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화청사 논란을 빚은 경기도 성남시가 채무지급유예(모라토리엄)를 선언했다.
지자체의 모라토리엄 선언은 국내 지자체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무려 3000억 원이 넘는 초호화 청사를 짓고, 이것도 모자라 수억 원을 들여 화려한 준공식을 가졌던 경기도 성남시가 판교 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회계에서 빌려 쓴 돈을 갚을 수 없다며 지급유예선언(모라토리엄)을 한 것은 미리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3000억 원을 들여 청사를 지을 정도라면 시 살림을 어떻게 했는지 알만하지 않은가?
이재명 성남시장은 12일 기자회견을 통해 “판교신도시 조성사업비 정산이 이달 중 완료되면 LH와 국토해양부 등에 5200억 원을 내야 하지만, 현재 성남시 재정으로는 이를 단기간 또는 한꺼번에 갚을 능력이 안 돼 지급유예를 선언한다.”고 말했다.
이 시장은 이어 “지급유예가 장기화하면 판교 공공시설사업과 초과수익금을 이용한 분당 수서 간 도로지중화사업 등이 불가능해지므로 먼저 지방채를 발행해 연간 500억 원씩 갚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재정위기 극복을 위해 대체 청사 마련, 위례신도시 사업권 확보, 불필요한 사업 중단, 선진회계 도입 등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이번 성남시의 모라토리엄을 보는 눈은 사람마다 다르다. 일부에선 전용금을 공원도로 확장(1000억원), 주거환경개선사업(1000억원), 부족예산(1000억원), 수익감소에 따른 일반회계 재원(1000억원), 은행동 환경사업(1300억) 등에 다 써버려 실제로 돈이 없다는 주장이다.
이 시장은 전임 집행부가 무리하게 대단위 사업을 하면서 돈을 썼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한편에선 성남시 재정위기의 책임이 이대엽 시장 등 전임 집행부에 있음을 분명히 하기 위한 신임 이 시장의 전략으로 보기도 한다. 성남시의 모라토리엄 선언은 민주당의 이재명 신임 시장이 한나라당의 이대엽 전임 시장의 과오를 부각시키고 지방채 발행 승인권자인 행정안전부를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란 분석이 일반적이다. 전국 기초단체 중 재정자립도 8위인 성남시가 이 지경에 이를 정도로 재정 상태가 곪아터진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번 성남시의 모라토리엄 선언과 관련, 행안부는 성남시가 부채를 갚을 능력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성남의 재정 자립도는 67.8%로 경기도 31개 지자체 가운데 가장 높다. 이 시장의 정치적 계산이 깔려있다는 것이다.
성남시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할 만큼 재정이 어려운지 우린 잘 모른다. 그럼에도 잊어서는 안 될 게 있는데 바로 호화청사다. 지자체가 3000억 원이 넘는 초호화 건물을 짓고 법석을 떨더니 결국 빚을 갚을 수 없다 했다.
이번 일은 지자체 장이 정신이 똑바로 박히지 않으면 시민들이 고통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웅변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지자체 장들이 경쟁적으로 수천억 원의 청사를 지은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지자체 장의 독주를 막을 견제장치도 없는 상태에서 아방궁 같은 청사를 짓고, 돈을 푹푹 써대며 재정을 악화시킨 예는 부지기수다. 앞으로 제2, 제3의 성남이 나오지 않을지 걱정이다. 지자체의 분에 넘치는 호화청사, 과시행정, 무리한 투자, 표를 의식한 행정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전문가들은 “지금 지방재정은 위기”라고 주장하고 있다. 윤영진 교수(계명대)는 “세입과 세출의 괴리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감세정책으로 지방재정이 타격을 받고 있는 반면 고령화 진전 등으로 복지수요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윤 교수는 또 “그리스 사태는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이 아니다”며 “우리도 점점 멍이 들어가고 있으며 대책을 세우지 않는 한 만성적인 구조로 바뀔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 1일 시작한 민선 5기 기초단체장들은 우선 불요불급한 경비 절감과 구조조정, 세수 발굴을 통해 재정 건전성을 높여야 한다. 또 선심성·과시성 사업을 당장 취소해야 한다.
선심행정의 피해는 결국 그 지역 주민에게 돌아간다. 지역 주민과 의회의 감시·견제 기능이 강화돼야 혈세 낭비를 막을 수 있다.
<전 유럽 한인대표신문 유로저널, eknew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