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경제 대란, 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와 흡사
미국, 스파이 혐의받는 자국민의 즉각 석방 거부한 터키에 관세 폭탄 보복
막대한 외화부채와 치솟는 물가상승률로 흔들리던 터키 경제가 미국과 의 무역 갈등으로 터키 화폐 리라화 가치가 하루만에 20% 폭락하는 등 직격탄을 맞으면서 세계 금융 시장이 크게 출렁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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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터키가 지난 10일 스파이 혐의로 2년 넘게 붙잡혀있는 미국인 목사를 석방하지 않는 데 대한 보복으로, 터키산 철강(25%→50%)과 알루미늄(10%→20%)에 대한 관세를 2배로 높인다고 발표한 데 이어, 추가 경제 제재를 예고하면서 터키발 경제 위기가 신흥 경제국을 비롯한 전 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미국의 관세 부과에는 터키의 러시아 무기 도입, 이란 제재 불참, 시리아 사태 등을 놓고 미국과의 갈등도 배경으로 작용했다.
이에 따라 터키는 미국과의 빠른 협상을 하거나,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거나, 국제 사회에 지불유예선언(디볼트)중 하나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미국의 제재 위협으로 촉발된 터키 리라화 폭락의 근본적 원인은 막대한 외화 부채와 재정 적자, 잘못된 금리 정책 등 취약한 경제 기반에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터키는 지난해 경제 대국인 중국, 인도보다 뛰어난 성적을 냈고 올해 2분기에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7.22%를 내며 순항하는 등 최근 몇 년 사이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 성장률을 보였다.
하지만 터키의 이 같은 경제 확장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외화 부채를 통해 경기 부양을 위한 자금을 쏟아부으면서 소비와 지출을 촉진한 결과 터키 경제는 국가 재정 수지와 경상수지 모두에서 적자를 기록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현재 터키의 외화 부채는 GDP 대비 50%를 웃돈다.
터키 리라화, 연포 대비 82% 하락해
달러대비 터키 리라화 가치는 최근 5일간은 31%, 연초와 비교해선 82%나 하락하는 등 13일 오전 한때 달러당 리라 환율은 6.9276 리라를 기록, 사상 처음으로 달러당 7리라선이 무너지기도 했다.
블룸버그통신은 “터키의 5년 신용부도스와프(CDS) 지수는 지난 2008년 미국의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온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라며 “터키의 외환위기가 실제 디폴트까지 갈 수 있다는 전망과 우려가 수치로 반영되고 있다”고 전했다.
CDS는 국가나 기업이 부도가 났을 때 투자자들이 원금을 돌려받을 수 있도록 제3의 기관과 계약을 체결하는 장외 신용파생상품으로 지수가 높을수록 부도 위험이 높다.
13일자 터키 일간 휘리예트지 보도에 따르면 터키에서는 누적된 인플레이션과 미국과의 마찰로 리라화 폭락이 겹치면서 금융시장이 패닉 상태로 진입했다. 터키 곳곳에서는 치솟는 인플레이션을 우려해 ‘상품 사재기’가 나타나고 있고, 도매업자들은 아예 물건 유통을 하지 않고 있다.
터키 에르도안 대통령, 장기집권 가도에 '빨간불'
이로써 대규모 건설프로젝트를 앞세워 경제 성장을 이끌며 지지도를 쌓아 지난 6월 재선에 성공해 향후 20년간의 통치 기반을 이루면서 '21세기 술탄'이라는 별칭을 얻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금과 같은 권위주의적인 길을 갈지 아니면 새 길을 택할지 시험대에 올랐다.
미국의 경제 제재로 최근 터키 화폐 가치가 폭락하는 등, 2001년 이래 최악의 경제 위기에 직면하면서 에르도안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접근 방식이 한계를 노출하고 성공 가도에도 빨간불이 켜졌기 때문이다.
대미 관계 악화로 리라화 폭락 사태를 맞자,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앙카라에서 열린 행사에서 "미국은 한쪽으로는 전략적 동반자라고 하면서 다른 쪽에서는 전략적 동반자의 발 앞에 총을 발사했다"며 미국의 행태를 맹비난하면서 "함께 북대서양조약기구 나토에 속한 미국은 전략적 동반자의 등에 칼을 꽂았다"라고 말했다.
이어 에르도안 대통령은 터키에 적대적인 정책을 쏟아내는 트럼프 행정부를 향해 “미국이 일방주의 흐름과 (터키에 대한) 무례를 되돌리지 않으면, 터키도 새 친구와 동맹을 찾을 것”이라 밝힌 바 있다. 그동안 미국은 터키 남부의 인시를릭 공군 기지 등을 통해 시리아 내전 등 중동 사태에 개입해 왔다. 미국 내 중동 전문가들은 이런 사실들을 언급하며, “(중동에서) 터키를 잃는다는 것은 (미국 외교의) 엄청난 지정학적 실수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터키 리라화 쇼크로 아시아 및 신흥국 타격 커져
터키 리라화 쇼크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인도, 중국, 인도네시아, 아르헨티나 등 신흥국 통화의 동반 하락과 세계 증시 하락을 유발했다.
