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20대에 문단에 등단해 세 권의 시집을 낸 시인으로 민속학과 미학을 강의를 하다런던에선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전하현 선생을 만나보았다. 한인신문의 칼럼 리스트로 지난 7년 간 글을 써오고 있는 전하현 선생은 미디어 강사로 영국학교에 출강할 뿐만 아니라 한국인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미술사 및 미디어 강의를 수년간 해오며 후학을 키우고 있다.
편집장/ 전에는 민속학과 미학 강의를 하다 미디어로 과목이 바뀌고 요즘 다시 미술사를 강의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특별한 까닭이 있습니까?
전하현/ 겉으로 드러난 과목은 바뀐 것 같은데 사실은 한 가지 입니다.
제가 민속학 강의를 했던 것은 한국인의 집단제례의식에 대한 논문과 동제를 조사하고 이에 대한 학계에 보고서를 낸 후였습니다. 1년 동안 전국 방방 곡곡을 조사하고 교수협의기관지에 그 보고서를 10개월간 각 도별로 발표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때 한국인의 집단제례의식을 연구한 것은 한국인의 미의식과 조형의식을 조사하기 위한
목적이었고 이것을 깊이 들어가 민속연구를 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고대나 중세인의 미의식을 조사하기 위해선 신화학이나 민속학, 그리고 역사학으로 더듬어 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미의식을 위한 통로로 결국 미술사에 접근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편집장/ 흥미 있는 말씀이군요. 미학강의도 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럼 미학과 미술사와 직접연관이 있는 겁니까?
전하현/ 당연하죠. 미학이란 19세기에 독립된 학문으로 정식적으로 분류되었습니다. 그러나 고대 철학자들의 아름다움에 대한 사유를 근원으로 하고 있지요. 당대의 미학사상을 모르면 사실상미술사는 껍데기만 더듬을 수 있을 뿐입니다.
편집장/ 미술은 드러난 양식이고 미학은 그 저변의 미의식과 사고를 집성한 것이라는 이야기로군요. 그럼 미술사와 미디어는 어떻게 연관이 되는 것입니까?
전하현/ 사실은 미술이 미디어 입니다. 대부분의 권력자들이 미술을 미디어로 이용했지요. 당연 미술을 통해 권력의 역사를 더듬을 수 있고 이에 대한 투쟁의 역사를 더듬을 수 있는 게지요. 최근에 구 소련정부나 중국 등 구 공산주의 체제에서 프로파간다로 사용하며 완벽한 미디어로 이용하고 역시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마찬가지였지요. 신석기 시대부터 40여 년 전까지 미술은 '수동적 미디어'로 이용되어 왔고 40여 년 전부터 미술은 미술 스스로가 '능동적 미디어'로 전환했습니다.
편집장/ 새로운 시각이라 선뜻 머리에 잡히지가 않는 군요. 그러니까 선생님의 의견은 미술을 미디어의 하나로 보고 있다는 말씀이군요.
전하현/ 당연하죠. 30여 년 전 교과서적 관념에선 미디어라면 언론을 주로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어 사람들은 그렇게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지만 오늘 날의 미디어라는 개념은 '생각과 마음,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모든 중간 매체'를 미디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편집장/ 40년 전까지 미술을 '수능동적 미디어'라고 규정하고 40년 이후를 '능동적 미디어'라고 말씀하시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전하현/ 사실은 꼭 40년이라고 못을 밖을 수는 없을 겁니다. 그 때가 현대미술이 적극적으로 '소통'과 '의미'라는 주제로 전환되는 시점으로 개념미술이 나올 즈음이기 때문입니다.
편집장/ 일반인들이 대부분 미술, 그러면 예쁜 것이나 아름답게 어떤 것을 표현한 것, 그리고 미술사는 그것을 시대적으로 엮어 놓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오늘 말씀하시는 것은 그게 아닌 것 같군요.
전하현/ 그렇습니다. 미술사는 단지 미술작품을 연대별로 특징과 미를 다룬 것이 아니라
삶의 역사이고, 사물에 대한 인식의 역사였으며, 깨달음과 통찰의 역사이었고 인권의 역사이며 또 자유의 역사이었으며 온전한 아름다움 회복을 위한 역사였기 때문입니다.
편집장/ 그 동안 학계에 제시되지 않았던 새로운 관점인 것 같군요. 지금 말씀하시는 것 중에서 미술사가 삶의 역사라는 것은 이해가 됩니다. 선사시대부터 모든 미술품에 그 시대의 삶이 담겨 있으니까요. 또 미술이 어떤 도구성에서 인상파 이후 아름다움 그 자체를 표현하기 시작했으니 온전한 아름다움을 회복하기 위한 역사라는 것도 이해를 할 것 같습니다만
미술사가 어떻게 사물에 대한 인식이 표현된 역사라고 주장하고 깨달음과 통찰이나 자유를 기록한 역사라고 주장하시는지요?
