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저널 와인칼럼

서연우와 함께하는 와인여행 (4) - 추석에 생각하는 생떼밀리옹의 쥐라드

by eknews02 posted Sep 26,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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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에 생각하는 생떼밀리옹의 쥐라드(La Jurade de Saint- Émilion)



니스에서 만난 와이너리의 두 주인장 스삐씨와 니꼴레띠씨의 와인을 대하던 그들의 자세에서, 나는‘인간’과’땅’을 보았다.

 

포도재배에 그리 녹록지 못한 토양과 지형의 한계와 자연적 불리함을 긍정의 힘으로, 개척정신으로 극복하고 마침내, 작지만 지역적 특색이 살아 숨쉬는 와인을 만들어 주류라기 보다는 마이너리티라고 불릴만한 지역의 예술가들을 발굴해내고 후원하면서 아름답게 나이들어가는 그들은 , 그 자체로 이미, 세월이 흐를수록 복합적이고 그윽한 아로마를 뿜어내며 감동을 주는 훌륭한 와인같은 인물이 되어가고 있음을 느끼게 했다.


‘지’(땅)와‘인’(사람)외에‘천’(하늘의 은총)은 소중한 한병의 와인을 세상에 태어나게 하는 결정적인 열쇠이다.


그런 의미에서’추석’에 즈음하여, 나는 작년 이맘때의 생떼밀리옹에서의 추억을 공유하고자 한다. 


하늘의 뜻을 바라며, 높은 지위를 가진 원로들이 그 마을 가장 높은 곳 탑 꼭대기에 올라, 하늘을 우러러 보며, 한마음으로 고한다. 


« 하늘이시여, 이제 때가 되었으니 이 포도들을  수확하겠나이다. 저희를 보호해 주소서 !»


생테밀리옹의 포도 수확을 시작하겠다는 일치된 의견은 쥬라드(Jurade)에 의해 정식으로 대중앞에 공포된다.


(Le Ban des vendanges) 너무나도 장엄한 의식인 동시에,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 보면, 아무리 인간의 능력이 발달했다해도, 결국 하늘이 정한 계절이라는 법칙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채 살아가는 인간의 한계를 의식하게 되고, 그것을 통해 겸손을 배우게 된다.


 기도하는 마음, 즉, 겨울의 매서운 추위와, 여름의 타는듯한 더위를 이기고 돌아온 곡식과 과일을 추수하게 해주신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은혜에 대한 진실한 감사를 공식적인 예로 올리는 ,한가위 또는 가배라고도 불리우는 우리의 추석도 어찌보면, 쥬라드(Jurade)의 의식을 관통하는 기본정신과 많이 닮아있다.


작년 9월 중순 일요일, 보르도에 살고 있던 나는 선선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바게트 샌드위치 하나 옆구리에 끼고, 생떼밀리옹으로 향했다. 


보르도 생 쟝(Saint Jean) 역을 미끄러지듯 출발한 기차는 30분 남짓 걸려 그곳에 도착했고, 자그마한 중세도시는 많은 사람들의 쥬라드(Jurade)행사에 대한 기대감으로, 한껏 들떠 있었다.


쥬라드 (Jurade)란, 보르도 북동쪽 도르도뉴(Dordogne)강 위쪽 경사진 지형에 위치한, 생떼밀리옹지역의 와인을 수호하기 위한 결속 단체로, 그 시작은  중세시대인 12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그당시 이 지역이 속한 프랑스의  아키텐(Aquitaine)주는 엘레오노르 다키텐 (Eleonore d’Aquitaine)이라고 하는 프랑스 태생의 혁명적인 삶을 살았던 한 여인의 결혼과 이혼때문에 영국영토에 속해있었다. 


(그녀는 프랑스 왕 루이7세와의 이혼 후, 영국왕 헨리 2세와 재혼했고, 아들을 영국왕과의 사이에서만 두었으므로,그녀의 지참금인 아키텐주는 남편이 아닌 아들에게만 상속될 수 있고, 아들이 아버지국적대로 영국인이 되므로, 그 땅도 역시 영국영토가 된다.) 


12-13세기 생테밀리옹지방 포도밭의 주된 업무는 왕과 고관들을 위한 와인생산이었다.뱅 오노리끄 (vins honoriques)라 불리웠던 그곳의 질좋은 포도주는 , 그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강력한 규제 단체를 필요로 하게 했으며, 그 요구에 부응하여 1199년 영토없는 왕(Jean sans terre)이라 불리웠던 왕 쟝(Jean)시대에 이 지역의 독립을 거쳐,그 후 탄생한 것이 쥬라드이다. 행정, 사법, 재정등 막강한 권력과 통제 기능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과 결탁된 이 조직은 프랑스 혁명 세력에 의한 탄압, 전쟁, 세계 대전을 거쳐, 1948년 재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크기변환]La Tour du Roy 정상.png

La Tour du Roy 정상


하얀 옷을 입고, 밧줄(La corde) 모양의 허리띠를 매고 다녔던, 베네딕트 수도사들이 (Bénédictin) 생떼밀리옹에 오래전부터 터를 잡고 세력을 형성하던 덕택에, 중세라는 시대적 배경과 더불어 종교적 색채도 피할 수 없는 이 조직의 강력한 특성이 되었다.


