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심원의 영화로 세상 읽기: (52)
호로비츠를 위하여
감독 : 권형진
출연 : 엄정화(김지수), 신의재(윤경민), 박용호(심광호).
개봉 : 2006년 5월 25일
길고 긴 비행을 한다. 내 어릴 적 비행기를 타고 다니며 세계를 무대 삼을 수 있도록 희망하셨던 아버지의 기도를 떠올린다. 나도 모르는 사이 그 기도는 채질 화 된 기도가 되었고 늘 한결 같은 맘으로 언젠가 비행기를 타고 먼 이역을 다니며 사역할 날을 기대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기도는 마음과 정신이 굳어지면서 까맣게 잊혀졌다. 어느 날 비좁은 비행기에서 그렇게 잊었던 기도를 떠올렸다. 영국과 한국의 장시간의 비행시간에 온몸을 부르르 떨며 지루함과 육체의 힘든 고통을 잊기 위해 몸부림칠 때 그 기도는 내 안 깊숙한 곳에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좁은 화장실로 달려가 소리 없이 울었던 감흥이 기억 속에 잠재되어 있다. 언제는 그렇게 되기 위해 기도하였고, 지금은 그것이 힘들다 하여 불평하고 있는 내 철없는 모습을 보게 된다. 눈물을 애써 감추고 다시 비좁은 자리로 돌아왔을 때에 영화는 이미 시작하였다. 첫 부분을 놓치고 보통은 재미없는 것을 보여주는 비행시간의 영화상영 일 것이라 생각하고 평소에 엄정화, 그녀의 연기력에 높은 점수를 주었기에 영화의 내용과 관계없이 그녀를 보기 시작했다. 점차 그녀는 사라지고 영화 속의 피아니스트 ‘김지수’와 그의 눈물어린 몸부림에 몰입하게 되었다. 비행기 안에서 나는 내 영혼이 춤을 추는 것 같았다. 내 안에 감추어진 별들이 소리 지르는 듯 했다.
권형진 감독, 엄정화, 박용우, 신의재 주연의 『호로비츠를 위하여』 2006년에 개봉된 영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전해주는 감동은 근간에 개봉된 영화 그 이상이 된다. 영화를 촬영한 장소가 전라북도 익산시여서 내 인생이 스쳐간 장소와 맞물려 있어 감회가 더 새롭게 다가온다. 피아니스트 ‘호로비츠’(Viadimir Horowitw, 1904 - 1989)를 꿈꾸는 주인공 김지수의 애절한 꿈을 그린 영화다. 이런 말이 있다. ‘가문을 파괴하려면 정치인이 되고, 집안을 말아먹으려면 음악을 하라’ 누구의 말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한국 상황을 압축하여 설명하는 듯하여 마음에 와 닿는 말이다. 음악을 한다는 것은 경제적 부와 비례한다. 주인공 역시 어려운 환경에서 피아노를 전공하였다. 동기들은 유학을 다녀오며 줄을 잘 서기 위해 애끓는 노력을 하지만 그녀에게는 그 둘 다 존재하지 않았다. 줄을 서기 위해 자신의 양심을 팔지도 않았으며, 부모가 가진 것이 없어서 유학은 엄두도 못 내고 변두리 허름한 곳에 숨어들어 피아노 학원을 개설하는 것으로 그녀의 꿈을 대신한다.
학원을 시작하면서부터 동네에서 말썽꾸러기로 소문난 ‘윤경민’과 부딪히게 된다. 그녀는 혼란을 겪는다. 그것은 자존심에 관한 것이다. 학원을 하는 것은 현실을 벗어날 수 없는 삶의 현장이다. 잠시 그녀는 삶의 현실 앞에 자존심만 남겨 두고 따르기로 한다. 음악적 대성의 자존심이 있기에 잘 나가는 친구들에게는 비밀이었고 전공자만 가르치겠다는 광고를 붙이지만 학원운영의 어려움을 겪자 원생을 끌어 모으기 위해 잠시 자존심을 접기로 한다. 영화와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 현실을 영화로 만들어 낼 순 있지만 영화가 현실이 되기는 더 어려운 것이다. 우연찮게 말썽꾸러기 경민에게서 천재적 음악성을 발견하게 된다. 지수는 꿈을 꾼다. 학원 입구에 커다랗게 붙여 놓은 호로비츠 포스터, 경민이가 바로 제2의 호로비츠가 되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런 꿈의 씨앗을 심는다.
