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요르카 한 바퀴
일상을 떠난다. 만추의 양광을 받아 유난히 반짝이든 은 빛 날개의 여객기가 프랑크프르트를 박차고 날자 두 시간 여 남짓에 마요르카의 산 후안 공항이 거기 있었다.
나는 생소한 지역을 찾으면 습관적으로 그곳 지도를 챙긴다. 요즘이야 스마트 폰으로 별의 별것을 그 자리에서 다 찾을 수 있지만 종이 문화세대에겐 인쇄물이 더 가깝고 친숙하다.
임란 때 명 나라의 이 여송은 4만 3천의 병력을 이끌고 왜란을 평정하기 위해 압록강 가에 이른다. 조선 땅 에선 조정 대신들이 환영 차 길게 줄 서있다. 마상에서 이 여송은 말없이 한 쪽 팔을 뻗는다. 조정 대신들이 어리둥절하자 이항복이 허리춤에서 두루마리 지도를 꺼내 흔들어 보인다.
이번에는 손 가락 세 개를 펼친다. 꾸물거림 없이 이항복은 다섯 손가락을 펼쳐 보인다. 삼강을 아느냐, 여기 오륜도 있다. 마요르카에는 두 개의 산맥이 형성되어있다. 트라문다는 남 서쪽 해안에서 북쪽으로 걸쳐 90킬로에 달하며 레반트 산맥은 남 동쪽에서 북쪽으로 이어진다.
레반트 산맥의 북단에 있는 알쿠이다 소재 민박집 까진 공항에서 약 50 여분 걸린다. 영어 식 표기 스페인은 현지 어로 에스파냐이고 한자로 가차하여 서반아라 오랫동안 불려왔다.
88 서울 올림픽 입장식 팻말은 에스파냐였다. 16, 17세기에 걸쳐 세계 최강국 스페인은 영국 식민지 정책과 달라 나라의 발전이 더디었다. 신대륙에서 갈취한 금 은 보화로 왕족들은 사치를 일삼으며 건축물을 짓기에 여념 없었다.
영국은 식민지 정책을 경제 무역화하여 국력을 키워 나갔다. 스페인 무적함대가 영국 수군과 치른 칼레해전에서 참패하여 몰락을 재촉했다.
스페인은 막강한 군사력으로 이길 수 있는 전투였으나 전쟁에서 한 번도 져 본적 없는 펠리 페 2 세는 군사작전 계획을 공공연히 알리며 무모하게 공격하였으니 승패는 뻔했다. 나라가 하도 커서 망하는데도 300 여 년이나 걸렸다.
세계 관광객이 가장 많이 들 끓는 나라는 프랑스이나 관광 수입은 스페인이 단연 1 위이다.
많이 찾는 지역은 안달루시아이다. 여기에서 말라가 코르도바 세비야 그라나다의 역사에 압도 당한다. 제주도의 2 배 크기인 마요르카는 스페인의 가장 큰 섬이며 연간 2,500 만 여명의 관광객이 몰려든다. 성수기 7, 8월을 지나 10월 초순까지는 해수욕할 수 있다.
이 섬은 반쯤 독일 땅으로 치면 된다. 어딜 가나 독일 인이다. 그 다음으로 영국인이 많다. 지역 경제의 80%가 관광산업이라 현지인들은 독일어 영어를 구사한다.
전형적인 지중해 기후로 온화한 날씨가 지천에 쌓여있다. 민박 집은 해안가에 아주 가깝다. 오랜만에 리드미칼한 파도소리를 자장가 삼으며 스르르 잠이 들었다. 파도소리에 잠이 깼다. 옥상에 올라가 보니 이른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읜드 서핑, 카이트 서핑을 즐기는 청춘 남녀들이 많았다.
계단을 내려오면서 뜰에 핀 선홍색 분꽃을 보았다. 얼마만 인가, 잊은 사람을 찾은 반가움이었다. 간단히 요기하고 암행어사 출또하는 기분으로 길을 나선다.
햇빛이 부서지는 긴 해안선 따라 자전거 전용도로가 이어진다. 젊은이들이 형형색색의 운동 복으로 바다 바람을 가르며 힘차게 내딛는다. 조깅하는 축도 많다. 나도 한 달만 젊었으면 더 빨리 달릴 수 있을 텐데. 바닷물에 발을 담근다. 세상 강물을 다 모아도 바다는 넘치지 않는다. 물을 다 받아둔다 고해서 바다일까. 바다를 메워도 사람 욕심은 다 못 채운다. 창망하기 그지없는 바다 여기저기에 조그만 돌 섬들이 점점이 떠있다. 파도는 돌 섬들을 수시로 일삼아 핥고 있다.
섬과 바다는 영원한 친구이다. 바다는 저 멀리에서 하늘과 하나된다. 이솝의 주인장은 허풍이 심했다. 술자리에서 친구들에게 내기를 걸었다. "내가 바닷물을 다 마실 수 있겠느냐 아니냐" 좌중의 친구들은 일제히 그럴 수 없다 에 큰 돈을 걸었다.
다음 날 술이 깬 주인장은 아차, 내가 또 실수를 했구나 고민하다가 이솝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솝이 꾀를 내었다.
다음 날 친구들을 바닷가에 불러모아 큰 소리친다. "내가 바닷물을 다 마시겠소. 그런데 강물이 자꾸 바다로 흘러 들어오니 당신들이 강 물을 막아주오. 내가 바닷물을 마신다고 그랬지 강물은 아니잖소"
해안가 따라 많은 리조트나 호텔이 즐비하다. 이 섬의 주도 팔마 시내에는 5 성 급 호텔만도 22 여 개나 된다. 생각컨데 호텔이나 규모 있는 식당 주인은 독일인도 많을 게다.
