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야,4.29 재보선에 나타난 민의 파악 못해
현대 민주주의에서 가장 핵심적인 이벤트는 바로 선거다.
선거는, '국민의 의사는 대변될 수 있다'는 명제 아래 확립된 대의민주주의에서 그 실질적 주권이 무엇을 원하는지 판단할 수 있는 유일한 척도인 셈이다.
따라서 정당정치에서 선거의 과정과 결과, 그리고 그 영향력을 판단하는 일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미국의 정치학자 샤츠슈나이더는 '절반의 인민주권'에서 정당은 사회적 갈등을 공식화할 수 있는 효과적인 장치이며, 그 갈등을 어떻게 구조화할 수 있는가가 선거에 드러난다고 보았다.
즉, 정당이 선거에서 패배한다는 것은 그만큼 민의를 결집시키지 못했거나, 혹은 현재 잠재되어 있는 갈등의 양상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재보선 결과를 다시 음미해 보는 일은 지금의 한국 정치 상황을 분석하는데 있어 필수적인 일일것이다.
객관적인 수치를 보자. 우선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은 한 석도 승리하지 못했다.
민주당 탈당파와 그 연대인 무소속이 둘, 친박계 무소속이 하나, 진보신당이 울산 북구에서, 그리고 인천 부평을에서 민주당이 각각 한 석 씩 가져갔다.
지자체장 선거에서는 민주당이 시흥시장 선거에서 당선자를 냈으나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의 지방의원 선거에서는 모두 민주노동당이 승리했다.
교육감 선거는 당적을 걸 수 없으니 차치하기로 한다면, 이번 재보선 결과는 한마디로 반 이명박 진영의 싹쓸이다. 보수진영에서는 전통적인 강세지역에서 그것도 박근혜의원의 후광을 등에 업은 무소속 정수성 후보 혼자만 당선자를 낸 꼴이다.
보수언론에서는 말을 삼가고 있긴 하지만, 일견 눈에 띄는 현재의 정치지형은 전국이 반 이명박으로 하나가 된 셈이다.
그리고 좀 더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전통적으로 민주당 강세 지역이었던 호남에서 민주당이 단 한 석도 차지하지 못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이는 현재의 민주당이 호남 지역의 갈등 양상을 정치적 구조로 끌어들이지 못하고 있거나 혹은 기존과는 다른 차원의 갈등 구조로 치환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광역의원 선거에서 민주노동당 후보가 당선되었다는 사실은, 과거 민주당 지지계층의 분화와 이탈이 가속화되어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재의 민주당으로서는 계층적 갈등의 폭넓은 스펙트럼을 대변할 수 없음을 국민들은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전주 지역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동영 후보와 신건 후보의 당선되었다는 사실은, 현재의 정세균 체제가 반 한나라당 기조에만 의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누가 되든 한나라당만 아니면 되는 셈이다. 그만큼 민주당이 뚜렷한 정치 지형도를 그려낼 정책이나 비전이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현재 정당 구조에서 주류인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 이러한 선거의 결과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이 없다는 사실이다.
사실상 반 이명박 구도가 나타난 이번 재보선에 대해 정작 당사자인 이명박 대통령과 박희태 대표는 일절 언급이 없다. 애써 별 것도 아닌 일처럼 치부할 모양이다.
정책이나 당의 인적 구조에 어떠한 변화의 기미도 감지되지 않는다. 심지어 민주당에서는 인천 부평을과 시흥시의 승리만 가지고 자신들의 승리인양 자랑스러워 한다.
양쪽의 반응은 어찌 보면 이번 선거 결과를 여론전의 양상으로만 끌고가려는 듯하다.
한나라당은 청와대의 정책 추동력에 차질을 주지 않기 위해 설설 기는 모습이고, 민주당은 자신들의 본질적인 정체성에 대한 고민없이 두루뭉실 정당으로 남으려는 모양이다.
그러나 선거 결과에 무감각하다는 것은 그만큼 민주주의에 무감각하다는 말이다.
정치는 민의를 얼마나 정확히 반영하느냐에 그 성공 여부가 달려 있다.
한나라당과 현 정권이 이번 선거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향후 있을 10월 재보선과 내년의 지방선거 참패는 불을 보듯 뻔할 것이다.
또 민주당 역시 전통적인 진보성향의 유권자들의 이탈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의 정치 지형이 다시 한번 대 격변을 예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