전하현/ 미술사가 사물에 대한 인식이 표현된 그 역사라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 제가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미술사 그 자체가 말을 해 주는 사실입니다. (웃음)
편집장/ 하하하, 그래 미술이 뭐라고 이야기를 해줍니까?
전하현/ 인류 깨달음과 통찰의 역사라고 주장하는 것도 사실 제가 아니라 미술 그 자체입니다. 자유와 인권의 역사도 마찬가지 입니다. 여기서 다 말해주면 누가 강의를 들으러 오겠습니까?
예를 들어 보이는 것과 실제의 모습의 다른 과정으로 그리스 시대에 단축 법이 미술에 표현이 되기 시작했고 다시 초기 르네상스 시대에 원근법이 미술에서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미술에 수학의 원리가 도입이 되고 해부학의 결과가 인체의 묘사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사물을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의 역사가 미술사 전체에 나타나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요. 이렇게 미술사는 사람들이 자연과 사회 인간관계에 대한 그 깨달음과 통찰을 표현한 과정의 역사이었고, 미술사는 인권의 발달과 투쟁을 표현한 역사이며, 역시 미술사는 인류의 자유를 기록한 자유의 역사였지요.
편집장/ 오늘 통합적인 미술사의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강의가 현대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요.
전하현/ 첫째는 미술사는 이제 교양을 높이는 취미적인 학문이 아니라 21세기에는 삶의 중요한 도구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편집장/ 삶의 도구라면 이제 누구나 다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전하현/ 누구나 다 해야 할 필요는 없겠지요. 창의성이나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직종은 물론 이지만 사회 지도자나 각 부분에서 고 소득을 올리려는 기업인 경제인들은 반드시 해야 할 것 입니다. 선진국 수준의 경제에서 모든 상품의 부가가치를 제일 올리는 것이 편집장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편집장/ 그거야 디자인이 아니겠습니까. 기능이나 재료 품질 보다도 디자인은 이제 21세기의 모든 상품의 가격 비중이 제일 높게 책정되는 시대로 왔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실크 넥타이의 가격은 20만원에서 천 원짜리까지가 있습니다. 이렇게 200배 가량 금액이 차이가 나는 것은 품질이 아니라 바로 디자인의 가치와 그것으로 만들어진 브랜드 값입니다.
원가는 500원 되겠지만 나머지 값은 디자인, 즉 미의식의 값이 아닙니까? 가방도 마찬가지이지요. 200만 원짜리 가방의 원가는 사실상 2천원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물론 브랜드 값이지만 이 브랜드 값을 만든 것이 바로 디자인이고 디자인이 미의식이죠.
전하현/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젠 미적 감각, 즉 감성이 발달하지 않으면 각 부분에서 리더로선 결코 발을 붙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경제가 발전되지 못하는 까닭도 바로 창의성과 상상력이 사회에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편집장/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 80년대 말 중국과 한국은 인권비가 13대 1 정도였습니다. 지금은 6대 1정도 된다고 하더군요. 이렇게 격차가 좁혀질 때까지 중국은 우리를 바짝 뒤쫓아오고 있는데 한국은 여전히 제 자리 걸음입니다. 이 같은 원인이 바로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선 고부가가치 상품을 생산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디자인 등을 발전시켜야 하는데…..우리 국민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은 여전히 비슷한 수준에 머물러 있지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는 반드시 공부를 해야겠지요. 그런데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이런 강의를 들을 수 있습니까?
전하현/ 강의는 전문가 반부터 초등생에게도 하고 있습니다.
편집장/ 초등생에게 미술사는 너무 빠른 것 아닙니까?
전하현/ 미술사를 하는 과정 중에 세계사가 반드시 들어갑니다. 그리고 세계인의 미의식을 더듬게 되니 자연 미술사로 세계사와 논술을 위한 다양한 시각과 관점 가치관을 저절로 공부하게 되지요. 또 그냥 이론을 배우며 관념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유물과 미술품으로 접근을 하고 그 증거물의 비교를 통해서 인식을 시켜주니 아주 확실하게 세계사와 논리 창의력 상상력을 키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편집장/ 지금 런던에서만 강의하고 있는데 재영 한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뉴몰든에서 강좌를 개설할 계획은 없는지요? 저도 듣고 싶습니다.
전하현/ 글쎄요. 수요만 있다면 굳이 마다 할 이유는 없지요.^^
편집장/ 인터뷰에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인터뷰 후기
타향살이의 팍팍함을 달래기 위한 방편으로 사람들은 각자의 취향에 따라 반응하게 된다. 개인의 기호 (嗜好)에 대해 참견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의 기회가 사회에 영향을 미칠 때에는 집고 넘어가야 당연하다. 이민 사회의 가장 큰 문제가 초기 이민자들과 이민 2세들간의 문화가 단절된다는 것이다. 힘든 삶이지만 가끔은 자신가 후세를 위한 문화에 대해 자리를 마련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한인신문은 조만간 전하현 선생을 모시고 공개 특강을 하려 한다. 독자제위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 드린다.
<한인신문 편집장 박운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