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연우와 함께하는 와인여행 (44)
와인을 마시는 여러가지 이유들
"우리는 포도주를 왜 마시는 걸까?"
연말연시에 가족, 친구들과 와인을 마시며 지내다보니 갑자기 이런 의문이 들었다.
아마도,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각각의 이유는 욕구 때문이 아닐까?
문득, 학창 시절 배웠던, 인간의 욕구에 관한 흥미로운 한 이론이 떠올랐다.
학자 메슬로우(Maslow)는 인간의 욕구를 다섯단계로 체계화 시켰다. 그의 욕구 이론은, 마케팅이나 심리학, 혹은 조직관리에서 어떤 형태로 리더십을 표출할 것인가 선택하려고 할 때, 주로 이용되기도 한다.
윗단계로 올라 갈 수록, 욕구가 고차원 적이고, 그 숫자가 다수에서 소수로 줄어든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개념이기 때문에, 피라미드 형태로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그는, 가장 기본적으로 생리적 욕구(Physiological needs)를 이야기하고 있다.
피라미드의 맨 아랫단 가장 넒은 공간을 차지하는 기본적인 욕구이다.
와인을 마시는 행위에 대입하여 생각해 본다면, 와인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이, 물을 마시듯 매일 매일, 꼭 좋은 와인이 아니더라도, 항상 식사와 함께, 와인으로 목을 축이는 모습을 머리에 그려볼 수 있겠다. 마치 우리 한국인들의 밥상에 산미와 갈증을 동시에 해결해 주는, 물 김치나 국이 빠지지 않는 것 처럼.
이때의 와인을 마시는 행위는 그냥 '일상 생활' 그 자체라고 단순히 언급할 수 있다. 어떠한 비판이나 분석, 비교같은 행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다음 욕구의 단계로, 그는 안전에 대한 것을 말 하고 있다.(Safety needs)
기본적인 단계를 벗어나, 뭔가 '자각하는 단계'에 의해 인간의 욕구가 설명된다고 볼 때, 생활속에서 와인을 마시는데만 그치지 않고, 다른 와인들을 많이 알고 싶어하고, 배우고 이해해보려는 태도로 와인을 마시는 행위가 해당될 듯 하다.
와인을 분석하고, 향과 맛을 비교해 차이점을 알아가려는 단계.
이쯤 되면, 와인 관련 자격증도 따고싶어질 것이고, 동호회 활동도 하며 많은 와인들을 접해보려는 욕구도 점차 강해질것으로 짐작된다. '지적 호기심이나 지적 자각'에 의해 와인을 마시는 단계라고 말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와인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이 모든 활동의 기본이 됨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세번째 단계로 메슬로우는 '소속과 사회적 욕구'를 언급하고 있다.(Love and belonging)
와인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벗어나 비로소 즐기고, 지식을 꽃피우는 단계, 그리고 혼자 마시고 생각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맛을 주변 사람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으로 표현하려는 욕구가 발현되는 단계라고 설명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와인을 접하는 단계를 벗어나 사회적 관계를 바탕으로 상호작용을 하는 단계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보다 좀 더 고차원적인 단계로 가면, 존경의 욕구(Esteem)가 언급되고 있다. 정신적인 측면이 강조된 개념으로, 자아의 영역과 상대방의 영역에 대해 상호 작용의 수준을 뛰어 넘어, 자신감이 확립된 자아가, 학습을 통해 파악이 가능한 존재로 변환된 외부 세계에 대해,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반영한다.
이걸 와인 마시는 행위에 대입 해 보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활발한 와인 시음과 관련한 만남과 교환의 행위를 생각해 볼 수 있을듯 하다. 크고 작은 와인 콩쿠르에서 심사위원으로 참여하여, 자기의 의견을 반영시키는 것도 한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와인에 관해 글을 발표하거나 책을 쓰는 행위, 와인 관련 세미나를 기획하고 주도적으로 청중을 대상으로 발표하거나 강연하는 것도 이 범주에 들어갈 수 있으리라.
그렇다면, 메슬로우의 욕구단계중 피라미드 꼭대기를 차지하는 것은 무엇 일까 ? 그것은 다름 아닌, 자아실현의 욕구이다. 자아실현이 가장 고등한 욕구라고 그는 말한다. 자아실현을 잘 하려면, 신념이나 창의성, 독립성은 기본이라고 생각된다. 기존의 방식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주체가 되어, 끌고 가는 것이다.
와인 세계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노력, 와인 세상의 변화를 주도하려는 각 나라들 사이에 여러가지 시도가 떠오른다.
보르도에 살 때, 산책삼아 자주 가던 한 샤토가 있었다.
그 곳은 보르도 페싹 레오냥 지역의 유명한 포도원으로, 멋진 시음장소와 함께, 와인 파는 곳 또한 잘 갖추고 있었다.