쥬라드 (La Jurade)의 행사는 일년에 두 번 열리는데, 6월 셋째 주 일요일에 열리는‘그 해에 새로 나온 와인을 평가하는 행사’(Jugement du vin nouveau)와 9월에’와인 수확 시작을 선포하는 행사’(Le ban des vendanges)로, 나뉘며, 흥겨운 축제를 동반하여 이틀에 걸쳐 진행된다. 그 장엄한 선포식을 현장에서 보기위해 탑이 있는 주변 좋은 자리에 일치감치 도착하여, 그들 일행을 느긋하게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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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전에, 구시가지 안, 꼬들리에 수도원(Cloître des Cordeliers) 오래된 기둥 사이를 거닐며 축하하는 의미로, 생테밀리옹만의 독특한 스파클링 와인인 꼬들리에 (Les Cordeliers)한잔과 준비해온 바게트 샌드위치로 가볍게 허기를 달래면서, 탑(La tour du Roy) 한쪽 면을 다 차지하는 인상적인 크림슨색깔의, 쥬라드 깃발을 감상하는것도 잊지않았다. 


드디어 ,오후 다섯시에 탑 꼭대기에서 포도 수확 시작을 선언하기 위해, 시내 중심가에서부터, 긴 행렬로 행진하던, 탑에 내걸린 깃발과 같은 진홍색의 긴 대례복을 입은 쥬라드 기사들이 탑 주변에 위치한다. 


뒤따르는 시민들의 행렬도 탑 앞에 서자 숙연해지며, 크림슨의 행렬이 32m인 이 탑의 118계단을 모조리 올라 정상에 다다를 때 까지, 깃발의 질서 정연한 움직임이 끝나고, 쥬라드 대표자에 의한 연설이 행해지는 그 순간까지 조금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주의 깊은 시선을 떼지 못한다. 


[크기변환]La tour du Roy에서 바라본 saint-emilion전경.jpg

La tour du Roy에서 바라본 saint-emilion전경


그야말로, 실재론이나 상징주의로 함축 될 수 있는 ,중세적 세레모니가 어떤 것인지 잘 보여주는 이벤트라 하겠다. 신이 존재하되, 눈으로 볼 수 없어도 느낄 수 있도록 특정 이미지 속에 표출시키려 하는 시도가 이 의식에서도 느껴진다. 회색으로 충만한 이 동네에서 가장 하늘과 근접한, La tour du Roy의 정점에서, 포도 수확의 시작을 선언하며, 쥬라드 대표자는 하늘을 향해 큰 소리로 여러번 외친다.


 “생테밀리옹, 할렐루야”, 


대표자의 장엄한 목소리가 깊은 울림으로 반복되는 순간, 하늘에 간절한 열망을 담아 공중에 띄우는 커다란 포도송이 모양의 여러개의 풍선이 그 목소리를 따라 공중으로 천천히 부유한다. 


그 장엄함에 압도 되어 ,나도모르게 눈물이 찔끔 ! 추석때 다 같이 모여 조상에게 예를 갖춰 차례를 지내는 한국의 가족들의 이미지가 오버랩 되어서 일까. 


그 형식은 다르지만, 한켠으로 삶에서 의지하게 되는 절대적 믿음.그것이 종교나 조상같이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개념으로 치환되어 인간 존재의 불완전성을 끊임없이 각인시킨다.


 진홍색 의상, 회색의 옛 건물 일색인 이 도시의 큰 탑에 과감히 내걸린 붉은 깃발, 붉은빛깔에 파란색을 약간섞어 보라색을 띄는 짙은 장미색 크림슨이 감동으로 다가왔다. 


Jurade가 창설되기 전, 중세시대를 지배했던건 화이트 와인이었다.포도주 기업 조합(1884년)이나, 지롱드 지역 공동 와인 저장고(1932년)를 설치하고 조직력을 통해 계속 혁신을 이루어낸 결과 생테밀리옹은, 메를로와 카베르네 프랑,까베르네 소비뇽을 주요 품종으로한 품질 좋은  레드와인의 대표적인 산지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찬란했던 연례 행사가 끝이나고, 탑앞에 모였던 군중들도 하나 둘씩 자리를 비운다. 


조금전 Jurade 멤버들이 크림슨의 긴 기운을 입고,우리를 쳐다보던, 탑 하단부분에 잠시 올라, 중세의 고도 생테밀리옹을 바라본다.무엇이 이 채석장에 불과했던 작은 마을을,와인 애호가라면 한 번쯤은 와보고 싶은 매력적인 곳으로 만들었을까?


아마도 그것은’겸손’이 아니었을까?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쉬지 않는 노력으로 끊임없는 혁신의 길을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함께 묵묵히 걸어가되, 그 모든 것을 최종 결정하는건 하늘에 몫이라는 걸 받아들이고, 마지막 한줌의 은총을 구하려는 그 마음.


어떤 생각이 종교를 통한 의식의 옷을 입을때 그것은 더욱 더 견고해 지며,과학적인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 믿음으로 부활한다.


Jurade의식은 나에게, 겸허한 마음의 고귀한 가치를 각인시켜 주었다.포도수확(vendanges)이라는 첫단추를 겸손의 마음으로 잘 꿰고, 정성으로 와인을 만든다면, 하늘이 도와 훌륭한 포도주를 맛볼 수 있으리라. 


그러나 아닌들 또 어떠리! 그것이 하늘의 뜻이고, 우리는 인간으로써 최선을 다했으므로. 그걸로 충분치 않은가.





서연우
유로저널 와인 칼럼니스트
대한민국 항공사. 항공 승무원 경력17년 8개월 .
이후 도불 ,프랑스 보르도에서 와인 소믈리에 자격증 취득후  와인 시음 공부ㆍ미국 크루즈 소믈리에로 근무후 현재 뉴질랜드에 잠시 체류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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