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에서 문화인류학자 조한혜정 교수와 함께하는 초청의 밤이 열렸다.
문화인류학자인 조한혜정 교수가 베를린을 방문하여, 베를린에 거주하는 청년들과 교민들을 만나서 “나는 지금, 왜, 베를린에서 살고 있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난 달, 연세대 문과대 동창회에서 올해의 연문인 수상자로 선정된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는 1999년에 서울시립청소년직업센터인 ‘하자센터’를 설립하였고, 여성과 청소년, 그리고 청년들의 창의적 공공지대와 공생의 가치 등을 계속 이야기 해왔다. 베를린의 거주하는 청년과 교민들과의 만남의 자리는 지난 달 23일, 베를린의 크로이츠벡의 독일녹색당 시의원의 사무실에서 이루어졌다.
제주와 서울을 오가며 지내고 있다는 조한혜정 교수는 요새 나가고 있다는 ‘난감모임’을 소개하였다. 난감한 일들을 서로 모여서 이야기하다 보면, 자연스레 풀리는 이야기 모임 이라고 설명하며, 이 날의 자리도 그와 같이 편안하게 대화가 오가길 바란다고 하였다. 각자의 경험을 서로 이야기하고 알아가다 보면 문제가 안 풀려도 타인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고, 그것으로 인해서 결국에는 문제가 풀린다고 한다.
글로벌 시민으로서 독일에 살며 떠나와 있는 한국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할 것인가에 대한 다양한 고민과 대화가 이어졌다. 한국은 지금 여성혐오가 너무 심해서 남녀 전쟁이 일어난 것과 같은 상황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식으로 오히려 더 이상 상식이 통하지 않는 상황이 되고 있고, 그것이 정상 상태가 되어버리는 너무 괴로운 한국의 상황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함께 고민하였다. 군사주의와 관련되어 여성을 노예와 도구로 취급해온 문화가 뿌리깊게 남아서, 신자유주의 이후에는 여성이 사회의 동등한 성원이 되지 못하게 하는 위력이 행사되는 것으로 재생산되고 있다. 조한혜정 교수는 8,90년대 이후에 출현한 여성시민들이 새로운 희망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시민감각을 가진 여성들에 의한 다양한 문제의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한국에서 마스크를 쓰고 시위에 참가하는 20대와 30대, 그리고 10대 여성 참가자들은 대부분이 각자가 참가하는 개별자이고, 불법촬영이 유통되는 스마트폰 세대로 일상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경험을 가지고 있어서, 화장실에 갈 때조차 불안을 느낀다고 한다. 불특정 다수를 향한 신상털기과 불법촬영의 환경 속에서 자살 사건과 같은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며, 인터넷 이후의 세대가 느끼는 불안과 공포는 매우 크다. 신자유주의의 세대는 역사나 자매애와 같은 연대의 감각이 없이, ‘내가 최고’라는 근대가 생산한 개인성의 나르시즘 속에서 ‘멋진 나’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세대로서, 위험하거나 예외적인 상황에서 갑자기 무너져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고 설명하였다.
불법촬영은 국가가 진작에 풀었어야 했으나, 검찰이 여자들이 놀림 받는 것에 대해서 어떠한 감각도 없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해결하지 않았고, 기본적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 왔다.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가는 상황에서, 여자에게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여학생들이 여행객들을 위하여 한국 내에 불법촬영으로 위험한 장소의 목록을 만들어서 정보를 제공하며 다른 나라의 여성들과 글로벌시민으로서 연대하고 있고, 이민을 가는 여성의 수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뮌헨에서 온 한 참가자는 한국을 떠나 온지 오래 되어서 지금의 세대를 잘 알지 못하여, 젊은 세대들은 대접받고 자랐으니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살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는데, 혼자서 헤쳐나가기에는 좀 어려운 시기가 아닐까 처음 생각하게 되었고, 그들이 가진 어려움에 대해서 좀 더 이해하게 되었다고 했다.
조한혜정 교수는 ‘전환’의 시절에 일본에서 나온 용어인 내가 안전하게 느끼는 공간이라는 뜻인 ‘이바쇼’라는 것에 대해서도 소개하며, 내가 안전하게 있고, 나의 속도로 살 수 있고, 관계망 속에서 지지 받는다고 느낀다면, 그 다음 길이 보일 것이라고 하였다. 내가 가깝게 갈 수 있는 곳에 믿을 수 있고 말이 통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중요하며, 우리가 스스로 도울 수 있는 사람인가에 대한 물음 또한 중요하다고 하였다. 스스로 도우면 생각과 행동이 내 문제에서 나오기 때문에, 실패하더라도 그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가 같이 생긴다. 더 이상은 네트워크하고 연결하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고, 각자가 최선을 다 해서 사는 것으로 변화를 시작해야 하는 사회가 되었다고 한다. 공무원도 자기가 사는 곳의 일을 도우려는 시민이 공무원이 되는 ‘시민공무원’의 개념이 필요하며,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자율노동을 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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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일어났던 대형 참사 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헬조선’과 같은 말을 만들어 내는 것은 계속 사회에 대한 상황인식을 하고 있는 것으로, 한국사회의 희망적인 지점이라고 한다. 성불평등 상황은 여성문제가 아니고 남성문제이기도 하여, 여성과 남성 사이에 다양한 통역자가 필요하고, 그러한 움직임들이 더 활성화되길 기대하였다. 독일 또한 여전히 남녀평등에 대한 여러 가지 사건을 겪고 있지만, 이주민과 독일인들이 한 장소에 살면서도 서로가 서로를 자신의 문제로 생각하지 않아서 연대하지 않고, 나란히 평행하는 두 개의 사회로 분리되어 살아가는 것에 대한 대화도 오고 갔다.
이틀 후 일요일 <세계 여성 폭력 철폐의 날>에 베를린의 노이쾰른에서 열린 “베를린 페미니스트 국제 연합”의 행사에서 몇몇 참가자들이 조한혜정 교수를 다시 만났다. 도미니카 공화국과 라틴 아메리카, 인도 등 다양한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여성에 대한 반 폭력의 목소리를 들은 후, 크로이츠벡까지 많은 사람들이 거리 행진을 하였다. 여성참가자로만 한정되었던 행사는 시간이 지나 깜깜한 중에도 계속 인원이 늘어났다. 행진이 종료된 후 베를린의 국제여성단체인 IWS(International Women Space)가 만든 독일 내 난민과 이주민 여성의 이야기가 담긴 도서 발간 행사에 참여하였다. IWS의 한국인 회원인 채혜원씨는 일본군 ‘위안부’문제를 다룬 영상 상영과 함께 이에 대해 발언했다. 조한혜정 교수는 한국에 돌아가서 정부의 새로운 여성정책자문위원회에서 활동할 예정이다.
독일 유로저널 이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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