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여성 한 명이 평생 낳는 자녀수는 지난해 말 현재 1.08명에 지나지 않는다. 전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이며, 2004년에 비해 0.08명이나 줄어든 것이다. 현재의 인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출산율이 2명을 조금 넘어야만 한다. 출산율이 현행 인구를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은 한국이 세계에서 인구가 줄어드는 나라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의미가 있다.
인구가 적은 나라는 주변 국가에 흡수 소멸됐던 것이 인류의 역사였다. 미래학자들은 세계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이러한 문제가 더욱 두드러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강대국이 되려면 독자적인 시장을 형성할 수 있을 정도의 인구가 필요하다. 오랫동안 잠자던 중국이 부상하고 인도가 주목받는 이유는 생산과 소비를 할 수 있는 인구가 많다는 데 있다. 경제대국 일본이 미래에 대해서 불안해하는 가장 큰 이유도 다름 아닌 인구 감소의 우려에 뿌리를 두고 있다. 반면, 미국이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는 이유는 출산율이 선진국 중에서 가장 높아 인구가 안정적으로 증가하는 데 있다.
출산율이 낮으면 생산에 종사해 소득을 올릴 수 있는 노동력이 줄어들고 부득이 외국 인력에 의존하게 된다. 그 결과 외국 인력이 대거 유입되면서 빈부 격차를 수반한 민족 갈등이 생기기 쉽다. 이것은 2005년 프랑스의 소수민족 폭동에서 확인할 수 있다. 출산율이 낮으면 부양해야 할 노인인구의 비중이 늘어난다. 그에 따라 젊은 세대가 부담해야 할 연금이나 건강보험 등 사회복지 비용이 급증하면서 세대간의 이해관계 갈등이 발생하기 쉽다. 올해 프랑스를 강타한 대학생의 대규모 시위도 젊은 세대의 희생을 요구했던 고용개혁에 대한 맞대응이었다.
1.08까지 출산율이 떨어진 것은 우리가 앓고 있는 한국병의 현 주소를 보여준다. 여기에는 한국이 처해 있는 모든 문제가 녹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일반적으로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에 비해서 출산율이 낮기는 하지만, 한국은 이상하게도 선진국 반열에 들어가지도 못하면서 최악의 저출산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저출산 문제의 이면에는 의식과 제도의 잘못이 깔려 있다. 한국 사람들의 자녀와 가정에 대한 과도한 개인주의적 가치관, 자신의 미래에 대한 비관적 전망, 남편과 부인의 전통적인 관계를 진보의 이름으로 거부하는 시민사회 분위기, 출산 문제를 언급하면 여성표를 잃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기회주의적인 정치권, 책임지기 싫어하면서 부처의 밥그릇 챙기는 데 능한 관료들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담겨 있을지 모른다.
저출산 문제가 국가적 재앙을 가져올 정도의 중대한 사안인데도 불구하고 정부는 태평스럽다는 빈축을 살 정도로 안일하다. 정부는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이나 만들었을 뿐 문제 해결을 위한 국민적 공감대를 모으는 일에는 소홀했다. 반면, 출산을 하면 저소득층에 보조금을 준다는 식의 단편적이고 대증요법적인 대책에 머물러 있다. 저출산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부부가 출산을 기피하는 원인은 복합적이며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해결 방법은 있다. 한국은 1960~70년대 출산억제정책을 성공적으로 추진해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정부는 잘살아 보자는 국민적 공감대를 모으고 출산 억제의 필요성과 방법에 대한 국민교육에 나섰다. 출산장려정책도 마찬가지다. 한 가정 한 자녀의 문제점에 대한 공감대를 모으면서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 청년들의 일자리 문제를 해결해 젊은 세대가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만들고, 공교육의 기능을 영유아까지 확대해 교육비 부담을 줄이며, 임대주택정책을 개선해 가정을 처음 꾸리는 젊은 부부의 주거비용도 덜어주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