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소리’, 들의 소리라는 뜻을 가진 정겨운 우리말이다. 그리고, 문갑현 대표가 이끄는 문화마을 들소리는 그렇게 정겨운 우리 문화를 전 세계에 전파하는 문화 전달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며, 어디든 닿는 곳마다 우리 문화를 퍼뜨리는 민들레 홀씨의 꿈을 꾸고 있었다. 우리 문화를 바탕으로 하는 공연 및 교육,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국내뿐만 아니라 일본, 미주, 유럽까지 전 세계를 무대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사단법인 문화마을 들소리의 문갑현 대표를 만나보았다.
유로저널: 안녕하세요! 마침 이렇게 문갑현 대표님께서 영국을 방문 중에 직접 만나뵙고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어서 너무나 반갑습니다. 바쁘실 텐데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 드리며, 또 이곳 영국에서도 들소리의 활동을 통해 우리 문화 전달에 힘써 주신 데 대해서도 진심을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문갑현: 반갑습니다. 저 역시 이렇게 좋은 기회를 통해 인사 드릴 수 있게 되어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유로저널: 일단 들소리의 창립 이전, 문대표님께서 걸어오신 길에 대해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문갑현: 음악, 문화, 예술과는 전혀 상관 없는 전공으로 대학에 입학한 제가 이 길을 걷게 된 것은 풍물, 탈춤 동아리 활동을 통해서였습니다. 풍물, 마당놀이, 탈춤 등을 통해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의 문제를 예술과 접목시키려는 활동이었습니다. 특히, 당시의 민중 문화운동은 제게 참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렇게 문화예술 운동에서 접근했다가 어느 순간부터 우리 문화의 민중적 토대를 설립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현실 정치 문제가 개입된 문화운동 형태에서 탈피하고, 예술적인 측면을 강화하고자 한 것이지요.
유로저널: 그것이 바로 들소리가 창단 동기가 된 것이겠군요.
문갑현: 네, 그렇게 해서 사단법인 문화마을 들소리가 1984년도에 창단되었습니다. 초기의 들소리는 약 10명 가량으로 구성된 문화 예술 운동의 형태였습니다. 현실의 이야기를 관객과 함께 풀어낼 수 있도록, 마당(무대)의 높이를 낮추고, 모두가 함께 소통을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자 했던 것이지요.
유로저널: 들소리라는 이름은 어떻게 지어진 것인지요?
문갑현: 들소리의 이름은 지인인 작가 분께 부탁을 드려서 만들게 되었습니다. 들소리는 말 그대로 들에서 나는 소리라는 뜻입니다. 들에는 우리네 모든 희노애락이 담겨 있고, 우리 인간사의 모든 일들은 들에서 이루어집니다. 들소리를 통해 우리네 인간사를 풀어내고, 함께 소통하고자 하는 취지가 담겨 있습니다.
유로저널: 들소리가 그 동안 표현했던 예술 형태를 간략히 설명해 주신다면?
문갑현: 초반에는 탈춤의 원형을 빌린 창작극 (현재의 마당극) 형태의 활동을 했습니다. 이후에는 그것이 풍물 중심으로 옮겨 갔습니다. 우리 문화를 토대로 대중들에게 가깝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으로 우리 놀이를 도입하게 되었고, 우리 풍물과 놀이가 포함된 공연 형태로서 ‘타오놀이’가 만들어 졌으며, 풍물, 노래, 전통 악기를 도입한 월드 뮤직 형태로서 ‘비나리’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유로저널: 아무래도 상업성이 중심이 되는 철저한 대중문화가 아닌 만큼, 그에 따른 여건이 많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문갑현: 네, 사실 우리 나라에서는 어떤 작품으로 극장에서 장기 공연을 하기는 여의치 않은 여건입니다. 특히, 전통 문화예술의 경우, 대중성 확보가 쉽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상업성이 보장되는 대중적인 스타도 등장하기 어렵고, 전통 문화예술의 시장성도 여의치 않다 보니 좋은 작품도 발표회 수준으로 공연되고, 그것이 끝나면 엔터테인먼트 이벤트 시장에 팔려가는게 현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상업성은 처음부터 확보되기 어렵고, 작품성을 논하기는 더더욱 어려운 것이지요. 그러한 이벤트 시장도 몇몇 단체가 독식하고 있는 점도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고요.
유로저널: 해외 활동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반응은 어땠는지요?
