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연우와 함께하는 와인여행 스물 두 번째 이야기
G7 정상 회담과 바스크(Basque) 와인의 추억 (2)
그렇다면, 열정을 안고 시음했던, 이훌레기(Irouléguy)와인이란 무엇인가?
양고기와 이훌레기 와인
이룰레기코 아르노아(Irulegiko arnoa), 이 말은 토속어인 바스크어로 이훌레기를 의미한다. 프랑스 와인을 보르도, 부르고뉴, 론 벨리같이 큰 범주로 나눌 때, 이곳은 남서부 와인(vin du sud ouest)카테고리에 속한다.
1970년 원산지 명칭 통제(appellation d'origine contrôlée)에 의해 'AOC 이훌레기'로 명명 되었고, (AOP등급의 와인도 존재함) ,바스크 지방의 와인을 뜻하며 대서양과 지중해의 뉘앙스, 피레네로 대표되는 산악기후 아래서 와인이 만들어진다. 전체 생산량의 70프로는 레드와인으로, 묵직한 타낭(tanin)때문에 '상남자'같은 느낌을 주는 포도 품종 타낫(Tannat),그리고 카베르네 프랑, 카베르네 소비뇽이 쓰이며, 3-6년 정도 숙성 보관할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레드 와인은, 약간은 알싸한 향신료의 뉘앙스를 가지면서,(희미하게 고추와 후추가 섞인 것 같은) ,야생의 붉은 과일, 이끼, 야생화, 작은 초목의 향 등, 복합미를 풍긴다.
생 장 삐에 드 뽀흐의 한 식당에서, 친구들과 이훌레기 레드 와인 한 병을 주문하였다. 와인병 에티켓을 보니 고리(Gorri)라고 쓰인 글자가 크게 눈에 들어왔다. 고리(Gorri)란 비스크어로 '붉다'는 의미이다. 예전에 잘사서 마시던 이훌레기 레드와인 이름도 « 칭칭고리 »였다. 귀여운 새 한마리가 에티켓에 그려져 있었다. 바스크어를 할줄 알던 스페인 친구는, '부리가 빨갛고, 가슴에 빨간 털이 난 작은새'가 '칭칭고리'라고 내게 가르쳐 주었다.
개성이 강하고, 떫은 맛을 주는 타낭(tanin)이 잘 표현된, 이훌레기 레드와인은, 강 대 강의 법칙에 따라, 역시나 강하고 개성있는 풍미를 지닌, 양고기와 먹어주면 좋다. 우리들이 주문했던 타임 허브로 재운 어린양의 어깨살을 구운 요리( Epaule d'agneau du pays jus au thym)는 훌륭하게 와인과 조화되었고, 보통 현지에서는 검은 순대(boudin noir)나 흰 콩을 곁들인 닭고기를 바스크 방식대로 만든 요리도 많이 곁들이는 음식들이라고 한다.(Poulet à la basquaise)
특별하게, 브라나(BRANA) 포도원에서 내 마음을 사로잡은 한 레드 와인의 풍미가 몇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뇌리와 입가에서 사라지지않고 있다. 그 와인은 처음 접해보는 포도 품종으로 만들어졌다. 에티켓에 바스크어로 표기된 와인의 이름 또한 매우 낯선 것이었다.
우리말로 하면, « 새로운 삶 »(nouvelle vie)이라고 한다. '새로운 삶'이라는 철학적인 이름을 가진 그 와인은 알고보니 바스크지방에서만 자라나는 토착품종 두 개와 카베르네 프랑을 혼합하여 탄생시킨 야심작이었다. 물량이 부족해 수출도 거의 못하고, 대부분 현지에서 다 소비된다고 담당자가 설명하였다.
'아루야(arrouya)'와 에레마챠우아(Erremaxaoua).
외계인의 언어와도 같은 이 두 단어는 ,이 와인을 만드는데 쓰인, 잊혀진 옛날의 포도 품종을 의미한다. 그것을 오늘날의 과학 기술과 열정이 되살려 낸 것이다. 바스크를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는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특징이 있어, 재배가 어렵고 그래서 좀처럼 만나기가 쉽지 않다.
아루야(arrouya)품종은 포도의 모양이 달걀같은 타원형, 원뿔모양이고, 포도잎 가장자리가 불그스름하였다. 흑균병(black-rot)과 노균병(mildiou), 회색 곰팡이병(pourriture grise)같은 병충해에 매우 취약하다는 설명을 들었다.아루야(arrouya)란 프랑스 남서부 베아른(Béarn)지방의 말로' 빨갛다,´ 혹은 '붉으스름하다'(rougeâtre )의 뜻이라고 한다.