지난 6월 20일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으로 3년간 500억 달러 규모의 '대기성 차관'(Stand-By Arrangement·SBA)을 받은 바 있는 아르헨티나의 페소는 터키 외환위기를 계기로 페소 매도세가 다시 나타나 올해 들어서만 40% 가까이 하락하자,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은 통화 방어를 위해 13일 금리를 5% 포인트 추가 인상함에 따라, 아르헨티나 기준 금리는 무려 45%로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터키 금융위기에 대한 불안감이 신흥시장 전반으로 퍼져나가면서, 외화부채가 많은 신흥국들이 자국 통화가치 하락으로 외채가 더 늘어나면서 선진국으로부터 빌린 대출을 갚지 못하고 해외투자자들의 자금유출도 본격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8월 13일자 인도네시아 루피아화 가치도 달러 대비 2015년 10월 최저치인 1만4605루피아로 0.9% 급락했고, 10년물 국채 금리는 7.872%로 올라 지난달 23일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였으며 자카르타종합주가지수는 1.7% 이상 떨어졌다.
특히, 엔화 대비 리라화 가치도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면서 투자자들을 패닉으로 몰아가자, 일본 개인 투자자들은 이달초부터 13일까지 터키 리라화 보유분을 47%를 매도해 2017년 5월 이후 1년3개월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와 함께 올들어 달러 강세 추세, 미중 무역전쟁, 중국의 경기 둔화 우려 등이 맞물리면서 약세를 보여왔던 중국 위안화 가치가 터키 리라화 급락 사태로 하락해 지난해 5월 26일(6.8698) 이후 1년2개월여 만인 14일 6.8695위안으로 고시되었다.
트럼프, 지난 3개월간 관세 폭탄에 1조 6천4백억 원 벌어
최근 트럼프 미 대통령은 중국, 러시아, 이란 등 미국과 적대하고 있는 신흥국에게 집중 포화를 날리고 있고 중국에는 관세 폭탄, 러시아와 이란에는 경제 제재를 시행하면서 해당국의 숨통을 서서히 조이고 있다.
미국은 트럼프의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고율의 관세 부과 정책으로 올해 3월 말부터 7월 16일까지 철강에서 11억 달러, 알루미늄에서 3억 4천만 달러 등 총 14억 4천만 달러(약 1조 6천4백억 원)에 달하는 관세 수입을 거둔 데 이어 터키의 경우 최근에 관세율을 2배로 인상하면서 세수는 계속 증가할 전망이다.
트럼프 정부는 캐나다와 멕시코, 중국, EU, 러시아 등에 철강 25%, 알루미늄 10%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폴 크루그먼,현 터키사태는 아시아 경제 위기와 흡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13일 자신의 트위터에 터키 경제 위기는 막대한 외화 부채에 기대 부풀려진 버블이 터진 것이라면서 터키 금융위기가 1998년 아시아를 덮쳤던 외환위기와 유사하다고 경고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터키 금융위기는 1998년 인도네시아, 태국, 아르헨티나에서 발생했던 위기를 재연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터키의 위기는 무지한 독재자가 (국가를) 운영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이어 "에르도안 대통령은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전혀 모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편, 소재용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데일리한국을 통해 “터키가 미국과 극적인 타협에 실패할 경우 IMF 등으로부터 유동성 공급을 확보하기 전까지는 안전자산 선호심리에 따라 신흥시장에 보다 부담을 줄 소지가 커 보인다”며 ”다만 터키의 금융불안이 선진 유럽 전반에 확산될 것을 걱정할 단계는 아직 아닌 듯 하다. 그리스 수준에 근접한 터키의 대외 부채와 스페인 은행의 익스포져 등이 걸림돌인 것은 분명하지만, 당시보다 남유럽 전반의 펀더멘털이 개선됐고 유로존 밖의 이벤트 로 인해 그리스 위기와 달리 현재 유럽은행 CDS는 안정적인 편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미국,'경제적 효과는 만점, 군사적 손실 막대'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 제재 효과는 만점이었지만, 지정학적으로 엄청나게 중요한 터키를 잃고 푸틴의 품에 안기는 치명적 지정학적 실수를 저질렀다는 지적이다.
13일자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지는 만약 터키가 나토를 탈퇴하고 러시아의 품으로 들어간다면 미국은 이 지역에서 동맹을 잃고 미국 외교는 엄청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주요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구성원인 터키는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것은 물론 러시아, 중동과도 가까워 미국은 지난 수십 년간 인내심을 발휘하며 터키를 미국의 영향력 아래 놓아두기 위해 공을 쏟아왔다.
특히, 중동 지역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과 함께 미국이 신뢰할 수 있는 동맹국인 터키를 통해 미국은 2차 대전 후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했으며, 또 이란이 이라크와 갈등을 빚는 것을 막는 등 터키를 이 지역의 주요 동맹으로 삼음으로써 지역의 평화를 유지해왔다.
이번 사태로 터키가 미국과 멀어지고 러시아와 가까워지면서 현재 미국이 경제 제재를 가하고 있는 터키-러시아-이란이 연합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미국-사우디아라비아-이스라엘 연합과 맞서 이지역의 불안을 가중시킬 것이다.
유로저널 김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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