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푸르트 근처 에쉬보른에 위치한 한식 및 일식 음식점 "물방울". 프랑스의 거리 까페를 연상시키는 운치있는 정원을 지나 식당문을 열고 들어서면, 잠깐 어느 아담한 갤러리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 만큼 크고 작은 그림들이 벽에 고풍스럽게 걸려있다. 이 그림들의 대부분은 주인인 이혜경 사장 자신의 작품들이다.
마치 식당을 오래 경영해 본 경험이 있는 주인이 만들어 놓은 듯한 분위기이지만 이혜경 사장은 3년 전에 처음으로 식당을 시작하였고 식당 위에 있는 아파트호텔은 지난 해 9월에 함께 경영하기 시작하였다. 얼마되지 않은 짧은 기간이지만 „화학조미료를 쓰지 않고 건강한 음식을 만드는 식당 “ „유럽 최고의 아파트“ 라는 고객들의 신뢰와 인정 속에서 "물방울" 은 점점 커나가고 있다.
이혜경 사장을 만나 그녀가 독일에서 식당을 시작하게 된 인생이야기와 삶의 철학을 들어보았다.
유로저널 : 미술을 전공하였다고 들었는데 독일에 오시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이혜경: 순수미술을 좋아하였지만 어머니의 반대로 공예학과에 진학하여 도자기 제작을 전공하였지요. 대학졸업 후 십년 이상 화실을 운영하면서 초.중.고등학생들과 성인들에게 미술지도를 하였어요. 결혼 후에는 출장 미술지도와 틈나는 대로 광주의 도자기작업장을 드나들며 취미생활을 즐겼지요
2000년에 독일에서 몇 번 작품 전시회를 가지면서 유럽에서 다시 새롭게 공부를 시작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절실해졌어요. 그래서 Wiesbaden시에 있는 Frei Kunstschule 의 초청장을 받고 2001년 9월에 독일에 오게 된 것이 동기가 될 수 있지요. 그 후 2003년에 Art & Dream GmbH 라는 회사를 만들어 한국 작가들의 그림을 독일에서 전시, 기획하며 한국 미술을 홍보하였고 그림을 판매하는 사업을 하였어요.
유로저널 : 식당 이름이 "물방울" 인데 어떠한 뜻이 있는지요? 식당 이름으로는 좀 특이한 이름으로 들립니다.
이혜경: 네. 손님들도 가끔 물어보시곤 합니다. 그럴 때 저는 „돈을 많이 벌어 물방울 다이아몬드를 사려구요.“ 하며 유머로 대답한 적도 있지만 실은 식당을 오픈할 당시 저에게 어쩔 수 없이 전혀 다른 사업에 도전할 수 밖에 없었던 일이 생겼습니다. 제가 독일에서 다시 새롭게 태어나지 않는다면 저는 이대로 모든 저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뒤로 하고 다시 한국으로 가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어요. 피나는 각오와 결심, 희망, 용기를 갖지 않으면 안되었지요.
우리 인간과 모든 생물은 결국 물이 없으면 태어날 수도 없고 살 수도 없지요. 어머니의 뱃속, 양수가 터져 나오면서 새로운 탄생으로 이어지는 물방울의 깊은 의미가 마음에 절실히 와 닿았어요. 이름을 정하고 보니 "물-방-울" 이라는 세 글자가 제게 편안함을 주고 글씨자체가 아주 예뻐보였습니다. 그리고 일어로는 "Shizuku" 라고 합니다. 남편이 일본으로 주재원으로 발령되어 가족 모두가 동경에 살았을 때에 받았던 주변 일본분들의 은혜에 대한 보답을 꼭 해야 한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벌써 15년정도 지난 일이지만 언젠가는 그분들을 초대하고 보답하는 자리를 갖고자 하는 뜻도 조금은 포함되었지요.
유로저널 : 음식에 화학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는다고 들었는데요.
이혜경: 제가 아주 어렸을 적에 어머니께서 몸이 약하고 위가 안 좋으셨기 때문에 화학조미료는 전혀 쓰질 않았어요. 그리고 결혼 후에는 남편이 간이 좋지 않았기에 언제나 신선하고 건강한 음식을 만드느라 더 더욱 화학조미료를 쓰지 않았구요. 제가 이미 어렸을 적부터 화학조미료 먹는 것이 습관이 되질 않다보니 만일 화학조미료가 들어 있는 것을 모르고 음식을 먹게 되면 위장장애, 두통, 어지러움증까지 동반되어 며칠 고생을 합니다. 가족의 건강, 손님들의 건강을 생각하는 차원에서 저희 식당에서도 화학조미료를 쓰지않고 있어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돌발적인 사고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건강수칙을 지켜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유로저널 : 그럼 어떻게 음식 맛을 내시는지요?
