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정기국회의 자세
지난 9월 1일부터 18대 국회 첫 정기국회가 100일간의 회기에 돌입했다.
10년만에 정권 교체가 이뤄졌고, 172석의 거대 여당이 출범하는 등 정치 지형이 대폭 변화한 가운데 열리는 만큼 기대와 우려가 교차되고 있다.
여야 모두 지난주 연찬회와 워크숍을 통해 전열을 가다듬고 결의를 다짐했다.
한나라당은 "경제를 살리고, 질서 확립을 최우선으로 하는 국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한 반면, 민주당은 "소수 특권층에 혜택을 주려는 정책들을 온몸으로 저지하고 민생 구출 국회를 만들 것이다"고 강조했다.
정기 국회를 앞두고 여야 정당들이 보여준 비장한 결의와 애쓰는 모습은 일견 수긍이 가는 면도 있지만 불안과 걱정이 앞선다.
그 이유는 여야가 시작도 하기 전에 벌써부터 '상쟁 연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감세와 규제완화, 민생입법을 통해 '개혁 드라이브'를 걸겠다고 선언했고 민주당 등 야권은 거대 여당의 일방 독주를 결사 저지하겠다고 맞서고 있어 쟁점법안과 정국현안을 놓고 일대 격돌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이번 정기 국회가 대화와 토론은 없고 이념대결과 정쟁이 난무하는 '증오의 정치'로 흘러갈 나쁜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는 "각종 좌편향 정책을 바로 잡는 것이 경제 살리기의 시작"이라고 강조하면서 "반기업, 반시장 법령을 반드시 정비하겠다"고 선포했다.
또 사회 질서 확립을 위한 시민집단 소송제 도입, 기업 투자 활성화를 위한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법인세와 소득세 감세 등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과거로 회귀하려는 한나라당의 반역사적 기도를 저지, 분쇄하겠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반민생, 반민주, 반평화 등 3대 투쟁 분야를 선언하고 집회 자유 확대, 부가가치세 한시적 인하, 중소기업의 법인세 인하 등을 제시하며 맞불을 놓았다.
18대 국회가 17대 국회의 불행한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용단을 내려야 한다.
무엇보다 국민이 요구하는 민생 아젠다를 실천하기 위한 생산적 정책 경쟁을 펼쳐야 한다.
한국 경제가 9월에 고비를 맞을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경기동행지수와 선행지수는 6개월째 하락했고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6%대에 육박하는 등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가하게 이념 논쟁을 벌일 때가 아니다. 민생 경제 살리기에는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한나라당이 지난 정부를 '좌편향·반시장'으로 규정해놓고 시작하는 것은 참으로 안이하고 미숙한 전략이다. 여당이 야당을 자극하면서 국회를 이념대결로 덧칠할 경우, 과거 사례에서 보듯이 결과는 뻔하다.
국민을 고통속으로 몰아 놓고 정치는 불신 받는 '자해의 정치'가 판을 치게 된다.
경제를 살리겠다고 집권한 한나라당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오만과 독선이 아니라 겸손과 배려이다.
이외에 여야 모두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만이 옳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상대방의 가치를 배척하고 자신들의 가치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극히 유아적이며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정치이다.
그보다는 상대방의 가치를 존중하고 자신의 시각에서 이를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지혜와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큰 정치이다.
최근 한나라당 연찬회에서 정몽준 의원은 "변화하지 않는 보수는 수구이고, 책임지지 않는 보수는 기만"이라며 "한나라당은 진보진영보다 진보적 가치를 더 많이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의 박영선 의원은 보수진영의 전유물로 여겨온 감세 논의에 대해 "진보 정책을 추구하려면 '보수의 언어'로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18대 국회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열린 마음과 상대에 대한 포용의 자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