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상봉 정례화와 남북 관계 개선

by 유로저널 posted Sep 15,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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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 상봉 정례화와 남북 관계 개선

12일 저녁 한국에 도착한 스티븐 보즈워스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행보가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는 이틀 동안 한국에 머물면서 외교부 및 통일부 고위급 인사와 회동하고 이어 일본 도쿄와 중국 베이징을 차례로 방문한다. 그의 행보가 주목을 끄는 이유는 그의 한·일·중 순방이 천안함 사건 이후 교착 상태에 빠진 북핵 6자회담을 재개하는 촉매제가 될 지도 모른다는 관측 때문이다.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기류는 미묘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천안함 사태 이후 극한 대립으로 치닫던 남북관계가 새 국면을 맞고 있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는 몇 가지 상황들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나포 30일만에 오징어 채낚기 어선 대승호와 선원 7명을 최근 송환하더니 곧바로 수해물자 지원 요청과 이산가족 상봉 제의까지 들고 나왔다. 구호물자 요청은 그들의 현실적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한 것이요, 이산가족 상봉 제의는 대북 제재국면을 완화하기 위해 국제사회와 남측에 보내는 다분히 정치적인 제스처로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한국은 그런 상봉을 정례화하자고 역제의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면 인도적 지원이나 행사는 천안함 사건의 진전 여부와는 상관없게 된다. 북한측이 천안함 도발의 시인·사과를 요구하는 우리측의 요구를 계속 묵살하더라도 남북간의 교착상태 해소 노력은 시동이 걸렸음을 의미한다. 정부는 천안함 출구 전략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지만 모양새는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 미국 국무부도 6자회담 재개 분위기 조성을 위한 남북간의 화해 제스처를 긍정 평가하고 있다.
사실 소중한 44명의 목숨을 앗아간 천인공노할 천안함 어뢰 피격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지금이다. 더구나 북한은 이에대해 사과 한마디 없이 '남한의 조작극'이라며 여전히 발뺌을 하고 있다. 북한의 사과도 받아내지 못한 시점에서 북한을 지원하는 데 대해 아직 시기상조 아니냐는 국민정서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유엔개발계획(UNDP)에 따르면 북한 취약계층의 60%가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특히 지난 8월말 집중호우로 평안북도 신의주 일대에서만 1만5천가구가 물에 잠기고 6만4천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수해를 복구할 능력도, 이재민에게 전달할 구호물품도 없는 것이 북한의 현실이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한국적십자의 북한 지원 결정은 인도적 차원에서 잘한 판단으로 여겨진다. 민간주체의 지원으로서 우리 정부의 대북제재 방침을 크게 흠집낼 행보가 아닌데다 굶주림에 시달리는 북한 주민들에게는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남북관계 개선의 뚜렷한 돌파구가 없는 상황에서 민간차원의 지원은 북한을 다시 대화의 장으로 끌어낼 수 있는 촉매제가 될 것으로 기대되는 점도 있다. 대북 수해복구 지원과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 실무접촉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남북간 긴장은 상당히 누그러질 것이다. 특히 이산가족 상봉 행사로 분위기가 호전되면 당국간 대화가 본격화할 가능성도 있다. 천안함의 만행을 덮고 가자는 것이 아니다. 대화와 교류 재개를 통해 북한의 조그마한 변화라도 이끌어내보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기회에 남북 모두가 확실하게 합의, 결정해야 할 게 있다. 바로 이산가족 상봉의 정례화 문제다. 그동안 이산가족 상봉은 매번 일정·규모·장소 등을 놓고 협상의 줄다리기 끝에 이뤄졌다. 그때마다 북측은 시혜를 베푸는 듯한 자세를 취했고, 남측은 쌀과 비료를 제공했다.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 경제난에다 수해까지 겹친 북으로선 남측의 식량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남측 역시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반도 긴장을 완화시킬 필요가 있다. 물론 이산가족 상봉이 남북관계 개선의 지렛대로 작용하는 것이 나쁠 까닭이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어떤 정치적 문제의 협상을 위한 전제조건이 되어선 안된다는 점이다. 남북관계 기상도에 따라 중단·재개를 되풀이하고 그때마다 협상하는 일회성 이벤트가 돼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이산가족 상봉은 남북이 합의한 일정표에 따라 흔들림없이 상시적으로 이뤄져야 마땅하다.
8월 말 현재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가 남쪽에서만 총 12만 8천129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4만 4천여 명이 사망했고 생존해 있는 8만 4천여 명도 70대가 넘는 고령이다. 지금까지의 '찔끔 상봉'식으로 한다면 수십 년이 걸린다. 대다수가 이산의 한을 품고 숨질 수밖에 없다. 남북은 그 어떤 현안보다 우선하는 정례화된 상봉 시스템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 이산상봉 등 인도적 차원의 교류가 남북관계 개선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관련기사 4 면 >

<전 유럽 한인대표신문 유로저널, ek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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