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낮달의 시간
영미는 아버지의 말투와 표정에서 이미 비극의 전조를 느끼고 있었다.
“식을 올리고 달포쯤 지났을 때, 함께 잠자리에 들었던 신랑이 아침에 일어나 보니 싸늘한 시체가 되어있었던 거야. 평소에 병을 앓거나 약골도 아니었는데 그렇게 죽어있으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지. 외상도 전혀 없었어. 결국 모든 원망과 혐의의 화살이 신부에게 퍼부어졌지. 무당이 되어야 할 년이 시집을 오니 신께서 노여워 제 외아들을 데려간 것이라는 증오의 악다구니가 하늘을 찔렀어. 특히 처음부터 혼사를 극렬하게 반대한 시어머니의 분노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을 정도로 난폭했다고 해. 결국 신부는 신랑의 49제를 며칠 앞두고 기어이 쫓겨나고 말았지.”
영미의 뇌리에 신랑을 잃고 애통해하는 신부의 얼굴이 그려졌다. 그리고 시어머니의 억센 손에 머리채를 잡혀 사립문 밖으로 내쳐지는 모습이 이어지자 눈을 질끈 감았다. 아버지가 먼눈으로 허공을 훑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근데 인연이란 게 참 요술처럼 기묘한 것이더라.”
그날 아버지는 해질녘에 이장네 논에 쟁기질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고 했다. 문득 저만치 저수지 둑에서 소복을 입은 여자가 석양을 등에 지고 서 있었는데 보는 순간 뭔가 느낌이 좋지 않더라는 것이다.
“지나치다 살짝 옆모습을 봤는데 아무래도 그냥 두면 무슨 일을 낼 것 같은 불안감이 들지 뭐냐. 멍한 표정에 흰 종잇장처럼 창백한 얼굴이 마치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았지. 그래서 걸으며 자꾸 뒤를 돌아보는데 어느 순간 이 여자가 치마를 뒤집어쓰더니 그냥 저수지로 뛰어드는 거라. 정신이 번쩍 들었지. 지게를 패대기치고 달려서 물로 뛰어들었어. 서너 번 자맥질 끝에 겨우 여자의 치마를 잡아 죽을힘을 다해서 끌어 올렸어. 근데 젠장, 이미 축 늘어져서 가망이 없어 보이는 거야. 그래도 그냥 둘 수가 있어야지. 코를 잡고 입술을 열어 연신 숨을 불어넣었지.”
아버지는 그때 일을 방금 경험한 사람처럼 몸짓을 섞어가며 생생하게 설명했다.
“그래도 깨날 기미를 보이지 않아 틀렸다고 생각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한 번 만 더 숨을 불어넣고 말자 했지. 바로 그 순간이었어. 갑자기 여자의 눈이 번쩍 열리면서 입으로 물을 뿜어내는 거야. 난 뒤로 풀썩 주저앉았지. 여자는 정신을 완전히 차리지 못하고 겨우 숨만 쉬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가엾어 보이던지... 그 와중에도 그런 생각이 들지 뭐냐. 심청이가 저수지로 환생을 했나 하는.”
아버지가 이후의 상황을 세세하게 설명했지만 영미의 귀에는 제대로 들어오지가 않았다. 가여운 엄마의 생애가 마치 자신이 경험한 일처럼 그려져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무당의 딸로 태어나 겪었을 편견과 수모가, 그리고 갑작스러운 남편의 사별이 준 충격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되고도 남았다. 본인의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이루어진 절망적인 상황에 숨이 막혀 그저 가슴만 쳤을 엄마!
게다가 무당의 말에 따르면, 엄마는 지금도 못난 딸내미를 지켜주느라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구천을 떠돌고 있다는 것 아닌가. 눈물이 났다. 가여운 엄마. 눈물이 터지니 걷잡을 수가 없었다. 영미는 양로원을 빠져나와 바위산 뒤편으로 가 목을 놓아 울었다. 까닭이 분명하지 않는 억울함과 아쉬움, 슬픔과 분노의 감정이 복잡하게 뒤섞였다.
한참을 울고 나니 두통이 왔다. 하지만 속은 후련했다. 아버지의 증언을 통해 자신이 늘 품고 있던 의문 하나가 자연스레 풀린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영미는 어릴 때 학교에서 혈액형에 대해 배우고 나서 자신의 혈액형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엄마와 아버지 모두 A형이고 동생도 같은 혈액형인데 왜 유독 자신만 B형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과학 선생님 말씀에 따르면 영미는 A형이나 O형이어야 한다고 했다. 만약 다른 혈액형이 나왔다면 그건 검사에 오류가 있거나 아니면 엄마가 다리 밑에서 주워온 자식일 가능성이 높다는 거였다. 그러므로 일단 어머니에게 출생의 비밀이 있는지 넌지시 여쭤보는 게 좋겠다고 농담도 했다. 하지만 영미는 자신의 혈액형에 대한 궁금증을 엄마를 통해 들을 기회가 없었다. 엄마는 그때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영미는 이제 자신이 가졌던 혈액형에 대한 궁금증이 조금은 해소되는 느낌이 들었다. 가족 중 왜 혼자만 혈액형이 다른지, 그리고 아버지와 거의 판박이라고 할 만큼 외모며 성격까지 비슷한 동생과 달리, 자신은 아버지를 닮은 구석이 전혀 없다는 점도 이해가 되었다.