경민의 보호자였던 할머니가 죽자 양육의 현실에 부딪힌다. 틈틈이 피아노를 가르치며 함께 생활했지만 상황은 달라져야 했다. 아이 입양을 거론하자 형제들은 반대했다. 시집도 안간 처녀에게 입양은 입에도 꺼내기조차 불경스런 생각이었다. 친구에게 도움을 얻어 더 큰 선생이 있는 독일로 입양되어 유학을 떠나보낸다. 아이를 떠나 보내면서 지수는 반지를 빼어 아이의 손에 쥐어준다. 그것은 반지가 아니라 지수의 꿈을 넘겨주는 거룩한 꿈의 바통이었다. 영화의 마지막은 경민이 성공하여 지수에게는 호로비츠 그 이상의 피아니스트가 되어 귀국연주회를 하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연주회에서 한국말을 잃어버린 경민은 수많은 관중 앞에 지수를 떠올려 고맙다는 말을 한다. 그의 피아노 전율은 정충들을. 그리고 관중들을 몰입시킨다. 그의 손에는 꿈의 증표로 준 반지가 끼워져 있다.
꿈은 일종의 보석과도 같다. 보석은 보석 스스로 존재할 수 없다. 대부분이 감추어져 있다. 돌멩이처럼 굴러다닌다면 그 순간부터 보석이라 할 수 없다. 보석의 원재료는 돌멩이에 불과하다. 누군가 그 보석을 발견하여 깎아 내어 다듬고 연마하였을 때 보석이 빛을 발휘하게 된다. 꿈이 그러하다. 지극히 평범한 돌멩이에 갇혀 있다. 누군가 그의 재능을 발견해야 한다. 화려한 재능일리 없다. 다만 발견자의 눈에 그 작은 재능의 미래가 보여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꿈은 꿈을 발견해 낼 수 있는 사람에 의해 성장하도록 되어 있다. 사람이 완성한 꿈은 그렇게 서로 얽혀있다. 땅 속에 수많은 뿌리가 서로 얽혀 있듯이 사람이 이뤄야 하는 꿈 역시 그렇게 서로 부등켜안고 있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자기 시대에 꿈을 이루는 사람은 거의 없다. 혹여 꿈을 이뤘다 할지라도 그 꿈의 시작은 자신이 존재하기 전에 이미 누군가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러하기에 정상에 서 있다는 것은 나만을 위한 만찬의 자리가 아니다. 그 자리가 있기 까지 많은 눈물과 희생, 밤을 지새우며 고민했던 원초적인 꿈의 설계자가 존재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엄연하게 따진다면 꿈과 직업은 확연하게 다르다. 꿈을 이루기 위해 직업이 필요한 것이다. 꿈이라 함은 사람으로서 완성되는 과정이라 정의 내리는 것이 옳다. 그 꿈은 반드시 일정한 직업을 통하여 인생이 완성된다. 꿈과 직업을 일치시키게 되면 꿈을 완성한 이후에 오히려 방황하게 된다. 더 이상 올라갈 목표지점을 잃어 버렸기 때문이다.
호로비츠를 위하여, 그 주인공 김지수는 피아니스트라는 화려한 직업이 자신이 꿈임을 인지했다. 그러나 화려함은 이룰 수 없음을 인식하는 과정이 그녀의 자존심을 내려놓는 일종의 암흑의 터널이었다. 그 암흑기에서 깨달은 것은 피아니스트라는 직업이 꿈이 아님을 알게 된다. 자신이 배운 피아노의 능력을 통해 또 다른 사람을 키워내는 것이 그녀가 이루고 싶은 꿈이 된다. 학원이나 피아니스트는 꿈을 이루기 위한 발판이며 도구에 불과한 것이다. 꿈은 결코 박수갈채를 받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화려한 것이 아니다. 꿈을 꽃에 비유한다. 꽃이 꽃으로만 존재한다면 어떻게 보면 절망이다. 꽃은 반드시 져야 한다. 꽃은 열매라는 꿈을 이루는 과정일 뿐이다. 인생은 누구나 꿈을 꾸지만 그렇다고 그 꿈을 이루지는 못한다. 꿈 자체가 마음의 창고 한 구석에 빛을 보지 못하고 숨죽여 인생의 먼지를 뒤집어쓰고 그 형체를 알아 볼 수 없게 된다. 꿈은 언젠가 이루어지는 막연한 것이 아니다. 나로 시작된 꿈은 그 다음 유기체를 찾아내야 한다. 꿈은 꿈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그 꿈은 결코 빛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수의 화려한 꿈을 포기하고 그 안에 경민이라는 사람을 심었다. 그로 하여금 그녀의 꿈은 화려한 꽃을 피우고 열매를 거둔다. 그것이 꿈을 꾸는 인생의 연결고리이다. 나는 누군가로 부터의 꿈을 이어 받은 열매이고, 내 안에 잠재된 꿈은 또 다시 누군가로 연결되어 꿈을 꽃 피워 결국 열매를 맺힌다. 내 꿈은 누군가의 밭에서 싹을 틔웠으며 내 안에 꽃피운 꿈은 다시 누군가의 밭에 심겨져 열매를 거둔다.
박심원 유로저널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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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사, 시인, 수필가,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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