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에이미와 헝데부 (Rendez-vous) (14)
패션의 혁명가 이브 생 로랑 (Yves Saint Laurent) (1936 - 2008)
'패션은 사라지지만 스타일은 영원하다' (Fashion fade- style is eternal )
프랑스에서 오월은 프랑스 역사상 중요한 지표가 된 1968년 오월 혁명이 있었고, 프랑스 패션의 혁명가는 프랑스 예술패션의 선구자인 이브 생 로랑이다.
1936년 8월 1일에 태어나 2008년 6월 1일 사망한 그의 11주년을 맞아 그의 작품 세계와 생애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으려고 한다.
그는 20세기 최고의 패션 디자이너로 손꼽히며 동서양 패션 역사의 큰 의미로 전통과 고정관념을 삭제하고 빠르게 변화하던 그 시대에 획기적인 존재로 대중들에게 알려지고 있다.
과거의 상류층 프랑스인들의 쿠튀르는 보수적이며 우아하고 엘레강스한 스타일을 선호하며 그들의 우월함을 과시하였지만, 50년 말 종전 후 부유해진 기존의 보수주의와 차별화된 소비와 여가문화, 이른바 ‘새로운 물결( nouvelle vague)'이라 불리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면서 부유해진 신 계층의 젊은 여성들의 욕구는 생 로랑 의‘다문화 주의’ 패션을 표현 하기에 충분한 배경이 되었다.
여성의 자유가 선사된 수트와 누드 룩 패션
60년 70년 생로랑의 아이콘
스모킹룩패션과 에스닉룩 ethniclook (민속풍 패션)
그는 여성 패션에 파격적인 혁명을 일으킨다, 남성의 상징인 수트를 과장되지 않은 여성의 섹시함을 가미한 독특한 창조 라인으로 여자만의 바지 수트와 최초로 여성 턱시도를 소개하며 여성에게 자유를 선사했다.
그리고 최초로 흑인과 동양인 모델을 기용하고 68년에는 코브라의 투명한 드레스를 선보이면서 ‘누드 룩’ 을 처음으로 소개하며 패션계의 파문을 일으켰다.
같은 해 사하라 사막 여인이라는 컨셉으로 최초로 사파리 자켓과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부츠와 스타일은 여성의 섹시함으로 세계적인 극찬을 받았다. 1967년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화려한 색채와 이국적 민속풍 패션, 70 년대에는 러시아와 중국 등 오리엔탈리즘의 의상을 발표하면서 히피 스타일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가 몸담았던 40년이 넘는 패션 시간 속에 그의 프랑스 패션 무대에 반항적이며 획기적인 컨셉은 매우 선구적이였으며 발표하는 켈럭션 모두가 프랑스인들의 예술철학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의 인생과 패션스토리
이브 앙리 도나 마티유 생 로랑 ( Yves Henri Donat Mathieu-Saint-Lauren )은 1936년 8월 1일 프랑스령 알제리 오랑에서 태어났다. 병약하고 내성적이었던 그는 어려서부터 천재적인 데생 실력으로 어린시절에 이미 패션 디자인에 천재 이상의 재능을 보였다. 1953년 어머니의 권유로 패션 디자이너 콘테스트에 참가하여 3등을 차지하며 언론계 주목을 받았다.
이어 1954년 파리의 의상 학교입학 후 국제 양모 사무국에서 개최한 대회에서 드레스부분에서 일등을 차지하며 1955년 크리스티앙 디오르( Christian Dior 1905 - 1957 )에게 발탁되어 그의 어시스턴트로 일하며 어린나이에 디오르의 아끼는 수제자가 되었다.
1957년 디오르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21세의 젊은 나이로 디오르의 수석 디자이너를 맡으며 1958년 첫 번째 컬렉션 '트라페즈'( 어깨라인의 폭이 넓고 아래로 갈수록 실루엣이 넓어지는 스타일)로 큰 성공은 거두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는다.
이브 생 로랑의 독특한 창조
1962년 디오르서 만난 회사 동료 피에로 베르제와 미국의 기업가 J.맥 로빈슨으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아 독립적인 활동으로 첫 번째 컬렉션으로 1월 29일 파리 스폰티니 거리 2번지에서 발표했다.
그 후 여성 고유의 특징은 살리면서 남성복의 수트를 가미해 과감하고 현대적 고전을 가미한 특유한 디자인으로 모든 여성들을 매료 시켰다, 그의 기성복 부티크인 Saint Laurent rive gauche가 1966년 정식 프랑스 오픈되고 1968년 뉴욕, 1969년 런던 그리고 남성 부티크가 생기고 1959년 이후에는 클래식 발레 의상을 만들기도 했다.
그는 수 많은 후기 인상파들 (피카소, 세르게이 댜길레프, 앙리 마티스장, 콕토조르주,입체주의 화가 브라크,반 고흐 )의 색감에서 큰 영향을 받았고 화가들을 항상 경찬했다, 1966년에는 여행지였던 모로코 마라케시를 발견하고 새 창조의 이국적 색감변화와 그의 새 디자인에 큰 영감을 주었다.
그의 패션은 여성에게 보수적 사상을 벗어나 우아함대신 자유와 활동적인 여성의 매력을 우아한 실루엣으로 표현한 새로운 여성상의 캐릭터를 그려냈다.
2002년 7월1일 패션계의 은퇴를 발표하고 7월 22일 퐁피두 쎈터에서 ( Pompidou centre )에서 100여명의 유명 모델들과 그의 지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가 창조한 반세기를 마지막으로 장식하고 영원히 무대뒤로 사라졌다. 그리고 2008년 6월 1일 그의 파리자택 7구에 위치한 바빌론가 55번지에서 뇌종양으로 71세의 나이로 패션의 혁명을 쟁취하고 대중의 곁을 떠났다.
그의 오랜 동성 연인이자 사업의 공동 설립자 피에르 베르제( Pierre Berge)는 예술과 문화를 사랑했고 이브 생 로랑을 사랑했다, 그는 확고한 신념과 뛰어난 감각으로 많은 예술가들을 발굴하고 지지하였으며 노후에는 인권적 차원의 지지를 프랑스 사회에 기증하고 기여했다.
이브 생 로랑이 사망 후 그들이 함께한 사랑을 회상하며 66년에 함께 했던 마라케시의 이국적인 야자수 나무 아래서 그들의 재회를 꿈꾸며 2017년 9월 8일 86세의 나이로 연인의 곁으로 떠났다.
이브생 로랑
“나는 우아함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그것이 오트 쿠튀르( Haute Couture) 단어와 같이 구식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남성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옷을 입는 여성을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매력이라는 단어가 우아함이라는 단어를 대체하였다. 모든 것이 바뀌었다. 옷입는 방식보다 삶의 방식이 중요하다”
“패션은 사라지지만 스타일은 영원하다."
“여성에게 입힐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옷은 사랑하는 남자의 두 팔이다. 이 행복을 찾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내가 존재한다."
“옷을 입으려고 하지말고 자신감을 입으라”
파리에서 에이미 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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