 차이나 마트 형태 또한 다르기 때문에 이젠 어떤 곳을 가더라도 자연스럽게 습득된 매뉴얼이
있는듯 그대로 준비하고 지낸다.
한달이 지나니 꽤 많은 경험치들이 쌓였다. 이젠 어떤 일을 만나도
능숙하게 해결할 것 같았지만 파리로 떠나기 전, 우린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을 경험했다.
일주일 가까이 머문 캉(Caen)이라는 도시에서 나와 장시간 운전을
피하기 위해 자연 속에서 머물기로 한 우리는 연료가 부족하다는 경고등을 보며 자연 속으로 들어갔다.
아름다운 자연에 반해 그곳에서 이틀이나 머물렀고, 연료를 채우기 위해
아네(Anet)라는 작은 도시에 들렀는데, 그때부터 일은
시작됐다.
유럽은 모든 주유소가 셀프로 운영되기 때문에 관리하는 사람이 없으면 현금으로 계산하지 못하는데, 작은 동네여서인지 들리는 곳마다 관리하는 사람이 없어 현금 결제가 불가능 했고, 카드로 결제하기 위해 사용한 한국 카드는 서명을 해야하기 때문에 불가능했으며,
유럽에서 사용하기 위해 만든 카드도 알 수 없는 이유로 모든 기계에서 거절당했다.
마지막으로 쓸 수 있는 방법은 우리가 가진 현금을 주고 다른 사람에게 카드 결제를 부탁하는 것이었는데, 이곳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어를 사용하지 않았고, 돈과 관련된
문제라 쉽게 부탁하기가 어려웠다.
이렇게 이용 가능한 주유소를 찾는데 남은 연료를 거의 다 쓴 우리는 주유소에서 살짝 떨어진 마트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밤 11시, 마지막으로
유럽 카드를 사용해보지 않은 다른 주유소에 가보기로 한 우리는 차에 시동을 건지 1분만에 주차장 입구에서
멈추게 되었다.
늦은 시간이었기에 우리가 다른 차에게 피해를 줄 일은 없었지만, 그래서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다.
결국 차를 제자리에 돌려놓기 위해 온갖 살림이 다 실린 밴을 열심히 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순간, 정말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던 그곳에 어떤 청년이
오토바이를 몰고 주차장에 들어왔다.
그는 바로 오토바이에서 내려 차를 같이 밀어주고, 번역기를 이용해
어떤 상황인지 물어 봐주었다.
어떻게 될진 모르지만 우리도 번역기를 써서 열심히 상황 설명을 한 뒤, 카드를
빌릴 수 있냐고 묻자 카드를 가지고 있는 친구들을 불러온다고 하고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10분 정도 흘렀을까, 승용차
한대가 들어왔고 그 안에는 영어가 가능한 친구도 있었다.
그들은 우리를 태워 주유소에 데려갔고, 카드 결제를 대신 해주었다. 미리 챙겨간 5L짜리 물통과 그들이 마시던 콜라병에 채울 수 있는 한 가득 연료를 채워 우여곡절 끝에 차에 시동을 걸 수 있었다.
파리까지 가기엔 턱도 없는 연료였지만
다음 주유소를 알아보기엔 충분했고, 무엇보다 처음 보는 여행객에게 친절히 대해주는 친구들의 마음에 크게
감동한 시간이었다.
게다가 그 친구들은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주차장까지 직접 안내해주었다. 덕분에 마음 편히 밤을 보낼 수 있었으며, 다음날 우린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려 주유를 한 뒤 무사히 파리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던 연료가 떨어져 차가 움직이지 못하자 밴 라이프에서 가장 치명적인 것은 물도, 전기도 아닌 연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움직일 수 없으면 밴 라이프를
통해 하고자 하는 것들이 모두 무의미 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여행은 절대 우리끼리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 깨닫게 되며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가졌다. 배터리가 나가 차에 시동이 꺼졌을 때도, 서비스
존을 찾을 때도, 무언가를 잊고 출발했을 때도 항상 주변에서 건네준 도움의 손길 덕분에 지금까지 왔다는
것을 한번 더 상기시켰다.
그렇게 우리는 새로운 다짐을 하며 파리로 출발한다. 앞으로 만나게
될 다른 여행자들에게 조건 없이 도움을 베풀고, 사람들을 통해 여행에 많은 의미들을 쌓아 가야겠다고
말이다.
*윤혜아 기자의 캠핑카 여행기 영상을 유로저널 홈페이지 독자기고 동영상에서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
칼럼리스트 윤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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