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혜 예술칼럼

누구나 아는, 누구나 사용하는 것이 예술작품이 되다.

by 편집부 posted Oct 2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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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아는, 누구나 사용하는 것이 예술작품이 되다.


5. 대중문화가 곧 예술

앤디 워홀의 본명은 앤드루 워홀라 주니어(Andrew Worhola Jr.)이다. 그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서 체코슬로바키아계 아들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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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카네기 멜론 대학에 진학해 광고 예술을 배워 1949년에 졸업을 했다. 1952년에는 신문광고 미술부문의 아트 디렉터즈 클럽상을 수상한 적도 있다. 


당시 그의 작품들은 굉장히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양식을 띄고 있었다. 


그의 작품세계는 특히 '미국의 물질문화’와 연관되어 있었다. 


그는 작품에 돈, 달러 기호, 식품, 유명인, 구두 드로잉, 그리고 신문 스크랩 등을 그려 넣었다. 이런 주제들은 당시 미국 문화의 가치 그 자체였다.


그 때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캐네디는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고 세금 혜택을 늘려 중산층을 두텁게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었다. 그런 만큼, 1950년대 미국은 대중문화와 풍요로운 삶이 지속되고 있던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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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Historialist, 1955, ANDY WARHOL FOR PALIZZIO



무엇보다 미디어의 영향력은 아주 대단했다. TV에서는 광고를 쏟아내면서 필수품과 사치품 할 것 없이 모든 소비를 부추기는 라이프 스타일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1960년대에는 자동차와 텔레비젼이 미국의 본질을 대표하는 상징물이 되었다. 


이렇게 대중 소비문화는 1950년대부터 미국을 급격하게 변화시켜 나갔다. 


질 좋은 상품을 위해서 공장들과 대량생산 시스템으로 일정하고도 같은 상품들이 등장해 많은 사람들이 상품을 구매하고 직접 맛보고 누릴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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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ndy Warhol drawing that was rejected by MOMA in 1956


당시 팝아트는 이런 미국 대중 문화를 지배하던 만능물질주의를 거부하기보다는 오히려 소비 제품, 텔레비전, 자동차, 대량생산, 과소비, 미디어 아이콘 등을 있는그대로의 모습으로 사용해 기계적인 미술의 재료로 활용했다.


대중문화나 인조적인 환경을 있는 그대로 사용해, 아주 특별할 것도 없고 누구나 아는 누구나 사용하는 것들을 작품으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생각해보면 아주 재미없을 것 같지만 대중문화는 누구에게나 관심이 있는 것이 될 수 있다. 


특히 탑스타나 대통령과 같은 유명인사들은 화재거리로서 팝아트의 유용한 재료로 사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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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y Warhol, Gerry Malanga (for Andy Warhol): Che Guevara, 1968



대량 생산으로 상품들이 점점 늘어가면서,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진 것들에 대해 점점 무관심해기 시작했다. 


이런 사람들의 무관심을 보여주기 위해 아주 많은 양의 캠밸수프를 작품으로 만든 것이나, 바나나 그림 그리고 마릴린 먼로 등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앤디 워홀의 유명한 작품들이다. 


이 중 가장 높은 가격을 기록한 워홀의 그림은 1963년에 제작된 캔버스로 약 1억 달러에 거래된 '여덟 명의 엘비스(Eight Evises)’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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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y Warhol, Eight Evises, 1963


그는 영화도 많이 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이 실험영화였기 때문에, 일반 대중들에게는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크기변환]앤디워홀이 프로듀싱한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첫 앨범자켓 '벨벳 언더 그라운드&니코'.jpg

앤디워홀이 프로듀싱한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첫 앨범자켓 <벨벳 언더 그라운드&니코>



그가 찍은 영화들로는 자신이 먹는 모습을 찍거나, 누군가의 자는 모습을 찍는 등, 동성애 코드가 들어간 작품들이 많았다.


[크기변환]Still Image of Kiss (Andy Warhol, 1963-64), 16mm, black & white, silent, 48 min.jpg

Still Image of Kiss (Andy Warhol, 1963-64), 16mm, black & white, silent, 48 min


그는 여러 여자들과 염문을 뿌리고 다녔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앤디 워홀은 동성애자였고, 그 스스로 평생 남자를 사랑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영화감독으로서 뿐만 아니라, 영화배우로서도 활약을 했다. 


인종차별과 성차별, 히피와 같은 시대적 묘사가 등장했었던 영화  '맨 인 블랙3'에  앤디 워홀과 그의 팩토리가 구체적인 인명과 장소로서 동원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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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으로서의 앤디 워홀


영화 속 그의 작업실은 굉장히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 이유는 팩토리가 그의 작업실이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사교장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워홀은 이 영화에서 아주 이상한 외계인처럼 행동하는 맨인블랙의 한 요원으로서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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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맨인블랙 3 중 앤디워홀과 그의 작업실 factory



6. "미래엔 누구나 15분 내외로 유명해질 수 있다”


(다음에 계속…)



최지혜

유로저널칼럼니스트, 아트컨설턴트

메일 : choijihye107@gmail.com

블로그 : blog.daum.net/sam107

페이스북 : Art Consultant Jihye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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