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혜의 예술 칼럼 (202)
현재의 미술의 주도권은?
당시 모마 이사회의 존 헤이 휘트니는 심리전략위원회 위원으로서 국가안전보장회의에 직접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했고, 윌리엄 버든은 중앙정보국의 비밀 공작기금을 세탁하는 파필드 재단(Farfield Foundation) 이사장으로 위촉됐다.
또한 모마의 실질적인 지배자 넬슨 록펠러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심리전을 위한 핵심 고문으로 임명되었고, 관장을 지낸 톰 브레이든은 실무 총책임자로서 중앙정보국 요원이 되어 문화전쟁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당시 소련에서는 정치적 목표와 이념을 부각시키는데 사회주의 리얼리즘 미술을 이용했다. 이것은 전체와 집단을 중시하며, 양식상으로는 구상적인 미술이었다.
보리스 블라디미르스키, 스탈린에게 장미를, 1949
CIA의 목표는 소련과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미국의 미술을 진흥시켜 미국의 사상적·문화적 우위를 유럽을 비롯한 세계에 확실하게 인식시키는 일이었다. 이에 따라 CIA는 모마 출신 인사들의 협력을 받아 정치와 이념으로부터 자유롭고, 개인주의적이며, 양식상으로도 추상적인 미술, 곧 추상표현주의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게 되었다.
물론 이런 작업은 모두 비밀리에 착수되었다. CIA가 추상표현주의를 밀고 있다는 사실이 세계에 공개될 경우 이는 대외적으로 소련에 맞서는 미국의 전략이 공개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대내적으로는 추상표현주의 같은 전위예술을 좋아하지 않는 미국 내 보수인사들의 반발을 살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때 미국 보수주의자들이 가장 선호한 미술가는 당시 전형적인 미국인들의 모습을 구상적으로 표현한 노먼 록웰이었다. 그는 지금도 영화 스타워즈의 감독 조지 루카스와 영화 E.T.의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를 포함해 많은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구상 화가로 당시의 유럽 지성인들에게 미국 문화의 우수성을 어필하기는 힘들었다.
노먼 록웰, Girl reading Palm, 1921
그런데, 추상표현주의는 유럽의 전위미술보다 더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인상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CIA의 러시아 담당 도널드 제임슨의 말처럼 “사회주의 리얼리즘 미술을 실제보다 더 양식화되고 완고하고 제한된 미술로 보이게 만드는 미술”이었다.
Joan Mitchell, Bracket, 1989
유럽에서의 공작은 ‘문화적 자유를 위한 회의’(Congress for Cultural Freedom)라는 CIA의 전위조직을 통해 주로 전시를 개최하는 방식으로 행해졌다. 대표적인 예로는 1952년 파리에서 열린 ‘걸작의 향연’전, 1955년 로마에서 열린 ‘젊은 화가들’전이 있다.
물론 CIA는 재벌들의 작품 구매도 촉진했다. 또한 미국 안에서도 추상표현주의에 우호적인 환경이 만들어지도록 많은 노력을 했다.
윌렘 드 쿠닝, 무제 XXI, 1982 (필라델피아 미술관 소장)
Clyfford Still, PH-950, 1950
Ad Reinhardt, Untitled (Red and Gray), 1950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비평가로 손꼽히는 클레먼트 그린버그도 모마와의 교감 속에서 추상표현주의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비평가로서의 그의 지식과 논리 정연한 이론으로 추상표현주의가 국제적으로 공인 받는 데 사실 큰 역할을 담당했다.
그린버그는 추상표현주의가 화가들이 지향해야 하는 미술인 이유가 바로 그것이 지니는 최대의 평면성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또 다른 비평가였던 로젠버그는 추상표현주의, 특히나 잭슨 폴록(Jackson Pollok)의 작품을 지지하는 이론을 펼쳤는데, 그것은 그린버그의 이론과는 사뭇 달랐다.
Painter Jackson Pollock working in his studio, dropping paint onto canvas
로젠버그는 예술을 ‘행동 (action)’으로, 예술가를 ‘행동가 (actor)’로 정의하며 캔버스를 ‘그 안에서 행동할 수 있는 장 (arena)’으로 지칭했다. 이것은 그가 예술을 삶을 이루는 사건들 중 하나로 여겼기 때문이다.
Jackson Pollock, Yellow Islands, 1952
그에게 예술이란 사회와 동떨어져서 고유한 위치를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닌, 끊임없이 외부와 상호작용 하며 영향을 미치는 존재였다. 그는 작품이 ‘평면성’을 추구하며 남은 ‘결과물’이라는 그린버그의 이론과는 달리, 캔버스와 화가가 만나서 행하는 ‘행동’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에 계속…)
최지혜
유로저널칼럼니스트 / 아트컨설턴트
메일 : choijihye107@gmail.com
블로그 : blog.daum.net/sam107
페이스북 : Art Consultant Jihye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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