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와 방탄소년단을…(BTS 3)
다니엘 앙리 칸바일러는 1907년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을 처음 본 순간을 평생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나는 피카소와 있던 바로 그 자리에서 그림이 정말로 위대해 보인다고 말한 걸 기억합니다. 왜냐하면 그 그림을 보고 나는 완전히 충격을 받았으니까요."
파블로 피카소, 아비뇽의 처녀들, 1907
그날 이후 칸바일러는 '큐비즘'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그래서 그는 당시 전시 중이었던 27점의 피카소의 작품 중 거트루드가 산 2점을 빼고, 나머지 25점을 모두 구입했다.
게다가 그는 이 때부터 세잔과 고갱 같은 유명 예술가들의 걸작들을 수집하려던 마음을 바꾸고, 신인 화가들을 발굴해 전폭적인 후원을 하기로 결심했다.
후원자도 없고, 그림을 팔아주는 화상도 없는 신인이지만 재능이 있다고 확신하는 예술가들을 보호하고 성장하는 걸 보는 것이 바로 '화상'으로서 자신의 진정한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1884년 독일에서 태어난 그는 독일과 파리에서 주식 중개업을 하는 가업을 이어 받았었다. 하지만, 미술품 수집가였던 삼촌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미술품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주식거래소를 그만두고, 1907년 파리로 이주해 작은 갤러리를 열었다.
갤러리를 연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는 같은 독일 출신의 선배 화상 빌헬름 우데의 소개로 젊은 피카소를 만나게 되었다.
1907년 파리에는 겨우 6개 정도의 갤러리가 가까스로 생존을 유지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무명의 신인 화가들은 그림을 팔기가 정말 어려웠고 궁핍한 생활을 이어나갈 수밖에 없었다.
칸바일러는 그 당시 신인 예술가들에게 재정적인 걱정 없이 창작활동에만 전념하도록 그들과 전속 계약을 맺기 시작했다. 그는 특별한 재능이 있는 신인 화가들을 직접 만나 새로운 작품에 대해 함께 토론하고, 그들의 작품을 촬영하고, 또한 전시회도 열어주었다. 그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미래를 보는 힘이 아니었을까?
신인 화가들을 홍보하기 위해서 그는 작품을 해외로 보내는 등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신인 화가에게서 미래를 읽는 큰 손’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그는 이것이 자신에게 가장 유리하고도 큰 수확을 가져다주는 진정한 투자가 될 것이라고 확신을 했다.
1907년, 앙데팡당 전에서 신인이던 브라크의 재능을 알아차린 칸바일러는 그의 야수파 작품을 구입했다. 또한 브라크가 피카소와 만나면 서로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 그들을 만나게 해 주었다.
이것을 인연으로 피카소와 브라크는 공통된 목표 의식 아래 칸바일러의 후원을 받으며 함께 입체파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 때 브라크와 피카소는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분석적 입체주의’, ‘종합적 입체주의’ 시기를 함께 보냈다.
피카소는 브라크와 함께하는 작업을 마치 그와 결혼을 한 것 같았다고 표현했다. 이렇게 느낀 것은 브라크도 마찬가지였다. 그 정도로 둘 사이는 가까웠다.
피카소와 브라크
칸바일러가 브라크와 피카소의 그림을 후원한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그들의 앞서 나가는 가능성이었을 것이다.
이런 막강한 후원을 약속하면서 칸바일러는 브라크와 피카소에게서 모든 그림을 자신의 화랑에서만 전시할 것을 약속 받았다. 이것은 작가와 화상, 모두에게 윈윈의 결과를 가져왔다.
칸바일러는 이로써 입체파를 키워낸 큰 손이 되었고, 이런 칸바일러 덕분에 피카소와 브라크는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면서 널리 알려질 수 있었다.
이 후에도 칸바일러는 그 둘뿐만 아니라 앙드레 드랭, 블라맹크, 후안 그리스, 페르낭 레제 등과 독점 계약을 맺으면서 '입체파'라는 새로운 화풍을 세계적으로 더욱 널리 알리기 시작했다.
1907년 스물셋의 나이에 파리에서 화상을 시작한 칸바일러는 70여 년 동안 무명의 화가들을 거장으로 만들어내며 혁명적인 삶을 살았다.
당시, 사람들은 그를 두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무모한 투자자, 후원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도 몰라주는 무명의 어려운 화가들에게는 그는 희망과 꿈을 심어주는 천사와 같은 존재였다.
그는 화가들의 미래를 보는 안목으로 현대미술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화상으로 우리들에게 진정한 유산을 남겼다.
칸바일러
방시혁
피카소에게 은인같은 존재로 칸바일러가 있었다면, 방탄소년단에게는 그들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룹을 만들어 데뷔를 시켜 준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설립자 방시혁(1972-)이 있다.
방시혁과 방탄소년단(사진출처: 매일경제)
방탄소년단은 미국 '빌보드 200'에서 7위에 오른 후, K팝 그룹 최초로 '2017 빌보드 뮤직 어워즈'에서 수상을 했다. 이것을 시작으로 2021년에는 ‘버터’, ‘퍼미션 투 댄스’, 그리고 ‘마이 유니버스’로 빌보드 1위 자리를 6개월 이상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BTS 'Butter'(사진 출처: 헤럴드경제)
방시혁은 방탄소년단을 이런 세계적인 음악 그룹으로 만들어 내 한류 확산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7년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에서 해외진출유공 문화교류공헌 부문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또한 2018년 미국 빌보드가 발표한 세계 음악시장을 움직이는 '인터내셔널 파워 플레이어스 (International Power Players)' 73인 중 음악제작(Recording) 부문 파워 플레이어에도 선정되기도 했다.
방탄소년단과 방시혁도 피카소와 칸바일러처럼, 서로에게 윈윈의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다음에 계속…)
유로저널칼럼니스트, 아트컨설턴트 최지혜
메일 : choijihye107@gmail.com
블로그 : blog.daum.net/sam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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