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체제는 기본적으로 입법, 사법, 행정이라는 세 바퀴로 굴러간다. 루소와 몽테스키외를 들먹어지 않더라도 이런 기본적인 견제장치가 잘 작동할 때 민주적 시스템이 온전하게 굴러간다는 것은 누구나 다 공감할 것이다.
그 중에서도 사법부는 다른 기구들과 달리 국민에 의해 선출되지 않은 영역이라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 '선거'는 이런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반영되는 광장이다. 따라서 선거에 의해 선출된 권력은 이미 태생적으로 특정 집단의 정치적 잣대가 내재되어 있다. 다른 말로 입법이지만 집행 과정에서는 국민의 의사를 대변되며 또 그래야 마땅한 것이다. 입법부는 이러한 이해관계를 '법조문'으로 탄생시키는 역할을 한다.
반면 사법부는 사회적 공통분모로서의 법을 엄정하게 적용하는 기능을 한다. 따라서 사법부는 그 구성에서부터 이미 '선거'라는 장치를 제거할 필요가 있었다. 사법시험을 치르고 2년 간의 연수 과정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얻은 '전문가'만이 판사라는 직함을 획득할 수 있도록 만든 이유 자체는 바로 이런 전문성과 객관성을 보장하기 위해서였다. 즉 사법부가 현재의 형태로 서게 된 과정에는 바로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가 반영된 '주관적 판결'을 막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며칠 전까지만 해도 아무런 문제없이 잘 돌아가던 한국의 법원이 지금은 이념적 편향에 사로잡힌 반국가적 단체로 낙인찍히고 있다. 일부 언론과 한나라당에서는 강기갑 의원 국회 폭력 사건과 PD수첩 사건 무죄 판결을 기화로 법원에 막말을 퍼붓고 있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는 심지어 과거 군사독재 시절에나 있었던 법관 재임용제를 부활시켜야 한다고까지 이야기할 정도다. 법관재임용제는 당시 군사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 판결을 내린 판사들을 강제로 내쫓기 위해 만들었던, 세계적으로도 부끄러운 제도였다. 국격을 논하던 대통령과 집권 여당에서 내뱉은 말 치고는 무척 위험한 발언이다. 다수당이 가진 입법권력을 바탕으로 사법부마저 장악하겠다는 소리로 들린다.
엄밀히 말해 이번 피디수첩 판결이나 강기갑 무죄 판결은 보수 언론이나 한나라당의 주장처럼 이념 편향적 잣대가 적용된 것이 아니다. 법은 늘 '반드시 옳은 것'의 세계와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법 자체로는 사실이 아닌, 객관적으로 재단할 수 없는 가치 문제에 있어서는 판단을 보류할 수 밖에 없다. 광우병에 대해 정부의 주장이나 피디수첩의 주장 모두가 무엇이 옳은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잘잘못을 가린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인 셈이다. 또 강기갑 무죄 판결 역시 어떤 정황에서 일어난 것인지 확실하게 '고정'되지 않는한 이번 판결 이상의 것이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번 판결을 문제 삼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특정한 주관과 이해를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즉, 일부 언론과 한나라당이 원하는 세계관이 무엇인지를 극명하게 드러낸다는 것이다. 자신의 세계관이 사회의 전 영역에 반영되기를 바라는 것은 권력자의 오만이라 하겠다.
법은 그 자체로 타협의 산물이다. 따라서 법이 적용되고 해석되는 것에서 한 사회의 이해 관계의 절충점을 찾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판결의 다양성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특정 세력의 입맛대로 법이 해석되고 적용된다면, 또 모든 심급에서 판결이 동일하다면 그것은 근대적 다원주의에서 다시 파시즘적 사회로 퇴보하는 길에 지나지 않는다. 다양성과 분권의 가치가 민주주의의 본질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전 유럽 한인대표신문 유로저널, eknew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