이혜경: 저희 시어머니가 경북 상주에 계시면서 직접 재배하신 고춧가루, 무우말랭이, 각종 건어물 등을 계속 보내주십니다. 또한 장기 출장오신 분들 중에는 거제도가 집이라서 손으로 직접 고른 아주 싱싱하고 껍질이 반짝거리는 멸치를 가져다 주십니다. 거제산 멸치, 다시마, 마른새우 등을 갈아서 음식의 맛을 냅니다. 이런 순수함과 정성이 묻어 나오는 재료로 정성을 다해 맛을 낸다면 식당음식이 아니라 우리의 어머니나 할머니가 만들어 주시는 맛과 비슷하지 않을까요? 물론 풍부한 경험이 있는 요리사가 음식을 만들고 있지만요.
유로저널 : "물방울" 식당의 특별메뉴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이혜경: 좀 특별한 것이 있다면 랍스터 코스메뉴, Black Teiger 왕새우, 숯불그릴구이 등 다양한 것이 있습니다. 외국인들에게는 한정식코스메뉴가 인기랍니다. 작은 반찬접시에 오색찬란하게 펼쳐져 있는 반찬을 즐겁게 드시면서 고춧가루가 든 매운 음식이라도 남김없이 먹으면서 한국음식문화를 이해하고 느끼려 하는 외국인들을 대할 때 즐겁기만 합니다. 독일내에 한국음식문화시식 홍보활동을 위해 열고 있는 크고 작은 행사인 출장파티서비스 (Cateringservice)에는 쇠불고기, 돼지불고기, 한국식으로 양념한 숯불구이가 꼭 등장하는 메뉴입니다. 때로는 왕새우, 생 고등어, 오징어를 굽기도 하지요.
유로저널: 아파트 호텔 민박사업은 언제 시작하셨습니까?
이혜경: 작년 9월에 식당 위에 있는 아파트를 인수하였어요. 한국의 콘도형으로 꾸며놓아서 특히 장기 출장오신 분들이 내 집처럼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외국에 출장나오신 분들이 집처럼 편안히 머무시다 가도록 해드릴까 가족과 같게 느껴지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지요. 그런 노력이 손님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었던지 유럽 각 나라를 다녀 오셨던 분들로부터 „유럽에서 물방울이 최고“ 라는 칭찬을 들었을 때에는 어린아이처럼 기쁘곤 하였어요.
유로저널: 아파트 방은 몇 개나 있으며 구조는 어떻습니까?
이혜경: 스튜디오형과 스위트형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모두 12개 입니다. 스위트형은 거실과 방이 따로 있어서 공간을 넓게 쓰시고 싶은 분이나 가족여행, 신혼여행, 오피스텔로 사용하실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이지요. 현재 1-3개월 혹은 2년이상 장기투숙하시는 손님들이 묵고 계십니다. 방에는 다림질을 할 수 있는 다림대와 음식을 직접 해 먹을 수 있는 부엌과 냉장고, 욕실 등 원하는대로 선택하실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습니다.
유로저널: 식당과 아파트 민박사업을 하시면서 보람을 느끼시는 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이혜경 : 이전에 한국에서 살 때 저는 가족, 가까운 친구들, 제게 미술지도받는 학생들 그리고 학부형들 외에는 따로 대인관계가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180도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지요. 독일에 출장오신 낯선 분들을 가족이라고 여기면서 최선의 서비스로 "물방울"을 알리고 있습니다. 손님들께 실망을 안겨드리지 않기 위해 매사에 소홀하지 않도록 출장기간동안 어렵게 느껴지는 일들을 위한 문제해결 등... 늘 뭔가를 생각하고 준비해야 하는 일이지만 손님들이 헤어지면서 „더 확장하십시오“, „물방울이 유럽에서 최고입니다“, „돈 많이 버십시요“ 하며 격려해주실 때에는 이 사업을 하는 데 큰 보람을 느끼면서 이 분들이야말로 진정한 "물방울" 의 후원자들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유로저널: 전혀 새로운 식당업을 시작하셨는데 어떠한 어려움을 겪으셨는지요?
