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미리의 파리에서 랑데뷰

조선을 사랑한 법국의 외교관 <첫번째 이야기>

by 편집부 posted Apr 03,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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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를 방문하거나 거주하면서 경험하고싶은 프랑스 예술의 전시회를 추천하는


파리에서 에이미와 헝데부 (Rendez-vous)(8)



조선을 사랑한 법국의 외교관 <첫번째 이야기>



 오래된 기억들은 우리에게 선명하게 남아 있기도하고 때로는 희미하고 아련한 그리움같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수 많은 동양의 예술품과 한국의 유품들을 동양의 박물관으로 불리워지는 기메 뮤지움(Musee Guimet)에서 보게 된 날 그 오랜 시간에 묻혀있는 예술품들의 사연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었다. 크지 않은 공간에 전시된 조선시대의 유물들은 동방의 신비함을 담고 그 시대의 추억을 담고 먼길을 떠나 오늘 파리 시내에 전시되어 있다.


이 아름다운 조선의 유물들을 프랑스에 주로 전해진 배경은 박물관에 명확히 기재된 기증자의 이름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는 조선을 사랑한 외교관 콜랭 드 플랑시 (Colin de Plancy, 1853- 1922)이다. 


1888년 조선의 첫 프랑스 공사로 부임해 재임 당시 다양한 한국의 예술품들 토기와 도자기 등 수 많은 유품들을 구입하고 수집하여 프랑스의 여러 박물관에 기증하고 특히 조선의 대부분의 고서들은 그의 모교와 국립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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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랭 드 플랑시 와 고종 왕 



콜랭 드 플랑시는 1853년 11월 프랑스 동북부에 위치한 메르 쉬르 센느 (Mery-Sur-Seine) 소재지의 플랑시 라베이 (Plancy l'Abbaye)란 마을에서 태어났다. 인쇄소를 운영하는 아버지 덕분인 지 책에 관심이 많았고 그 당시 외교관을 양성하는 동양어 학교(Ecole des langues orientales)에 입학해 전문적으로 중국어를 공부하고 상해 주재 영사로 파견되어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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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랑 드 플랑시 수집품



이어 그는 조선의 개화정책으로 서양국가들과 문호가 개방되자 프랑스와 정식 우호를 맺게 된 1886 년에 '한불우호조약비준서' 교환을 위해 콜랭 드 플랑시는 조선을 방문하였고 그 후 정식 외교관으로 조선에 부임하여 1887년 고종 25 년 그 해에 최초 주한 프랑스 대리공사로 약 3년간 임기를 마치고 프랑스로 떠났었다.


그는 다시 6년 후인 1896 고종 33년에 한국으로 재 부임하여 1906년 까지 총 13년의 시간을 조선에서 보내며 특히 많은 고서들을 수집하고 수집된 고서들을 그의 통역사이던 모리스 쿠랑 (Maurice Courant)를 통해 간행한 후, 우리 조선의 책들 목록을 만들도록 해 <조선서지학> 3권을 발행하게 하였다. 



<서지>는 고서들을 주제와 분야별로 분류하여 수년간 연구 후 한자 서명, 로마자, 프랑스어 번역 서명으로 구성하여 1896년 발행되었고 오늘날 한국학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있다.



콜랭 드 플랑시는 재임 당시 고종과 깊은 친분을 가지면서 조선에 서구 문화를 소개하고 조선의 발전에 선구적인 역활을 하였다. 한국학 중앙 연구원 기록에 따르면 1988년 클레망세 (Clemencet)를 대한제국 농상공부 우체국장 에 임명하여 한국체신 발전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가져왔다.



1900년에는 모든 우표, 우편엽서를 프랑스에 의뢰하고 한국과 프랑스간에 우편협정을 체결한다. 또한 1900년 법무 고문관으로 크레마지 (Cremazy. L)를 임명하고 철도, 광산, 기술 분야에 15명의 프랑스인을 한국 정부의 중요 관직에 두며 조선의 현대화 추진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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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 ‘ 한국관


특히, 프랑스 공사관 콜랭 드 플랑시는 1900에 열린 '파리만국박람회'(Exposition Unive rselle)에 조선의 참가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1900년 서울의 추억' (Souvenir de Seoul 1900)이란 제목으로 역사적인 참가를 하게 되었다. 


고종은 이 행사를 위해 '한국관' 이라는 경복궁 근정전을 모델로 전시관을 지어서 역사적 행사에서 우리 조선의 위상을 높였다.



신비하게 세워진 대한제국 전시관에서 한국의 농산물과 공예품, 많은 왕실의 사진들, 왕실의 개인소장품들, 고궁과 서울의 전경 및 한국의 풍경이 담긴 콜랭 드 플랑시 본인이 한국에서 수집한 한국 고서들, 그림들, 서화, 병풍, 공예품, 가구, 자개제품, 국악기 등이 전시 되었다.



특히, 다양하고 가치높은 예술품들을 1883년 공식화된 국기인 태극기와 함께 독립 국가로 참가하면서 "은둔의 나라" 였던 조선에서 대한제국이란 이름으로 근대화를 추진했던 상징적인 의미를 많은 기록을 통해 확인할수 있다. 


콜랭 드 플랑시는 13년이란 재임 기간동안 서양인으로 조선에 대한 깊은 이해와 각별한 애정으로 직접 전국의 서점이나 사찰에서 약 3000점이 넘는 한국고서와 예술품을 중국과는 현저히 다르다는 전문가의 식견으로 수집하고 소장품을 박물관에 기증했다. 



그 시대 구한말, 이미 서구 사회의 상업적 자본주의 가치관을 가졌던 다른 외국인 사업가나 탐험가와 다르게 콜랭 드 플랑시는 조선의 순수한 열정과 해박한 학문적 시각으로 조선의 예술품을 수집하고 조선을 사모했던 것이다.



콜랭 드 플랑시가 수집한 약 2500 여점의 조선의 콜렉션은 잊혀질 수 없는 우리의 보물들이다.

이 주옥 같은 보물들이 영원히 우리 가슴속에 추억으로 새기며 세계적인 가치로 영원히 기억되기를 바라고 있다. 


비록 이 아름다움을 한국이 아닌 곳에서 만나 아쉽고 안타까웠지만 세계적인 프랑스 박물관에 잘 보관되고 전시되어서 그 아름다움이 세계적으로 더 알려질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언젠가는 한국 땅으로 돌아가 한국에서 이 아름다움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콜랭 드 플랑시가 발견한 조선은 그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그는 왜 조선을 사랑했을까?


그에 대한 궁금함을 감추지 못하고 그에게 존재하고있는 조선의 추억을 계속 찾아보리라 생각했다.


그가 조선에서 발견한 우리가 기억해야 될 중요한 유산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소개할 것이다.


콜랭 드 플랑시 콜렉션 박물관

기메 박물관 

(Musee national des arts asiatiques Guimet) 6 Place d'iena, 75116 Paris

세브르 도자기박물관 프랑스 

(Musee national de ceramique) Place de la manufacture 92310


 프랑스 유로저널 에이미리 기자

eurojournal29@ek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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