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의 수렁, 아프간 전쟁
부시 미국 전 대통령이 오바마에게 남긴 유산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악질적인 것이라면 바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일 것이다. 특히 9.11 테러의 직접적인 근원지로 꼽았던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미군의 공격은 무자비하기 이를데 없었다.
산을 뚫고 들어가 폭발하는 벙커버스터를 비롯한 신개발 무기들이 모두 동원된 곳이 바로 아프가니스탄이다. 아프가니스탄 주민들의 외지인에 대한 적개심 때문에 세계 언론이 자유롭게 접근하지 못한 바람에 미국의 '비인도적 무기'와 '살상 방식'이 마음껏 발휘되었다.
압도적인 무력으로 미국은 현재 아프간에 친미정권을 세운 상태다. 그러나 현재 아프가니스탄의 남부를 '사실상' 점령하고 있는 단체는 여전히 탈레반이다. 빈 라덴의 흔적은 구경조차 하지 못했고, 이슬람 근본주의의 전도사인 '학생' 탈레반은 서구문명의 침입을 거부한 채, 여전히 저항을 지속하고 있다.
새로 당선된 오바마 미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미국 경제의 안정과 새로운 국제 질서를 형성하기 위해 이런 몸쓸 유산들을 신속히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그가 제시한 대외정책의 원칙은 더 큰 협력과 이해다. 무력 사용은 신중하게 하는 대신 미국이 먼저 정당성을 높이고 모범을 보임으로써 지구촌의 협력을 꾀하겠다는 뜻이다.
그는 “이라크를 책임 있게 이라크 국민에게 넘겨주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어렵게 얻은 평화를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은 결국 더 큰 수렁인 이라크에서는 손을 떼고, 그나마 작은 전쟁인 아프가니스탄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정책을 뒷받침하듯 지난 주 아프가니스탄에 1만 7천 명의 병력을 증파를 발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최근의 아프간 상황으로 인해 미국의 의도대로 진행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일단 현재 지정학적으로 아프간의 미국 보급 루트는 파키스탄 접경 지역을 통과한다. 이른바 카이버 패스라 불리는 이 지역은 파키스탄 접경 지역에 밀집해 있는 탈레반의 일상적인 공격을 받고 있다.
서쪽으로는 이란이 자리잡고 있으며 북부에는 대부분 러시아 영향권의 중앙아시아 국가들이다. 미국이 러시아의 협력을 얻지 못한다면 제대로된 보급 루트 하나 마련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작년에 급증한 전사자 수로 인해, 유럽 국가들이 병력 증파를 꺼리는 것도 미국의 전쟁 수행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전통적인 우방국이었던 영국, 프랑스, 독일 모두 미국의 증파 요청에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재파병 요청을 하려 했으나 정부가 선제적으로 증파 거부 입장을 밝히는 바람에 무산되고 말았다.
무엇보다 미국을 가장 힘들게 하고 있는 점은, 도대체 왜 자신들이 이곳에서 싸우고 있는가 이다. 즉 아프간 전쟁의 궁극적인 목표와 구체적인 활동 자체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도 이런 점을 고려해 지난 주 증파 발표 연기를 지시했다. 아프간이 또 하나의 '베트남 수렁'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점점 인지해가고 있는 것이다. 몰론 아프간전은 베트남전과는 다소 차이가 있긴 하다.
미군에 대한 공격은 산발적이며, 탈레반은 정규전을 수행하기에는 전력이 부족하다. 게다가 미국 국민들은 베트남전과 달리 아프가니스탄의 존재를 자신들에 대한 직접적인 테러의 온상으로 여긴다. 즉 전쟁의 정당성 자체를 국민들이 수용하고 있는 상태인 것이다.
그러나 많은 군사전문가들은 아프간전 승리를 불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 사실 미군의 증파계획 자체는 어떤 전략적인 목표를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이미 파병되어 있는 병력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성격이 짙다.
거기다 8년간 지속된 전쟁과 미군의 끊임없는 오폭, 민간인 살해로 아프간 민심은 미국에 완전히 등을 돌린 상태다. 미국을 등에 없고 당선된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조차 탈레반과 화해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해결책이 없다는 취지의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실제로 탈레반은 세계 최대의 아편을 생산함으로써 게릴라전을 지속할 엄청난 자금원을 확보해 놓고 있다. 미군기지에 대한 끊임없는 로켓포 공격으로 병사들을 패닉으로 몰고 가고 있는 것이다. 국가라기 보다는 부족 집단의 형태를 띠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은 이미 구 소련을 비롯한 서구 열강들의 늪이 된 지 오래다.
이렇듯 아프간 전쟁은 미국식 힘의 외교가 얼마나 참담한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이다. 그렇기에 오바마 대통령이 취할 선택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테러 위협 세력의 제거라는 목표는 버릴 수 없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쟁 역시 지속이 불가능하다.
오바마 대통령에게는 기존의 군사적 하드 파워가 아닌, 테러 위협을 억제할 새로운 수단을 강구해야함과 동시에 철군의 정당성을 국민에게 인식시켜야할 난제가 남아 있다.
이런 점에서 미국의 선택은 쉽지 않으며 아프가니스탄 사태가 장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과연 미국은 '아프간의 늪'은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