이혜경 : 예상했던 것보다 독일에서의 생활은 제가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가까운 주변의 고마운 분들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저는 많은 스트레스로 인해 갑작스럽게 눈에 트롬보제 (혈전) 가 생겼어요. 그로 인해 교통사고를 낸 적도 몇번 있었지요. 왼쪽 눈이 안 보이고 그저 뿌옇게만 보였었는데 그 당시 제 자신은 그것조차 몰랐답니다.
치료하는데 3년이란 시간이 걸렸고 제대로 눈이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다시 식당을 오픈할 때쯤 서서히 얼굴이 망가지고 있었어요. 양쪽 눈의 통증과 열기 등으로 얼굴이 부어 오르고 눈과 코가 비뚤어지기 시작했지요. 병원입원결과, 홍반성 루푸스라는 진단을 받았어요. 얼굴이 벌겋게 부어오르고 눈이 따가와서 하루에도 안약을 20개 이상 사용하지 않으면 안되었지요. 바르는 약 밖에 없었고 그저 쉬어야 했지만 식당개업한 지 얼마되지 않았기에 쉰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어요. 어느 때는 음식을 식탁에 갖다주고 돌아서다가 손님의 발을 밟기도 하여 „사장이 술에 취해 음식을 나른다“ 는 비방을 듣기도 했습니다.
독일에 와서 홀로 서기를 배우는데 아주 톡톡한 시련과 많은 수업료를 낸 셈이었지만, 언젠가는 주변에 저를 아껴주는 사람들의 기대에 어긋남없이 그리고 우리 아이들 (오세훈23세, 오세영22세) 에게는 자랑스러운 엄마로 존재한다면 저는 이것으로 만족합니다. 이제는 어떤 더 큰 시련이 오더라도 삶의 용기를 갖고 부딪혀 나갈 수 있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어요.
유로저널: 많은 어려움을 겪어오셨는데 고통과 슬픔 가운데 있는 분들에게 주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이혜경: 가끔 병상에 있던 남편이 하던 말이 생각납니다. 아이들 아빠는 인간의 생명이 길던 짧던 세월이 지나고 보면 인간 모두는 짧은 인생으로 삶을 마감한다고 말하며 „우리가 내일 죽는다고 생각하면 다툴 것도, 미워할 것도 없다. 설령 아주 용서하지 못할 일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 하루를 맞는 마음이 이렇다면 우리는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 라고 하면서 저에게 삶을 대담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지요.
운명적으로 부딪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오더라도 그 고통에 빠져들고 괴로워만 한다면 자신은 스스로에게 패자가 되고 맙니다. 그 고통가운데에서 절대 좌절하지 말고 슬픔을 이겨내는 지혜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그리고 "아내" 라는 자리가 소중하지만 "남편" 의 빈 자리가 더 큰 것 같아요. 요즘 한국의 이혼율이 점점 늘어가고 있는데 아내의 자리, 남편의 자리를 굳게 지키면서 스스로의 책임을 다한다면 화목한 가정이 저절로 이루어지리라 생각합니다.
그녀는 남편이 대한항공 국제업무실에 근무하였을 때 주재원으로 일본 동경에서 20개월 동안 가족이 함께 살았다고 말하였다. 그 당시에 남편에게 담석증, 간경화 초기증세가 나타나서 주재원생활을 서둘러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어 일본에서 짧은 생활을 보냈지만, 주변사람들로부터 희망과 용기를 갖게 되었고, 독일에서는 가깝게 지내는 교민 몇분들이 힘들 때마다 좌절하지 않도록 많은 격려를 하여 주었다고 한다. 시어머님과 시댁식구들 또한 맏며느리로서 독일에서 두 자녀를 키우며 열심히 살고 있는 모습에 대견스러워 하고 있다.
그녀는 좀 더 사업의 여유가 생기면 자신에게 도움을 주었던 일본인들과 시어머니를 독일에 초청하여 유럽 구경을 시켜주고 싶다고 말한다. 이혜경 사장과의 오랜 대화에서 모든 탁한 것을 깨끗케 하는 맑고 강한 이미지인 "물방울" 을 연상시킬 수 있었다. (홈페이지 주소 www.shizuku.de)
(유로저널 독일지사)
유한나 기자 hanna2115@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