터키에서 잘 알려진 여러 해안가 주변 또한 독일인들이 즐겨 찾는 지역에는 거기도 마찬가지일 게고. 4 년 전 팔마 시내에 한식 식당이 생겼다. 상호가 Bi Bap 인데 비빔밥 준 말 같다. 메뉴에도 비빔밥이 특식이다.
발데모사 ㅡ 폐병을 앓던 쇼팽은 주위의 권고로 애인 상드 그녀의 두 아들과 함께 1838년 12월 이 섬에 요양 차 들린다. 빌린 집에서 쫓겨났다. 가톨릭 신앙이 깊은 주민들은 정식 부부도 아니라며 당대의 피아노 왕을 알아보지 못했다.
상드는 담배 피우며 바지차림으로 나 다니니 주민들의 눈 밖에 났다. 이 섬의 왕의 별장이었지만 세월 흘러 폐허나 다름없던 카르투하 수도원으로 거처를 옮긴다. 여기에서 작곡한 작품가운데 빗방울 전주곡이 잘 알려져 있다. 이 섬의 풍광을 소재로 한 서정적인 작품이다.
수도원에 비치된 피아노는 프랑스에서 가져온 쇼팽의 분신이다. 그 해 겨울은 유난히 추워 쇼팽은 건강이 악화되고 상드와 금이 생겼다. 3 달 후 섬을 떠난다. 안익태를 찾아갔다. 예의 좁고 꼬불꼬불한 길을 올라가면 대문에는 한글로 안익태의 고택이라 쓴 사각동판이 붙어있다. 안선생은 일본 독일에서 유학하며 천재의 길을 가고 있었다. 캬라안이 음악도 시절 안 선생의 독일 내 연주회는 어디서라도 달려갔는가 하면 빈에서 연주회 할 때 리하르트 스트라우스가 동 서를 아우르는 음악을 가졌다며 수 제자로 발탁했다.
허나 일본 식민지 여권으로 살았던 이유도 있겠으나 이름이 알려져 일본식이름을 고수 했을까. 안 선생이 1945년 이 섬으로 와서 시 교향악단을 창단하고 이끈 공로의 예우차원으로 선생의 집 앞 거리 명을 D´eak tai Ahn 이라 불린다. 일본식 발음이다.
시 왕궁 앞 보르네 광장에는 선생의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세워진 소리의 그림자라는 선생의 조형물이 있다. 집안 뜨락에 서서 선생은 가끔 식 하늘을 올려다 보며 여럿 상념이 잠겼을 게다.
나는 선생이 디뎠을 그 자리에서 뜬 뭉게구름으로 선생의 모습을 선연히 그려보았다. 벨베르 성ㅡ 베이베르 라고도 불린다. 원형으로 지어 진 게 별스럽다.
지붕 위에선 팔마 시내가 360도로 보인다. 높은데 올라서면 어떤 정복 감을 느낀다. 하이메 2세의 궁전은 감옥으로 되다가 역사 박물관으로 관리된다. 섬 동남쪽으로 가면 목가적 풍경이 아늑하고 평화롭다. 유적지나 볼 거리는 없는 편이다.
이 섬의 건축물이나 주택은 사암으로 지어져 도시나 시골이나 칼라가 엇 비슷하다. 사암은 편안한 색조인데 미세한 크기의 모래입자들이 엉겨 붙어진 것이다.
산악지대는 석회암이라 나무들이 고만고만하게 자란다. 주 수도 팔마 데 마요르카에선 버스가 어디든 다 간다. 관광지다운 교통 망이다. 팔마 수족관ㅡ 8 천 여종의 해양 동물을 볼 수 있다.
상어 떼가 유리터널을 넘나든다. 담력의 한계를 느끼다 보니 왠지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나이 탓인가? 착한 물고기 쪽으로 발길을 옮기며 궁 시렁 궁 시렁 해 본다.
마르요카 대 성당 ㅡ 특이 한 것은 당시에 지어 진 다른 성당과 달리 예루살렘이 아닌 메카를 향하고 있다. 1300 년에 공사를 할 때 오래 전 이 곳에 회교사원이 있어 그 설계에 따른 이유인데 340년이나 걸렸다. 대 제국의 자취는 건축물 규모나 공사기간에서 나타난다.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성당 내부는 완성되었으나 외향은 아직 짓고 있다. 여행은 아는 것만큼 보인다. 보는 만큼 즐기는 게 아니라 아는 만큼 즐겨야 한다.
스페인 주민들은 이름 뒤에 아버지 성 그 다음 어머니 성을 넣어 성명이 길다. 스페인들의 흔한 이름은 가르시아, 페르난데스, 산체스, 곤잘레스, 로페스, 로드리게스 등등이다. 미국 서부 영화에서 멕시컨들이 백인들 깽 단에 맞서는 이름이다.
이 섬에서 태어난 세계 테니스 랭킹 1위인 나달은 축구 국가대표 출신인 제 삼촌의 영향으로 중학 때까지 공을 차며 테니스를 배웠다.
풍차로 길어 올린 관개수로 오랜지 포도 올리브 아몬드를 재배하는 농촌 지역은 시간이 멈춘듯하다. 이내 내 고향과 어울리는 연상으로 마요르카에 애정을 담아본다.
건성으로 본 팔마 산타 마리아 성당, 폴렌사, 소예르. 낚시바늘 동굴. 내 다시 찾으리라.
2018. 시월에. 손 병원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