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성의 시사 칼럼 (5회) -
명분과 실리
2017년 개봉한 '남한산성'은 김훈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것으로 1636년 병자호란 당시 고립무원의 남한산성에서 갇혀 나라의 운명을 결정했던 47일간의 역사를 다룬다. "적의 아가리 속에서도 분명 삶의 길은 있다." "그 삶은 곧 죽음이다. 한 나라의 군왕이 어찌 치욕스러운 삶을 구걸하느냐." 영화는 현실에서 삶의 길을 찾는 주화파(主和派)의 대표 최명길과 대의명분을 목숨보다 중시하는 척화파(斥和派)의 대표 김상헌의 치열한 설전을 잘 담고 있다. 당시 조선의 지배사상은 명분과 체면을 중시한 주자학이었다. 이런 조선의 지배사상 하에서는 명분이 실리보다 훨씬 정의롭고 바른 길로 보였을 것이다.
크게는 국내외 정치에서, 작게는 개인의 일상에서 명분과 실리는 끊임없이 충돌한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자결을 시도한 김상헌은 죽지 않고 살아남았고 나중에 청나라로 끌려갔다. 최명길 역시 이후에 명나라와 비밀 교섭을 도모한 사실이 발각돼 청으로 압송됐다. 이 때 조우한 두 사람은 의심을 풀고 서로의 진심을 이해했다고 전해진다. 결국 두 사람은 명분주의자면서 동시에 실리주의자였던 것이다. 정치에서 명분과 실리를 억지로 나누는 일은 부질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정치란 영원한 숙제 같은 명분과 실리 사이의 황금률을 찾아가는 과정일 수도 있다.
(손혜원 측근들이 구입한 부동산 : 출처 한국일보)
영국에서 브렉시트를 둘러싼 논쟁이 치열한 동안, 한국에서는 신혜원 의원을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이 장기간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전라남도 목포의 낙후한 구도심의 부동산을 대량 매입한 것이 투기 (개인의 실리추구)냐 아니면 문화 사랑에서 우러난 정책결정 행위 (국회의원으로서 공무 행위)냐를 놓고 벌어지고 있는 논란의 핵심은 선출직 국회의원으로서 이익충돌의 의무를 위반했느냐와 행동규범을 준수했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손혜원 의원의 이익충돌 의혹과 관련하여 제기된 사항은, 그가 친인척과 지인들을 설득하거나 정보를 제공해 목포 구도심에 있는 부동산을 집중적으로 매입했고, 그 와중에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여당 간사로 활동하면서 해당 지역의 등록문화재 지정을 촉구하는 취지로 발언하여 공직자로서 이해충돌 금지 의무를 저버렸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공직자가 자신이 수행하는 직무가 자신의 재산상 이해와 관련해 공정한 직무 수행이 어려운 상황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공직자윤리법 등에 기반한다.
반면 손의원은 국회의원이 되기 전부터 문화재단을 운영했고 문화재에 관심이 많았다면서 2017년 대통령 선거를 돕기 위해 목포에 방문했다가 목포에 있는 버려진 목조 주택과 공장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문화적으로 목포가 재생시킬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 주변 사람들에게 목포에 내려가라고 독려했다고 항변하고 있다.
국회의원 행동 규범은 선출직 의원으로서 공식적인 자격으로 행동하거나 발언할 때 적용된다. 즉, 소속위원회에 참석하여 발언하거나 국회의원으로서 이메일을 보내거나, 국회의원 자격으로 공청회 등에 참석할 때에는 이 규범이 적용된다. 당연히 개인 자격으로 결혼식에 참여한다거나 모임에 참석하는 경우에는 이 규범이 적용되지 않는다.
킹스톤 시의 경우 선출직 의원에게 요구하는 기본 자세는 사심 없는 행동, 진실성, 객관성, 책임감, 개방성, 정직성, 리더쉽 등이다. 또, 의무사항으로는 타인을 존중하고, 타인을 괴롭히지 말고, 누구나 평등하게 대하고, 관리들을 공평하게 절충하고, 자신의 사무실이나 조직을 분쟁에 끌어들이는 않도록 행동하고, 기밀사항을 유출하지 말고, 타인에게 부적절한 이익이나 불이익을 주지 말고, 자신이 사용하는 공적자산을 사적으로 부당하게 사용하지 말 것 등을 요구하고 있다.
(손혜원 측근들이 구입한 부동산 : 출처 한국일보)
항상 대중의 평가 앞에 자신을 내보여야 하는 정치인에게 있어 대의명분과 국가적, 사회적 실리는 반드시 추구해야 할 가치기준의 중심에 있다. 이는 윤리적 기준과 법적 잣대에서 앞서 정치인으로서의 존재의 이유이기도 하다. 손의원 사태를 보면서 법률 위반 여부를 떠나 막강한 권한과 정보를 가진 손의원이 국회의원으로서의 정치적 윤리나 사회정의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1,000만명 이상이 참여해 국정농단을 심판한 '촛불혁명' 이후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촛불혁명의 종착점은 권위주의 통치의 종식과 반칙과 특권 없는 공정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나타났다. 당시 정치권은 이원집정부제나 4년중임제 등 권력구조 개편에 더 관심을 보이지만, 국민은 재벌과 권력의 유착 철폐에 더 주목하고 있었다. 특히 2030세대가 비리의 온상이 된 재벌-권력 유착관계에 분노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아직도 국민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제 밥그릇 챙기기에 더 바쁜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는 없는지 국민의 철저한 감시와 견제가 필요하다.
하재성
jaesungha@yahoo.com
유로저널 칼럼니스트
킹스톤 시의원 (Councillor of Kingston upon Tha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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