문갑현: 사실 한국에서는 제대로 활동을 하려면 인맥 필요한데, 처음 들소리가 지방에서 활동을 하다가 서울로 올라갔더니 진입 자체가 참 어렵더군요. 당연히 무명인지라 지명도를 창출하기 위해 투자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그 지명도를 우리 나라에서가 아닌 해외에서 쌓자는 생각으로 해외 활동을 시도하게 된 것입니다. 해외 진출에 대한 고민을 한참 하던 중 드디어 2004년 싱가폴에서 쇼케이스를 통해 가능성을 타진해 볼 기회가 찾아왔는데, 단원을 튼실하게 갖추고 좋은 작품만 있다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겠다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해외에서의 반응은 일단 저희들의 음악이 그들에게는 워낙 새로운 것이다 보니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유로저널: 들소리를 이끄시면서 가장 어려운 점이 있다면?
문갑현: 대부분의 일들이 그렇겠지만, 역시 사람이 제일 어려운 과제입니다. 시장 개척도 할 수 있고, 롱런할 수 있는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어도, 함께 활동할 수 있는 좋은 사람들이 갖춰지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가지 면에서 이 활동에 오랜 기간 전념할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저희는 민간 단체로서는 급여도 가장 높은 수준이고, 4대 보험도 제공 되지만, 단체로서 늘 이 활동에 전념해야 하는 생활인 관계로, 이 일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가장 어려운 것 같습니다.
유로저널: 그렇다면 반대로 들소리를 이끄시면서 보람을 느끼시는 부분이 있다면?
문갑현: 들소리 활동을 해오면서 그래도 시대의 변화에 따른 나름대로의 역할에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음악적인 면에서 국악의 틀을 탈피하고, 월드 뮤직으로 전환한 시초가 바로 들소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전까지는 월드 뮤직이 아닌 퓨전 음악이라는 용어로 존재했던 것이지요. 그리고, 민간 문화 단체로서 저희처럼 해외에 사무실을 낸 팀은 저희가 유일합니다. 이것으로 하나의 작용점 역할을 해서 더욱 우리 문화가 해외로 진출하는 발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우리 음악을 해외 시장에서 어떻게 풀어가는가에 대한 사례를 남긴 점은 참 보람을 느끼는 부분입니다.
유로저널: 사적인 질문입니다만, 아내분이시자 함께 들소리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최증현 님과는 어떻게 만나셨는지요? (최증현 님은 이미 지난 해 인터뷰 ‘세계인들에게 우리 장단을 전파하는 들소리의 최증현 님과’편을 통해 소개된 바 있습니다)
문갑현: 집사람과는 1982년도에 같은 동아리 만났고, 1991년도에 결혼했습니다. 함께 문화예술 활동을 해온 사이인 만큼, 서로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점은 참 좋습니다. 그러나, 함께 같은 일을 하는 만큼, 그에 따른 공사구분에 있어서는 오히려 더 철저하게 해야 하는 부분도 있지요. 이제는 두 명의 자녀들을 돌보기도 해야하는 만큼, 무대에 직접 서는 역할보다는 가르치는 역할에 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유로저널: 앞으로의 계획과 꿈이 있으시다면?
문갑현: 일단, 저희 영국 런던 유럽지부가 지난 2006년 3월 설립되었습니다. 아직은 개척 단계입니다만, 그것을 토대로 다양한 축제에 참여하고, 극장에서도 공연할 수 있도록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라기는 오는 2012년 런던 올림픽 때, 사오백명 규모의 풍물패를 조직해서 전 세계인들 앞에서 퍼레이드를 하고 싶습니다. 하나의 새로운 문화를 전파하기 위해서는 일상 속의 강습회가 있어야 저변 확대가 됩니다. 사오백명 규모의 풍물패가 조직된다면 그것을 위한 강습회가 필요하고, 당연히 우리 풍물에 대한 저변 확대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예술촌(Art centre)을 만들어서 다양한 예술인들과 교류를 갖고, 우리 문화 전반을 담아낼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민들레 홀씨를 참 좋아합니다. 그 작은 민들레 홀씨가 새로운 땅에 떨어지면 그것을 중심으로 민들레가 자라나고 퍼지듯이, 우리 문화를 전파하는 민들레 홀씨가 되어 전 세계 어느 곳이든 그 홀씨가 떨어지는 곳마다 우리 문화가 전파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유로저널: 오늘 좋은 말씀 너무나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들소리를 통해 전 세계에 우리 문화가 널리 전파될 수 있도록 함께 응원하겠습니다.
들소리 공식 웹사이트: www.dulsori.com
유로저널 전성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