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혜의 예술 칼럼 (253)
도날드 저드가 말하는 '타고난 예술가'
5. 폴카 도트
야요이 쿠사마는 어린 시절 식탁에서 이상한 환영을 경험했다. 그 이후, 그녀의 삶은 완전히 바꿨다. 식탁보에 있던 빨간색 꽃무늬가 벽과 바닥, 그리고 그녀의 몸까지 퍼져나가는 이미지를 본 후, 그녀는 강박적일 정도로 동일한 이미지를 무한히 반복하는 아티스트가 되었다.
Yayoi Kusama at the age of ten
그녀는 1929년 일본 나가노현 마츠모토에서 유복하고 전형적 가부장적 가정의 넷째로 태어났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바람을 폈던 아버지의 강요에 의해 어머니에게 늘 감시를 받았다.
야요이 쿠사마 가족 사진
그녀의 환각 증상이 관음증으로 작품에 한참동안 나타나는 것은 이 때의 경험으로 비롯된 것이다. 이런 어릴 적 기억들이 그녀를 완전히 잠식하면서 그녀는 자신의 정체성과 성적 취향을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물방늬 무늬로 덮어버리며 그것에 완전히 심취하게 되었다.
그녀는 1948년 엄격한 도제식 학풍을 고수하는 교토시립예술대학에 입학하여 전통 일본화(Nihonga)를 배우면서 미술을 시작했다. 이 때 그녀는 과슈, 수채화, 유화와 같은 다양한 서양화 기법을 익혔다.
Yayoi Kusama, The Germ, 1952
하지만, 그녀는 사제 간의 절대 복종을 중시하는 도제식 교육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1952년 첫 개인전을 열었을 때도, 당시의 전시들과는 달리 다양한 매체로 완성된 그림들을 벽에 걸었다.
1957년 결국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녀는 미국행을 택했다. 당시 일본에는 태평양 전쟁에서 패한 후 일본의 허무주의적 분위기로부터 탈출해 미국으로 향한 예술가가 많았다. 존 레논과 결혼한 오노 요코나 온 카와라도 이 무렵 미국행을 택한 예술가들이다.
Yayoi Kusama, A Flower,1952
야요이 쿠사마는 미국으로 건너간 1957년, 시애틀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그러나 그녀의 꿈이 뉴욕에서의 전시였기에, 1958년 그녀는 뉴욕으로 떠났다.
어린 일본 여자에게 그 곳은 그리 만만치 않은 곳이었다. 그녀는 춥고 배고프고 외로웠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돈을 쓰면서 그녀는 작품 활동에만 시간을 보냈다.
마침 자신이 일본에 있을 때 편지를 보냈던 조지아 오키프가 그녀가 뉴욕에서 어떻게 지내는 지를 보기 위해 방문했다. 오키프는 그녀를 한 아트 딜러에게 소개해 주었고, 그 딜러는 야요이 쿠사마의 작품을 샀다.
이 때 번 돈으로 그녀는 물감과 캔버스를 살 수 있었다. 그리고 큰 새까만 표면에 수천 개의 흰점들을 그렸다. 이것이 바로 그녀의 첫번째 ‘무한 망’ 시리즈 작품이다.
1959년 자신의 첫번 째 '무한 망' 작품 앞에 서 있는 야요이 쿠사마
그리고 마침내 1959년 브라타 갤러리(Brata Gallry)에서 그녀의 뉴욕에서의 첫번째 솔로전을 가졌다. 이 때 미니멀리스트 도날드 저드와 프랭크 스텔라는 전시회에서 쿠사마의 작품을 직접 구매했다. 당시 추상 표현주의가 점령하고 있었던 뉴욕에서 아웃사이더로서 저드도 쿠사마도 힘든 건 마찬가지였고, 그들은 동병상련을 느끼며 친구가 되었다.
그녀의 첫 전시에 대한 리뷰로서 도날드 저드는 잡지 <ARTnews>에 바넷 뉴멋이나 마크 로스코 그림과 비교해서 완전히 새로운 하지만 완성된 그림이었다고 그녀의 작품을 극찬하며 그녀는 말그대로 타고난 예술가다라고 호평을 했다.
1960년에는 루치오 폰타나, 이브 클랭 등 38명의 유럽 작가로 구성된 단체전 <모노크롬 말러라이 (Monochrome Malerei)>에 미국 작가로서 야요이 쿠사마가 출품작가로 선정되었다.
Yayoi Kusama, Untitled, 1974 (도날드 저드가 구매가 한 작품 중 하나)
서구의 무수한 추상 실험을 접할 수 있었던 이 전시를 통해 그녀는 자신의 모노크롬 회화를 강화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또한 그해 11월에 6명의 일본 작가로 편성된 단체전 <일본의 추상 (Japanese abstraction)>에도 참가했다. 당시 화단의 주류였던 단색조 추상회화 전시에 그녀가 채택된 것은 미국 활동을 전개하던 1950년대 후반과 60년대 초반 그녀가 망사처럼 화면 전체를 채우는 모노톤 추상회화에 전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Yayoi Kusama, No. F, 1959
Yayoi Kusama with one of her Infinity Net paintings in New York, c. 1961
(다음에 계속…)
최지혜
유로저널 칼럼니스트 / 아트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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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 Art Consultant Jihye 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