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화의 조짐을 보이는 남북 경색
남북관계가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다.
지난 달까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예의주시하고 있던 북한은 지난 김태영 합참의장의 청문회 과정에서 나온 '선제타격' 발언 이후 대남 강경 조치를 잇달아 취하고 있다.
남북교류협력사무소 남측 당국자 11명을 일차로 추방한데 이어 남측의 사과를 요구했다. 그리고 북한 노동신문은 1일 논평을 통해 이명박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하며 남측의 대북정책 전반을 비판하고 나셨다.
그 동안 남측 대통령 실명 거론을 자제했던 북한이 실명을 거론한 것은 2000년 6∙15공동선언 이후 8년 만의 일이다. 남측 당국자 추방, 남북대화 단절 경고 등 1차적인 반발에도 불구하고 남한 정부가 전혀 동요하지 않고 ‘당당한고 의연한’ 자세를 강조하자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남측의 대응 태도이다.
북한 군당국이 3일 전통문을 통해 모든 남북대화와 접촉 중지, 군사분계선(MDL) 통행 차단을 시사하는 `군사 조치'를 언급한 상황에서도 정부의 대응기조에는 변화의 조짐이 감지되지 않고 있다.
즉 북한의 도발성 조치에는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가시적인 성과가 있을 때만 남북 대화를 지속하겠다는 현 정부의 대북관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지금의 대북 정책의 가장 중요한 목표 중의 하나인 북핵과 관련하여 보면 매우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은 현재 잃을 것 없는 게임을 하고 있는 셈이다.
남북 간의 대화를 통하지 않더라도 이미 북핵 신고 방안에 대한 북미간의 합의가 임박한 것으로 보인다.
거기다 북한은 중국과의 교류 협력을 강화함으로써 굳이 남측과의 관계를 배려하지 않더라도 경제난과 식량난, 북핵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즉 '통미봉남(通美封南)'이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현재의 상황은 통미봉남을 처음 제기했던 과거와는 완전히 다르다. 남한과 미국 모두 보수 정권이 들어섰고 중국 역시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긍정적인 대외 이미지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걱정스러운 것은 남북관계가 사실상 노무현 정부 이후 조금씩 악화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지난 노 정권은 대북 관계에서 긴장의 완화보다는 현상 유지와 대화의 끈을 놓지 않는데 주력했고 그 외에는 원칙적인 상호주의로 일관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처음부터 대북 강경기조의 분위기와 무관심으로 일관하자 얼마 전의 남북 정상회담의 성과마저도 무너져 버린 상황이 된 것이다.
이런 관계 악화의 일차적 책임은 물론 북한에 있다.
즉 남한을 같은 민족으로도 또 진정한 대화파트너로 여기지 않고 있는 것이다.
현재 북한은 오로지 체제의 유지와 경제 정상화에만 눈길이 쏠려 있다. 이런 목적을 위해 전술 전략적인 위협을 일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 것은 합참의장 후보자의 경솔한 발언이다.
안그래도 올해 남북 관계의 전망이 불투명할 것이라는 전망을 고려했다고 한다면 '북한이 핵이 있다면'이라는 가정을 통한 질문을 받았을 때 좀더 완곡하게 답변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대북 전문가들은 이번 상황이 장기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은 남북관계가 경색된다고 해도 큰 타격을 입을 것이 없으며 남한 정부 역시 남북 관계를 더 장기적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상황을 맞아한다고 해도 중요한 것은 민간교류와 개성공단을 통한 경제 협력의 끈은 절대 끊어져서는 안된다.
정부 차원의 문제로 민족 간의 공생의 길을 막아서도 막을 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