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기부문화

by 유로저널 posted Dec 24,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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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이맘 때면 언론에서 늘 하는 말이 있다. 유로저널도 이제서야 1년 묵은 숙제하듯 주저하며 이야기를 꺼낸다. 바로 '기부'다. 2008년의 대한민국은 어쩌면 이 '기부'로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이명박 대통령은 비록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후보자 시절 당선 공약으로 전재산 기부를 약속했다.또한,이 대통령은 다달이 월급여 전액을 소외계층을 돕기 위해 전달했다고 한다. 늘 그렇듯 워랜 버핏과 빌게이츠는 올해도 엄청난 돈을 자선사업에 쏟아 부었고, 사람들도 이제는 그러려니 하는 모양이다. 홍콩 배우 성룡이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할 것을 약속하자 덩달아 서신왕래하던 김장훈 씨도 신이 났다. 반면 문근영씨가 익명의 거액 기부자였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벌어진 인터넷에서의 난장은 여전히 한국 사회의 모자란 면을 보는 것 같아 우리를 쓴웃음짓게 만들기도 했다. 유로저널에서도 한국 내 '독거 노인'들을 위한 연탄사주기 캠페인을 해오다가 한-두 몰지각하고 지각이 없는 한인들로 부터 왜곡된 비난을 받기도 했다.

늘 기부문화와는 담쌓고 살 것만 같던 한국 사회도 이제 조금씩 나누는 삶을 배워가는 것 같다. 많은 젊은이들이 소외계층을 위한 자원봉사에 나서는가 하면 주식이 반토막 나며 경제혼란으로 치닫고 있던 올해에 기부액이 사상 최대에 달했다. 특히 그동안 생색내기에 가까웠던 기업기부보다, 개인 기부금액이 큰 폭으로 늘었다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다. 혹자는 우리 사회에 기부 문화가 싹트기 시작한 시기는 성장기에 가난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가 본격적인 사회 동력으로 기능하면서부터라고 보기도 한다. 생존의 아귀 다툼에서 성장한 기성 세대에게서는 나누는 삶이란 동화책 속에서나 찾아볼 법한 이야기란 것이다. 한 편으로는 그런가보다 싶기도 하면서도, 정작 인정하자니 낯부끄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 개인 기부 증가의 속살을 뒤집어 보면 분위기가 좀 달라진다. 개인 기부의 대부분이 자선단체나 구호단체에 직접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종교단체에 한 것이다. 특히 고소득 자영업자의 소득 공제와 세제 감면 혜택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이 기부금이라는 사실을 접하고 나면, 왜 한국의 대형 교회들에 그토록 많은 부유층과 고위 관료들이 목을 메는지 알 법도 하다. 엄밀히 말해 종교 단체를 통한 기부는 직접적인 구호 사업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먼저 대부분의 금액이 종교단체 운영비와 교육비, 그리고 전도사업 확장을 위한 경비로 사용된다. 헌금 전액으로 자선 단체를 운영하는 종교단체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은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게다가 기업 기부의 대부분은 문화사업이라는 명목으로 운영된다. 역시 법인세 감면을 목적으로 한 것이 이제까지의 모습이었다. 기업의 출연금은 다시 그 그업이 운영하는 문화 재단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 재단은 구호사업 보다는 미술관 건립이나 장학재단 운영을 통한 자사 직원들의 복지에 힘쓰는 등 실제 구호 사업에 지출하는 금액은 그리 크지 않다. 특히 수재의연금과 같이 일시적이고 눈에 띄는 사업에만 치중하는 측면도 있다. 상시적인 활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다. 기업에서 내세우는 자선활동이란 사실 대부분 자매 결연을 통한 사원들의 '노동력'에 의지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나라의 기부문화는 세계 어디에 내놓기 참 부끄럽다. 록펠러의 신화는 고사하고 인도의 타타기업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네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일게다. 인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 타타그룹의 사훈은 '선한 생각, 선한 말, 선한 행동'이다. 정치자금을 주지 않는 기업으로 유명한 타타그룹은 매년 1억 달러 이상을 교육, 문화, 병원 등 다양한 사회사업에 내놓는다. 타타그룹의 창업자인 잠셋 타타의 유언에 따라 유산의 3분의 1을 투자하여 1911년 설립한 인도과학대학이나, 잠셋푸르시의 수도, 전기 및 학교 병원 시설의 100%를 공급한다. 말 그대로 기업의 돈으로 시민들의 복지를 책임지는 '선한 기업도시'인 셈이다. 혹자는 8시간 노동제와 유급휴가제, 퇴직금제가 서구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타타그룹 역시 이미 1910-20년대 선도적으로 도입했다. 미국이 8시간 노동제를 도입한 것은 경제 대공황이 발발하고 나서야 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의 타타그룹은 6개 대륙 54개국 이상에서 97개 계열사들이 여전히 건강하게 활동하고 있다. 대한민국 대표기업이라는 삼성은 과연 어떤 기부성적표를 받고 있는지 이쯤되면 궁금해질만도 하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기부는 나눔일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단체주의적 사고에 기반하고 있다. 즉 단단히 구조를 이루고 있는 현대 사회에 있어서 혼자만의 능력으로 일구어낼 수 있는 성공이란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기부라는 표현보다는 '사회환원'이라는 개념이 더 중요하다. 내가 버는 돈 한 푼이 사실 누군가의 손때가 묻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이 나눔의 첫걸음이다. 영화 '어바웃 슈미트'에서 은퇴한 보험회사 직원으로 분한 잭니콜슨은 충동적으로 구호단체에 월 10달러를 기부한다. 그리고 모든 것이 떠나간 후 마지막 장면에서 그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그 기부로 연결된 아프리카의 한 소년으로부터의 편지였다. 나눔은 곧 만남이며, 상호 이해를 의미한다. 지금 모두가 힘들고 어려운 바로 이 순간이 나눔의 실천을 시작할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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