그 곳에 자랑스럽게 진열되어 있던, 가격또한 비교적 높았던, (프랑스에서 유통되는 와인의 평균가격은 2020년 기준으로, 3.5유로라고 한다. 근데 그 와인은 40유로가 넘었다.) 한 병의 와인이 이따금씩 생각난다.
두 사람의 옆 모습, 흉상 실루엣이 금빛으로 에티켓을 장식하고 있었고, 한 일본인의 이름과 유자맛나는 일본의 대표 포도품종의 명칭이, 프랑스어로 표기되어 있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로버트 몬다비와 프랑스 보르도의 샤토 무통 로칠드가 합작하여 만든 와인 오퍼스 원(Opus One)을 생각나게 하는 그런 이미지였다.
전세계적으로 와인 구매력은 상당하지만, 생산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일본의 와인 세계는, 이렇듯 협업을 통해, 소프트한 침입을 시도하고 있는듯 하다.
프랑스ㆍ일본 합작 와인 / 사진:서연우
한때, 보르도의 샤토를 마구 사들이던, 중국 자본의 영향력에, 중국인의 취향을 고려하여 오랜세월 유지해왔던 와인병 에티켓까지 바꾸는 프랑스 포도원 주인들의 모습도 심심찮게 보면서 약간의 씁쓸한 감정도 들었다.
이와 더불어, 비록, 역사적으로 와인 세계의 변방에 머물었던 시절이 있었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잘 집약된 지혜를 바탕으로 오늘날 와인 종주국의 위치를 확고하게 이어나가고 있는 프랑스 와인의 세계, 그 위치에 의구심을 일으켜, 주도권을 잡으려 시도된 일들 (예를 들어, 1976년에 '파리의 심판'이라고 불리우는, 미국 와인과 프랑스 와인의 블라인드 테스팅 결과, 미국 와인이 프랑스 와인보다 시음 평가 결과가 좋았다는 사실이 널리 홍보되어 미국 와인의 가치가 재평가 된 사건, 와인은 이태리나 프랑스, 스페인에서 전 세계 와인의 절반 이상이 만들어 지지만, 그 값을 매기는데 결정적인 영향력을 가진 평론가 집단은 대부분 영미 문화권에서 배출되고 있는 현실 등등) 그 모든 것들이 결국, 개인 구성원들이 모여 만들어진, 각 나라들간의 자아실현을 위한 노력이 아니겠는가 ?
몇 주 전에, 훌리(Rully)라는 마을의, 부르고뉴 크레망( 샴페인처럼 기포가 있는 와인)을 만드는 곳에 간적이 있었다. 이동이 자유롭지 않은 요즘같은 시절에 방문하게 된 곳이라 그 의미가 더 각별하게 다가왔다. 크레망은 프랑스 8개의 지역(알자스, 부르고뉴, 쥬라, 디으, 리무, 루아르, 보르도, 사부아)에서 만드는, 서민적인 스파클링 와인이다. 그런데, 필자가 방문했던 그곳에서는 , 미식가들을 위한 특별한 크레망을 만들고 있었다. 샴페인 만드는 곳에 온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크레망 드 부르고뉴 / 사진: 서연우
부르고뉴에서 만드는 크레망은, 최소한 30프로는 샤르도네나, 피노누아 품종의 포도가 블랜딩 되어야 하고, 최대한 20프로까지, 가메 품종을 섞는게 허용된다. 그밖에 사씨, 알리고테, 믈롱 품종을 혼합하여 제조할 수 있다.
그런데, 몇년 전 부터, '에미넝' 혹은 '그랑 에미넝'이라는 개념으로 분화시켜, 고품질의 부르고뉴 크레망을 만드는 움직임이 일었고, 이 모임을 이끄는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이 다름아니라 필자가 방문했던 곳의 소유자라고 하였다. 설명을 해 주던 그의 표정과 말투에서, 질 좋은 크레망을 만드는 자부심이 느껴졌다.
크레망 드 부르고뉴가 만들어지는 과정의 일부 / 사진:서연우
2021년 새해를, 크레망 한 잔으로 소박하게 시작하면서, '나는 왜 와인을 마시는가 !'라는 질문을 다시금 해본다.
서연우
유로저널 와인 칼럼니스트
메일 : eloquent7272@gmail.com
대한민국 항공사. 항공 승무원 경력17년 8개월 .
이후 도불 ,프랑스 보르도에서 와인 소믈리에 자격증 취득후
와인 시음 공부ㆍ미국 크루즈 소믈리에로 근무.
현재 프랑스에 거주중.
여행과 미술을 좋아하며, 와인 미각을 시각화하여 대중에게 쉽게 전달할수있는 방법을 고민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