엄마의 신혼생활은 달포였다고 했다. 바로 그 시점에 엄마의 자궁에는 뿌려진 씨앗 하나. 그랬다면 시댁에서 쫓겨난 엄마가 저수지에 몸을 던졌을 때 엄마는 이미 혼자가 아니었을 것이다. 영미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아버지를 입을 통해 좀 더 확실히 듣고 싶었으나 그것까지는 차마 물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영미가 자신의 핏줄이 아닐 것이라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눈치였기 때문에 그걸 묻는 것 자체가 아버지에게 상처가 될 것 같아서였다.
영미는 엄마를 만나 달포 간 살다간 비운의 사내가 궁금했다. 그는 자신의 유전인자를 딸에게 실현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영미의 몸 어딘가에 본인의 생김새나 성격적 특징을 어떤 형태로든 나타내거나 숨겨두었을 게 분명했다.
영미는 생각했다. 그가 그렇게 허망하게 생을 마감하지 않았다면 자신의 인생도 지금과는 많이 달랐을 것이라고. 농토를 많이 소유해서 제법 부유했다고 하니 경제적인 여유가 있었을 것이고, 그랬다면 자신의 성장 과정도 그만큼 윤택하고 평안했지 않았을까. 만약 그랬다면...
그런 생각이 꼬리를 물자 몸서리가 쳐지는 기억 하나가 불쑥 떠올랐다. 언제였더라. 아기를 지우러 읍내 산부인과를 찾았을 때가. 그때 완고한 표정의 원장이 마스크를 착용하며 한 훈계가 지금도 생생하다. 여자가 몸을 예쁘게 가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절실한 것은 스스로 몸을 아끼고 지키는 것이다. 여자의 몸은 깨지기 쉬운 꽃병과 같다. 그러니 질그릇처럼 마구 내돌리면 안 된다. 그때 영미의 나이 열여섯이었으니 의사가 보기에도 한심은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의사의 충고는 지나치게 일방적이었다. 그의 충고를 풀어보면, 아직 열여섯에 불과한 네가 아기를 가진 것은 네가 몸을 함부로 내쳤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는 뜻과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건 사실과 너무나 달랐다. 그때는 겁에 질려 아무 말을 못했지만 다시 그런 상황이 온다면 영미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내가 결코 몸을 함부로 내친 결과가 아니라고 말이다.
워낙 깡촌인지라 당시 학교에서는 납부금을 제때 내지 못한 학생들이 상당수 있었다. 그날도 미납자 전원이 구령대 앞에 모였다. 교장이 나타나 함께 불려 나온 담임선생들에게 큰소리로 말했다. 아이들을 당장 집으로 돌려보내서 납부금을 가져오게 하라고. 영미는 지난 학기에도 경험한 일이어서 교장의 조치가 오히려 반가웠다. 학교에서 집까지의 거리는 십 리가 넘었는데 다니는 버스가 없어서 걸어가야 했다. 그렇게 왕복 이십 리 길. 집에 가도 어차피 아버지는 남의 집 일을 나가셨기에 만날 수도 없었다. 그러니 학교 근처에서 적당히 시간을 때우다가 파할 때쯤 학교로 들어가 가방을 가지고 나오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학교에서도 그걸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학생들이 집까지 다녀오게 하는 묘안을 생각해낸 것이다. 그건 바로 마을 대표인 이장이나 새마을지도자에게 확인서를 받아오는 방법이었다.
영미는 전날도 이장의 사인을 받으러 갔다가 부재중이어서 새마을지도자에게 확인서를 받아왔기 때문에 이날도 이장 집으로 가지 않고 새마을지도자를 찾아갔다. 사실 전날 새마을지도자 아저씨가 확인서를 써주며 용돈을 손에 쥐어주었기 때문에 오늘도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그게 자신의 삶을 망가뜨리기 위해 쳐놓은 덫이었다는 걸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사인을 해주겠다고 방으로 들어오라는 새마을지도자가 갑자기 굶주린 짐승처럼 달려 들어서야 영미는 뭔가 크게 잘못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새마을지도자의 만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병원에서 새마을지도자의 흔적을 지우고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온 날 저녁, 영미는 태어나 처음으로 아버지가 우는 모습을 보았다. 널따란 당목을 펼쳐놓은 것 같은 달빛이 마당 가득 들어찬 저녁, 아버지는 마루에 걸터앉아 기둥에 몸을 기대고 말없이 눈물을 훔치고는 했다. 방안에 누운 영미가 아랫배에 통증이 와서 얼굴을 찌푸릴 때마다 아버지의 어깨도 심하게 들썩였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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