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네 번째 이야기
Ave Maria
아베 마리아
풀잎은 풀잎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초록의 서정시를 쓰는 5월
하늘이 잘 보이는 숲으로 가서
어머니의 이름을 부르게 하십시오
피곤하고 산문적인 일상의 짐을 벗고
당신의 샘가에서 눈을 씻게 하십시오
물오른 수목처럼 싱싱한 사랑을
우리네 가슴속에 퍼 올리게 하십시오
말을 아낀 지혜 속에 접어 둔 기도가
한 송이 장미로 피어나는 5월
호수에 담긴 달처럼 고요히 앉아
불신했던 날들을 뉘우치게 하십시오
은총을 향해 깨어 있는 지고한 믿음과
어머니의 생애처럼 겸허한 기도가
우리네 가슴속에 물 흐르게 하십시오
구김살 없는 햇빛이
아낌없는 축복을 쏟아내는 5월
어머니, 우리가 빛을 보게 하십시오
욕심 때문에 잃었던 시력을 찾아
빛을 향해 눈 뜨는
빛의 자녀 되게 하십시오
이해인 <5월의 시>
눈부시게 아름다운 5월.
꽃과 나무, 구름과 바람, 모든 생명이 저마다의 봄을 피워내는 계절이다.
대지가 품은 생명력과 신록의 눈부심이 절정에 이르는 5월을 ‘계절의 여왕’라 부르고 있듯, 5월은 여성적 에너지를 담고 있다. 예로부터 5월을 맞이하면 유럽에서는 마을마다 아름다운 여성을 선발해 퍼레이드를 하기도 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음력 5월 5일을 단오 명절로 지내며 마을 여인들이 함께 모여 청포 머리감기, 그네뛰기 등을 하며 보냈다.
가톨릭교회에서는 매년 5월을 성모성월로 보내며 성모마리아를 기리는 달로 보낸다.
하느님께 선택받은 은총의 여인,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믿음의 여인, 예수님의 어머니 등 다양한 모습의 성모마리아를 기억하고 그 삶을 묵상하는 달이다.
기독교 문화 안에서, 예수의 탄생부터 십자가 죽음까지 예수 곁에 머물며 함께 기뻐하고, 함께 아파한 성모 마리아의 모습은 많은 작곡가에게도 영감을 주었다.
성모마리아와 관련된 곡은 ‘아베 마리아’ (성모송), ‘마니피캇’ (성모 찬송), ‘스타밧 마테르’ (슬픔의 성모)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수많은 곡 중에서, 가톨릭 신자가 아니어도, 음악적 조예가 깊지 않아도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노래를 꼽으라면 바로 ‘아베 마리아’이다.
‘Ave Maria, gratia plena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로 시작되는 라틴어 ’성모송‘의 첫 구절을 따서 ‘아베 마리아’라고 불리게 되었다.
지금 바로 ‘아베 마리아’ 선율을 하나 떠올려본다면, 아마도 프랑스 낭만 음악을 대표하는 샤를 구노의 아베 마리아, 독일 낭만 음악을 대표하는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 드라마 <천국의 계단>의 삽입곡으로 유명해진 카치니 아베 마리아 중 하나일 것이다.
이 세 곡에 닿은 이야기들을 소개해 본다.
▲ 카를로 마라타, <성모와 아기예수>, 1660, 오스트리아 빈 미술사 박물관
샤를 구노의 아베 마리아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피아노곡인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1번 전주곡 위에 구노가 아름다운 선율을 붙여 완성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이 곡이 한국과도 인연이 닿아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구노는 프랑스 파리 외방전교회에서 오르가니스트로 활동했는데, 이 당시 많은 프랑스 신부들이 조선으로 선교를 위해 떠난다. 구노의 절친한 친구 역시 이들 중 한 사람으로 선교 활동을 하다 조선에서 순교하게 된다. 조선 제2대 교구장 앵베르 주교인지 제5대 교구장인 다블뤼 주교인지 정확하지 않지만, 구노는 한국으로 떠난 선교사 신부들의 순교 소식을 전해 듣고 아베 마리아를 작곡하게 되었다.
카치니 아베 마리아
드라마 <천국의 계단> 삽입곡으로 유명해진 카치니 아베 마리아의 작곡가는 카치니가 아니다. 이 곡의 작곡가로 알려진 줄리오 카치니는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작곡가로 1551년에 태어났다. 이 시대의 음악은 조성, 화성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전혀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카치니 아베마리아로 알려진 이 곡의 진짜 작곡가는 1925년에 태어난 러시아 작곡가 표도로비치 바빌로프이다. 자신의 작품을 르네상스 시대나 바로크 시대 작곡가의 이름으로 발표하곤 했는데, 바빌로프가 죽고 2년 뒤 어느 소프라노의 음반에 이 곡이 ‘카치니’의 이름으로 수록되었고 이후 ‘카치니 아베마리아’로 알려지게 되었다.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는 원래 종교음악으로 작곡된 곡은 아니다. 월터 스콧의 서사시 <호수의 연인>을 가사로 한 슈베르트의 연가곡집 중 여섯 번째 곡 <엘렌의 세 번째 노래>가 원곡이다. 호숫가 성모상에 이마를 대고 아버지를 위해 기도하는 내용으로 “아베 마리아, 이 어린 소녀의 기도를 들어 주소서”라는 가사로 시작되고 스콧의 시를 번역한 독일어 가사 대신 라틴어 성모송 가사로 대체해 부르는 경우가 많다.
무수히 많은 성악가가 부른 아베 마리아를 들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연주는 소프라노 조수미의 2006년 파리에서의 무대이다. 연주 전 아버지의 죽음을 전해 들었지만, 한국행을 포기하고 예정되어 있었던 독창회를 무사히 마친다. 마지막 앙코르곡을 앞두고서야 아버지의 죽음을 관객들에게 전하고 “아버지는 제가 여기에서 여러분의 사랑을 받고 있는 걸 기뻐하실 거에요. 저는 아버지를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라며 노래를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흐를 것 같은 눈빛을 하고 떨리는 음성으로 부른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는 그저 노래가 아니라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하는 딸의 간절한 기도로 다가온다.
2019년, 인류의 유산이자 프랑스 파리의 상징인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때에도 아베 마리아가 울려 펴졌다. 불타는 노트르담 성당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참담함 속에 파리시민들이 부르던 성모송 역시 쉽게 잊히지 않는 기억이다.
성모송의 마지막은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로 라는 말로 끝맺는다. 지금도, 내가 숨을 멈추는 순간까지 자녀를 위해 기도하는 어머니의 마음, 그 마음으로 부르는 노래가 바로 ‘아베 마리아’가 아닐까?
기적같이 아름다운 5월,
음악이 기도가 되어 세상을 더욱 아름답게 하기를
음악 칼럼니스트 여명진 크리스티나
mchristinaye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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