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맘때만 되면 교수신문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가 세간의 화제가 된다.
작년 ‘당동벌이(黨同伐異같은 무리와 패거리를 지어 다른 자들을 공격한다)’
에 이어 올해에는 ‘상화하택(上火下澤위에는 불, 아래는 물)’이 선정됐다.
주역의 63괘 중 하나인 이 단어는 물과 불처럼 서로 상극하여 이반하고 분열하는 현상
을 말한다.
이외에도 사회 지도층의 위선을 비꼰 양두구육(羊頭狗肉), 우리 사회에 난무하는 막말
의 성찬(?)을 빗댄 설망어검(舌芒於劍;혀는 칼보다 날카롭다), 상대의 허물 찾
기에 혈안인 세태를 반영한 취모멱자(吹毛覓疵;피부 털까지 뒤져 흠집을 찾는다
), 그리고 요란한 개혁 구호에 비해 성과는 없었음을 꼬집는 노이무공(勞而無功
;헛심만 쓰고 얻는 것이 없다) 등도 순위에 들었다.
돌이켜 보면 교수신문의 이 사자성어들은 오히려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재유럽 한인사
회까지도 포함되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무수한 말이 오고 갔지만 정작 실속은 없었던
독일 한인사회의 논란부터 하반기 들어 그리 순탄치 않았던 재영 한인회에 이르기까
지, 성장통인지 아니면 이권다툼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들이 쏟아져 나왔다. 더더군다
나 재외동포 사회는 사실상 자유로운 의사소통 공간이 무척 제한되어 있어 생산적인
논의가 만들어지기 어려운 구조도 그에 한 몫 거들기도 하였다.
상생과 화합이 사라지기는 국내 여러 분야에도 마찬가지 일 듯 싶다. 10년은 더 정권
을 쥐겠다고 호언장담하는 사람들이 뭐가 그리 급한지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관련된 법
안들을 ‘초읽기식’으로 밀어붙였다. 야당은 야당대로 일관성 없는 대응으로 국민들
의 혼란만을 더욱 가증시키곤 했다. 애당초 상생이니 통합이니를 들먹이지나 말든가…
.
아마 이런 카오스의 마지막은 황우석 교수의 사이언스 논문 논란이 절정일 듯 싶다.
한국 언론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났던 이 문제는 점점 의혹이 증폭되고 논란이
확대되어 언제 정리가 될 지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또 개똥녀를 비롯한 다양한 사회문제들에 대해 익명성을 바탕으로 한 가상공간에서 의
사소통이 그 어느 때보다도 두드러지기도 했다. 지하철 공간에서 벌어진 작은 사건이
증폭된 것도, ‘피디수첩’ 광고의 전면 퇴출과 진달래꽃 흩뿌리며 난자기증 서약 행
렬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이끌어 낸 것도 모두 네티즌 여론이었다. 어느새 새로운
권력이 창출된 것이다.
너무 큼직한 일들 때문에 잊혀져 가긴 했지만, 개정된 사학법에 대한 교육계의 거부감
이나 행정 수도 합헌 결정에 따른 논란, 정재계를 뒤흔들었던 ‘도청 사건’ 및 삼성
의 대선 불법 자금 수사 등 셀 수 없는 많은 부작용들이 한국 사회를 뒤흔들기도 하였
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현상들은 사실상 ‘연결고리 없는 세대교체’에 기인한다. 산업화
세대의 주축이던 지금의 50, 60대가 점차 주도권을 잃어가면서 ‘민주화 세대’ 혹은
‘정보화 세대’라 불리는 세대에게 그 자리를 내주게 되었으나, 산업화에서 민주화로
진행되는 과정에 이 두 시대를 연결시키는 고리를 만들지 못하였다. 연속이 아니라
단절적인 방식을 취했던 것이다.
과거와 현재가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공존할 수 있는 사회가 진정 발전하는 사회다.
역사가 과거로 회귀하지 않는 한,과거와 현재는 결코 경쟁하는 위치에 있을 수 없다.
현재라는 것도 내일이 되면 이미 과거가 된다는 것을 깨닫는 지혜가 필요하다.
결국 미래는 과거와 현재의 토대위에 구축돼야 건실한 것이다.
2005년은 한 과학자의 논문조작 사건으로 우울하게 끝을 맺고 있다. 우리 사회가 얼마
나 부실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일지 모른다. 옷깃을 여미며 각오를 새
로이 다져야 할 시점이다. 2006년은 "합리적 사고와 행동이 근간을 이루는 경제"를 중
요하게 여기며, 감성보다는 이성이 지배하는 환경이 조성되는 원년이 되길 기대한다.
더불어 새로 출범하는 재영 한인 사회 및 재유럽 한인 사회에서도 혼란했던 올 한 해
가 다시 안정을 되찾는 새해를 맞이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실제로 국민 개개인의 합리적 사고와 경제활동이 고도의 정치행위라는 인식을 대다수
국민이 갖고 있는 사회가 바로 선진국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수승화강(水乘火降
;물은 위로, 불은 아래로)’의 2006년이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