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의 프랑스 이야기
유럽에서 프랑스에서 먹고 마시는 전통과 상징 (2)
짠맛과 단맛의 분리
요리의 순서가 결정된 것도 시대의 흐름에 따른 결과다. 짠맛과 단맛을 분리한 것도 프랑스 요리의 역사에 중요한 대목이다. 식사 주 메뉴에는 감미료나 설탕이 들어가지 않는다. 디저트에 달달한 설탕이 집중된다.
한 시대가 만들어 내는 미학과 프랑스 식의 서비스의 전통적인 균형, 삶의 방식들이 어울려서 프랑스 식도락을 빚어 간다.
형식이 내용을 담는다. 그릇이 요리를 담아낸다.
프랑스 요리를 아름답게 담아 내려면 그릇이 중요하다. 좋은 요리사는 어느 지방에서 만든 그릇인지 그 색깔과 디자인이 요리와 어울릴 수 있는지 가려내야 한다. 요리가 발달한 나라. 식도락이 인류 문화 유산인 나라에서 그 요리를 담아낼 그릇이 발달한 것은 지극히 정상이다.
프랑스 사람들, 어디서 먹고 마시나
카페 레스토랑"라 본느 프랑께뜨"는 몽마르트르 예술가들의 랑데부 장소였다.
카페, 레스토랑, 카바레, 비스트로, 브라쓰리 , 모두 먹고 마시는 장소를 지칭하는 단어다. 요즈음에는 작업실이던 아틀리에라는 단어도 먹고 마시는 집에 사용한다.
프랑스나 외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단어는 카페와 레스토랑이다. 프랑스의 문화의 일부가 되어버린 카페는 그 테라스와 함께 프랑스의 분위기를 연상시켜준다.
카페에 앉아 있다는 것은 연극 무대의 주인공이라도 된 느낌이다. 카페 떼아트르, 카페 콩쎄르,
19세기 말부터 유명세를 탄 "물렝 드 라 갈레뜨"레스토랑은 빈센트 반 고흐나 오귀스트 르느와르의 작품 배경이다.
카페 레스토랑은 엘리트들의 모임의 장소가 되기도 하고 일반 시민들의 랑데부 장소가 되기도 한다.
몽빠르나쓰와 쌩제르멩 데 프레 지역의 카페 드 플로르, 레 드 마고, 돔, 라 로똥드, 라 꾸뽈등은 예술가와 문인들의 랑데부로 유명하다. 라 꾸뽈에서 사르트르와 쟈코메티가 안면을 트고, 사무엘 베케트나 헤밍웨이가 밤새 서성거리던 지역이 몽빠르나쓰의 카페들이다.
국제적으로 가능한 유일한 합의는 식도락의 협약이지
-레옹 도데-
전통의 식사에서 국가 의식으로 식사
마끄 마옹 대통령
1879년 엘리제 궁전이 공식적인 대통령 궁으로 임명되었을 때 대통령 마끄 마옹Mac-Mahon은 자기의 요리사 팀들을 궁전에 입성시켰다.
당시 요리는 외부에 하청 주던 시대에 공화국 대통령의 특별한 조치였다.
2차 대전 후 1947년 엘리제 궁전의 주방은 지하에 600㎡로 다시 만들어 졌다. 20여명의 요리사가 있고 유명세를 얻고 나가는 주방장이 있다.
물론 주방 옆 포도주 창고는 별도다. 엘리제 궁의 포도주 창고는 14,000병의 포도주를 간직한 국회의장 공관 포도주 창고 다음으로 큰 규모를 지닌다. 프랑스 대통령이나 국회의장이 된다는 것은 프랑스에서 가장 좋은 포도주를 식사 때마다 시음할 수 있는 특권을 지닌다는 의미다.
프랑스 요리 예술은 유럽 외교의 에스코트다.
- 앙토넹 꺄렘-
프랑스 요리의 명성은 프랑스 외교의 중요한 도구로 사용된다. 20세기의 모든 대통령은 프랑스가 가꾼 농산품을 식탁에서 자연스럽게 광고하고 이름을 얻었다.
브레스Bresse의 양계
아르장퇴이의 아스파라가스
송노버섯
오리간 요리 후와그라
등등 프랑스의 명성을 빛낸 식재료다.
공화국의 식탁
공화국 공식 식사 테이블에는 250명까지 초청이 가능하다.
은빛으로 번쩍이는 식기가 10000개가 넘게 주로 퓌포르카Puiforcat제품이다.
바카라의 크리스탈 식기가 7000점 이상, 접시는 주로 국립 세브르 도자기 아틀리에 작품으로 9300점을 소장하고 있다. 그 외에 커피잔이나 찻잔은 리모쥬와 다른 도자기 아틀리에에서 온다. 식탁보는 물론 100m가 넘는다.
엘리제가 좁다면 멀지 않은 베르싸이 궁전 만찬도 가능하다.
프랑스를 광고하고 팔기 위하여 모든 프랑스 역사 문화재는 언제든 유네스코 무형 문화재인 "프랑스 식도락"과 함께 팔려갈 준지가 되어있다.
(다음 호에 계속)
유로저널 칼럼니스트 테오
bonjourbibl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