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우리 심층의 갈망을 일깨워 줄 영웅은?(2)
앤디 워홀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예술가는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똑같다고 생각했다. 워홀은 종종 불만스럽게 물었다. "왜 예술가를 특별하게 보느냐. 예술가는 단지 하나의 직업(just another job) 일 뿐이다."
Andy Warhol Self Portrait Drag
그는 일부 부유한 계층의 전유물이다시피 한 미술품에 현대 산업 사회의 대량 생산의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값싼 미술품을 일반 대중도 구입할 수 있게 하는, 미술품의 대중화란 생각을 널리 퍼지게 했다.
영웅은 보통 스승과의 만남의 단계에서 자신의 힘만으로는 넘어서기 힘든 장애물을 정신적인 스승을 만나 극복하게 된다. 정신적인 스승, 즉 멘토는 확신, 경험, 지혜를 제공하여 영웅이 경계점을 건널 수 있도록 격려하고 용기를 주게 된다.
여기서 워홀의 스승은 다름 아닌 자신에 대한 확신이었다.
영웅의 여정 12 단계
4) 공장(Factory) 노동자 (승락 및 결심 - 관문 통과)
워홀은 뉴욕에 자신의 작업실을 "Factory"라고 이름 지었다. 자신의 손을 기계와 같이 생각하고, 공장에서 일을 하듯이 작품을 대량으로 뽑아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워홀은 이 "공장"에서 실크스크린 작업 이외에도 사진, 영화, 패션, 비디오, 텔레비젼 광고와 음악까지 모두 만들고 제작했다. 말그대로 이곳은 예술을 만들어내는 공장이었다.
Andy Warhol's Factory
그의 작업 스타일은 이랬다. 먼저 즉석사진기를 항상 갖고 다니면서 스타들이 몰리는 곳에 가서 보게 되는 스타들의 모습을 즉석 사진기로 찍었다. 그리고 공장으로 돌아 와서 그 스타들의 사진을 실크스크린으로 작품화하여 그 스타들에게 알렸다.
그리고는 "Factory"에 와서 사진을 찾아가라고 전했다. 자기 얼굴에 색깔을 입힌 커다란 벽화 만한 실크스크린 작품을 보고 싫어했던 스타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워홀은 그 작품들을 스타들에게 직접 비싸게 팔았다.
워홀은 그렇게 돈을 벌었고, 좋아하는 스타들을 항상 직접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Factory"는 스타들에게 뉴욕의 명소가 되어 더욱 더 많은 유명인들이 드나들면서 그들은 이곳을 자신들의 쉼터와 놀이 공간으로까지 생각했다.
Andy Warhol and friends at The Factory (1968)
이렇게 워홀의 대중과 스타들을 상대로 하는 비지니스는 성공적이었다. 그의 용의 주도함, 또한 미래를 내다보는 뛰어난 사업적 수단이 그대로 적중하면서 워홀의 실크스크린에 찍혀 세상에 나가는 작품의 스타는 더욱 유명해졌다.
워홀은 자주 "Factory" 파티를 열어 시끄러운 팝음악으로 동네를 시끌벌적하게 만들었다. 멀리서도 한눈에 보이는 그의 커다란 실크스크린 현수막을 내걸고, 각종 스타들을 초대하고 따로 엄숙한 갤러리가 필요 없이, 자신의 작업실 "Factory"를 파티 분위기로 공개함으로써 자신의 작품과 생활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파티 전시와 같은 혁신적인 방식으로 생각지 못한 작품들을 보여줘도 사람들은 그를 사랑했다. 왜냐하면 그는 대중이 좋아하는 작품을 했고, 또한 그 자체가 이미 대중의 스타였기 때문이다.
"Factory"에서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그의 영화는, 전위적(前衛的)이지만 언제나 대중에게 화제거리를 제공했다. 종종 유명인들이 등장하기도 했지만, 매춘부와 부랑아, 배우 지망생 등이 출연해 일약 스타덤에 오르는 경우가 더 많았다.
Andy Warhol's Factory (1969)
즉, 그의 "Factory"는 그 자신을 포함해, 말그대로 슈퍼스타 제작소였다. <오럴 섹스>, <키스> 등의 영화에 출연했던 이름 없던 친구들이 앤디 워홀에 의해 포르노스타가 되어 장차 미국의 포르노산업에 기여했다고 평하는 이들도 있다.
워홀은 깡마른 체구에 머리에 가발을 쓰고 다녔다. 그의 얼굴은 색소가 점점 없어지는 백반증을 앓고 있었고, 그래서인지 우수꽝스러운 커다란 안경을 쓰고 다녔다. 그런데 그가 하고다니는 스타일은 선풍적으로 뉴욕안에서 큰 유행을 이끌었다. 패션 아이콘으로서 보통 사람들은 쓸 수 없을 듯한 가발과 안경은 그에게서 뗄 수 없는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Andy Warhol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했던 위험과 도전으로 가득찬 미지의 세계에서 온갖 시련과 역경에 직면했었던 영웅들은 홀로 또는 조력자들의 도움을 받아 이 낮설고 위험한 세계에서 가혹한 시련들을 극복하고 이 여정의 목표인 "위대한 선물" 또는 "Boon"을 쟁취하게 된다.
여기서 "Boon"이란 프로메테우스의 불, 세종대왕의 한글, 예수가 부활 후 가져 온 인간과 신과의 화해를 통해 가져온 영생 등을 평범한 사람들에게 전파함으로써 세계를 보다 개선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워홀은 모험을 받아들이고 특별한 세계, 뉴욕으로 건너왔고, 자신이 살고 있던 일상의 세계에서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세계로 뛰어드는 경계점을 넘어서 예술의 대량 생산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Boon'으로써 만들어나갔다. 즉, 자신의 현재 안전지대를 완전히 벗어나 나아갔다.
5) 코카 콜라 예술 (시험에 들고 동지와 적의 출현)
이 때, 관문수호자(threshold guardian)는 영웅의 배짱을 시험하게 된다.
1960년대 미국은 1929년 있었던 경제 대 공황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이른바 소비 자본주의가 지배하기 시작한 때이다. 이제 사람들은 먹고 살만 해졌고, 넘치는 상품속에서 자신의 기호에 맞는 것을 소비하기 시작했다. 또한 텔레비젼의 보급으로, 대중 스타와 브랜드를 찾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앤디 워홀, Coca-Cola 3, 1962
워홀은 이 특별한 세계에 도착해서, 세계에서 임무를 수행하거나 살아남는 방법을 이해하고 배워야만 했다. 그때 그가 배운 것이 바로 당시 사회적 상황과 대중 심리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었다.
(다음에 계속…)
최지혜 유로저널칼럼니스트 / 아트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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