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혜의 예술 칼럼 (228)
나는 끝없는 불확실성을 좋아한다.
작가가 자신의 정체성을 매체에서 구체화한다는 것은 미술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독일의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와 게오르그 바젤리츠(Georg Baselitz)는 독일의 역사를 그들만의 회화로 풀어냈다.
Anselm Kiefer, Seraphim, 1983-1984
Georg Baselitz, Hotplate fa caldo (Ofenplatte fa caldo), 2015
1960년대 독일 미술에는 앙포르멜과 팝아트에 맞서 서로 대립되는 두 흐름이 일어났었다. 하나는 사진과 대중문화를 배격하고 회화를 통해 독일의 굴절된 역사를 다루려 했던 게오르그 바젤리츠와 안젤름 키퍼의 신표현주의 노선이다. 이들은 독일표현주의의 전통을 이어 독일미술의 정체성을 확립하려 했다.
다른 하나는 바로 게르하르 리히터였다. 그는 이미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더 이상 독일만의 예술은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회화가 역사에 관해 진리를 말할 수 있는지를 고심하면서 그는 오히려 사진을 신뢰했다.
Gerhard Richter, Eisberg im Nebel, 1982
그래서 그는 사진과 그림 사이를 오고 가며 그림과 사진의 경계의 개념을 마치 아래의 그림처럼 흐리며, 자기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면서 관객들과의 소통을 시도했다.
Gerhard Richter, Betty, 1988
이것은 1978년 11살인 자신의 딸 베티를 스냅 사진으로 찍은 뒤에 그 사진을 1988년에 다시 그린 것이다.
Gerhard Richter, Ella, 2007
그리고 이것은 1991년에 또 다른 딸을 카메라로 촬영해, 오일로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들을 보는 관객들은 이것들이 사진인지 인쇄된 이미지인지 처음에는 헷갈려 한다. 사실 이러한 혼란을 그는 의도적으로 유도하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는 그는 우선 사진적인 이미지를 재현하면서도 그와는 다른 그림을 회화로써 표현하여 어떤 가능성을 탐색하고자 했다.
이러한 모색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사진적 그림(The photographic painting)’이라는 그만의 작가 특유의 기법을 고안해 냈다. ‘사진적 그림’이란 위의 그림과 같이 사진을 보고 거의 사진처럼 재현해 낸 것이지만 물감이 마르기 전에 마른 평붓들로 형상의 외곽선을 문질러서 흐릿해진 부분들을 만듦으로써 변형된 사진 이미지를 묘사한 그림을 말한다.
이것은 마치 사진이 갖고 있는 확실성과 객관성 위에서 비껴 서서 사진의 단순한 재현성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한 그만의 표현이다. 그는 이렇게 회화에 그만의 독특한 특징을 가미했다.
이러한 그의 모색과 실험은 본다는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재현이라는 것과 표현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예술가로서의 그의 질문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또 리히터는 사진적 재현과 예술의 경계를 보여주면서, 서로 유기적인 관계가 어떻게 드러나는가를 직접 드러내고자 했다.
그는 복제를 하고 또 복제한 그림을 사진으로 다시 표현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인간과 사물의 관계 설정과 본다는 것이 무엇이고,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가를 설명해 준다.
리히터는 동독, 서독을 오가며 피와 논쟁으로 얼룩진 회화사에서 이렇게 화가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구현해나갔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그런 그의 차갑고 냉정한 화가의 몸짓에 집중하고 있다.
Gerhard Richter, Abstract Painting (726), 1990
6. 나는 일관성이 없고, 충성심도 없고, 수동적이다
게르하르트 리히터는 생존하는 작가들 중에서 작품 값이 가장 비싼 작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은 늘 수요가 많기로 유명하다.
Gerhard Richter, Yellow-Green, 1982
한 예로, 위의 작품은 2018년 3월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약 184억원에 낙찰되었다.
Gerhard Richter, Schwefel(Sulphur), 1985
또한 같은 해 11월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위의 작품이 약 151억원에 낙찰되었다.
그가 이토록 높이 평가 받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작품세계가 포스트모던이라 불리는 예술의 특성을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1966년의 어느 날 게르하르트 리히터는 자신의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나는 어떤 목표도, 어떤 체계도, 어떤 경향도 추구하지 않는다. 나는 어떤 강령도, 어떤 양식도, 어떤 방향도 갖고 있지 않다” 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일관성이 없고, 충성심도 없고, 수동적이다. 나는 무규정적인 것을, 무제약적인 것을 좋아한다. 나는 끝없는 불확실성을 좋아한다”라고 덧붙였다.
그래서 그의 회화 양식은 단일하게 규정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며, 동시다발성, 분절성을 특징으로 한다.
(다음에 계속…)
유로저널칼럼니스트, 아트컨설턴트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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