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혜의 예술 칼럼 (225)
나는 스타일이 없는 것을 좋아한다
2차 세계 대전 후 독일민주공화국(동독)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미술 교육을 받았던 게르하르 리히터는 새로운 추상미술에 호기심을 느끼고, 1961년 모스크바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던 중 독일연방공화국(서독)으로 도망쳤다. 이후 독일식 팝아트인 '자본주의 리얼리즘' 운동에서 새로운 길을 만나게 된다.
1961년부터 1964년까지 뒤셀도르프의 미술아카데미에서 카를 오토 괴츠(Karl Otto Goetz) 밑에서 수학하면서 시그마 폴케(Sigmar Polke), 콘라드 피셔-루에크(Konrad Fischer-Lueg), 게오르그 바젤리츠(Georg Baselitz) 등과 만났다. 그리고 카셀도큐멘타에서 잭슨 폴록과 루치오 폰타나의 서구미술을 처음으로 대했던 그는 아주 큰 충격을 받게 된다.
이후, 자신의 미술행위에 대해 본질적인 회의를 갖게 되었고, 그 때부터 그는 예술가로서의 길을 철저히 바꾸게 되었다. 그리고 플럭서스 운동 및 팝아트 등으로부터 영향을 받으면서, 시그마 폴케, 콘라드 루에크과 함께 이른바 자본주의 리얼리스트그룹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Gerhard Richter, Untitled, 1969
그는 "나는 스타일이 없는 것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스타일은 폭력이고, 나는 폭력적이기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하나의 시대양식이 관철되는 동안 그 밖의 가능성들은 사실 무자비하게 부정되는 것이 현대 모더니즘 미술의 실태다. 그러나 그는 이 같은 현실 속에 자신을 결부시키길 거부하고 독특한 자신만의 작가적 태도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작업중인 게르하르 리히터
리히터는 1960년대 초기에는 구상 사진 회화, 1966년 이후에는 극사실적인 풍경사진화 및 기하학적 추상회화에 주로 집중했다.
Gerhard Richter, Mr. Heyde, 1965
Gerhard Richter, Mr. Heyde, 1965
Gerhard Richter, Untitled, 1969
그리고 1971~72년 사이에는 유명 사진인물화에, 1977년 이후에는 추상회화와 정물화 등을 많이 제작하였다.
Gerhard Richter, The Wende Family, 1971
Gerhard Richter, Flowers, 1977
Gerhard Richter, Abstract Painting, 1977
만학도였던 리히터는 뒤셀도르프 이후 30년 사이에 2천점에 가까운 그림들을 그렸다.
Gerhard Richter, Betty, 1988
일상적인 가족사진, 신문 잡지에 나오는 사건 사진, 광고 등 평범한 사진들을 유화로 충실히 옮겨 그린 다음, 평붓으로 외곽선을 문질러서 초점이 흐려진 물체를 찍은 사진처럼 만들기도 했다.
Gerhard Richter, Motorboat, 1965
초점과 배경이 흐려진 이런 그림들은 우리 눈앞을 쉬지 않고 스쳐 지나가는 기억 저편의 가물가물한 영상과 비슷한 느낌을 자아낸다.
(다음 호에 계속…)
최지혜
유로저널칼럼니스트 / 아트컨설턴트
메일 : choijihye10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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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 Art Consultant Jihye 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