에레맛챠우아(Erremaxaoua)는 페르(fer) 품종과 비슷한 맛을 가지고 있다고 안내자가 설명해 주었다.(예를 들면, 페르 살바두 품종 같은) 즉, 싱그러운 풀냄새 가득한 초원의 느낌이 내재되어 있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saveur herbacée)
브라나(BRANA)포도원에서의 시음
필자는 왜, '고작 와인 하나 맛보려고' , 왕복 여섯 시간이 넘는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왔을까? 바로 이런 와인과 이런 포도 품종이 있기 때문이다. 원한다 해서 바로 만나볼 수 없고, 아주 많이 비싼것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사고싶다 해서 쉽게 살 수 없는, 다른 것으로 대체불가능한 (irremplaçable ) , 그 지방의 자연적 특징을 오롯이 담아낸 , 쉽게 범접할 수 없는 그런 치명적인 매력때문이다.
흔히 이런 포도 품종을 가르켜 '조촐한 포도 품종(cépages modestes)'이라고 한다. 메를로, 카베르네 소비뇽, 샤르도네, 피노누와와 같은 귀족 품종(cépage noblesse)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귀족포도 품종들은, 지역적으로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프랑스 브루고뉴에도 피노누와가 있고, 미국 오레곤주에서도 피노누와로 레드와인을 만들 수 있다.
물론 표현되는 뉘앙스는 같은 포도 품종을 썼다 해도, 지역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이렇듯, 귀족 포도 품종은 환경 적응력이 매우 강하다. 바꿔 말하면, 독창성이 떨어진다. 조촐한 품종들은 고향이 아닌 다른 곳에서는 쉽게 죽어버리고, 병충해에도 매우 약하지만, 강한 독창성을 지니게 된다.
바스크 지방의 마을들
바스크의 가옥들
전체 생산량의 20%인 로제와인을 만드는 포도 품종은 레드 와인과 동일한데, 로제 와인은 산도가 예리하면서, 은은하게 야생딸기의 향도 느낄 수 있지만, 그보다는, 식물의 느낌이 강하여, 야생화의 향기가 많이 난다. 될 수 있는대로 몇 년 저장하지 말고, 빨리 마시는게 좋다.
약 10프로를 차지하는 화이트 와인은, 쁘띠망상, 그로망상, 쿠르부(Courbu)의 품종으로 만든다. 시음했던 와인중에 페트뤼스(Petrus)라고 하는, 뽀므롤의 위대한 와인을 만든, 바스크 지방이 고향인 조상을 둔 전설의 와인 메이커 '장 끌로드 베루에'씨가 양조에 참여했던 한 화이트 와인은 ,비록 풍부한 볼륨감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씬하면서도 청초하고, 우아한 매력때문에 매우 인상적이었다.
티브이에서는 연신 G7정상회담에 관한 보도를 쏟아내고 있고, 주위에 프랑안들은 별로 흥미 없는듯 시큰둥하게 다른 곳으로, 채널을 돌려버리고 있다.
아껴두었던 와인 « 새로운 삶 nouvelle vie »을 꺼내 마시니 몇가지 쓸데 없는( ?)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머릿속을 맴돈다.
-비아리츠에 묵고있는 핫(hot)한 남자 '아베'씨가, 그곳에서 대한민국을 해코지하는 일이 없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20세기 초의 "가쓰라 태프트 밀약 "이 21세기에 또다시 되풀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언론에서 유독, 미.일 장상이 함께있는 모습을 많이 비춰주었다.)
-트럼프씨의 부인은 모델 출신이라서 그런가, 진짜 사진이 잘받는 것 같다. 에스쁠렛뜨 마을에서 빨간 고추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아주 잘나왔던데, 이왕이면 그곳이 충북 청양의 고추밭이었다면 아마 더 예뻤을텐데! 내가 더 이쁘게 찍어 줄 수 있는데!
-프랑스 대통령 부인이, 트럼프씨 부인을 바스크지방의 한 와인상점에 데려가 와인 시음을 시키던데, 최근 두나라 사이의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와인 관세 부과문제를 소프트하게 해결하려는, 스마트하게 의도된 접근은 아닌지?
마지막으로, 비아리츠에 '아베'씨 대신에, '대한민국 대통령'이 계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리고, G7안에 일본 대신, 우리나라가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고 생각하였다.(2019년 8월 26일 저녁)
'와인'은 '정치적인 술'인 동시에, '생각하게 만드는 술'이다.
와인을 마시면서 '생각하지 않는 자',
그 죄를 달게 받으리라 !
(다음 호에 계속)
서연우
유로저널 와인 칼럼니스트
eloquent7272@gmail.com
대한민국 항공사. 항공 승무원 경력17년 8개월 .
이후 도불 ,프랑스 보르도에서 와인 소믈리에 자격증 취득후
와인 시음 공부ㆍ미국 크루즈 소믈리에로 근무.
현재 프랑스에 거주중.
여행과 미술을 좋아하며, 와인 미각을 시각화하여 대중에게 쉽게 전달할수있는 방법을 고민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