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저널: 너무 막연한 질문입니다만, 주로 어떤 분야의 또 어떤 작업을 하시는지요?
송바다: 그렇죠, 너무 포괄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만, 유사한 질문을 받을 경우 저는 보통 “현대조각(Contemporary Sculpture)을 합니다”라고 대답합니다. ‘현대조각’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에 대한 대답은 책 한 권 분량의 이야기가 필요할 것 같고요. (웃음) 좀더 구체적으로 제가 하고 있는 작업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런던의 아주 다양한 현대미술을 배경으로 개념미술, 설치미술, 그리고 표현이나 추상조각을 하면서 우리 한국 문화전통의 얼을 작품 속에 끌어들이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20세기에는 세상이 획득한 복잡함 만큼이나 조각의 역사 또한 다양하게 변해왔습니다. 1.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미술가들은 근대 미술세계에서의 표현양식만으로는 한 마디로 성에 차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 조각의 장르에 대한 영역 확장은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회화와 조각간의 경계가 불분명해지고, 무엇이 예술이냐의 근원적인 물음에 끊임없이 도전해온 그런 20세기였고, 예술가(미술가)들은 자신의 표현방식에 제한을 두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1960,70년대에 유행했던 개념미술(Conceptual Art)이고, 그게 지금까지 순수미술(Fine Art)의 모든 분야, 특히 현대조각이 지금처럼 존재하도록 하는 과정에서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또한, 과학기술의 발달의 가속화는 대중을 예술세계에 끌어들이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고, 예술가들의 표현양식도 그에 대응하여 발 빠르게 변화해 왔습니다. 개념미술의 한 예로, 2001년에 열린 터너 프라이즈(Turner Prize) 전시회에서 마틴 크리드(Martin Creed)는 그에게 주어진 전시공간을 완벽하게 비우고는 전기 불빛만 켰다 꺼졌다 하는 작품(Work No.227)으로 대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엊그제 테이트 모던(Tate Morden) 에서 한 여작가(Andrea Fraser)가 미술 수집가에게 엄청난 화대(?)를 받고 침대에서 전라로 성관계를 나누는 비디오 작품을 봤습니다. 적어도 런던에선 지금 이런 작품이 사회적으로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만큼 현대미술의 대중화(?)가 진행되었다고 봐야죠.
유로저널: 다양한 미술 분야 중에서도 조각만의 매력이 있다면?
송바다: 최근에 찾아낸 느낌입니다만, “저는 조각가입니다”라는 말을 자신있게 하고있는 제 자신에 놀라고, 그 짧막한 문장이 주는 저의 존재 확인에 일종의 책임감이 느껴지더군요. 요즘 미술의 경향에서 각각의 분야를 구분하는 것처럼 재미없는 일도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아까도 이야기 했듯이 저도 아주 다양한 매체에 손을 대고 있거든요. 철을 이용한 작품이나 청동 카스팅, 그리고 상당수의 작품이 종이를 이용한 오브제나 설치미술이죠. 그리고, 간혹 이미지 작업인 에칭이나 사진, 퍼포먼스 작품도 꽤 됩니다. 요즘은 회화 작업을 많이 하고 있기도 합니다. 전통적으로 예술가라고 하면 이 모든 것들을 다룰 줄 알아야 하고, 사실 그 모든 것들이 각각의 다른 분야로서 다루어지는 것보다 전반적인 미술로서 통합해서 다루어져야 하죠. 그래서, 저를 조각가라고 규정하기보다 예술가라고 해야겠지요. 예술가의 언어를 가지고 조각을 한다고 하면 보다 적합할까요? 이 곳 런던에서 대부분의 예술대학에서도 주로 종합적인 순수예술(Fine Art)과를 운영하고 있고, 그렇지 않은 학교에서도 서로 다른 분야의 수업과정을 일정기간 동안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학생들에게 종용하는 추세입니다. 조각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작품을 만들 때 실질적인 공간을 염두하면서 물질의 중력같은 것을 다룬다는 점입니다. 반면에 화가들은 그림을 그리는 동안 마치 실질적으로 없는 공간을 있는 것처럼 다루죠. 설치미술은 물론이고 오브제(object)로서의 조각을 만들려면 그것이 실제의 공간에서 어떠한 형태로 보여져야 하는지, 그래서 전시공간과 오브제와의 관계 또한 한 작품의 일부처럼 다루어야 합니다.
유로저널: 조각이 특별히 어려운 점이 있다면?
송바다: 최근에 이미지 작업을 많이 하고 있는데 이런 것들은 다루기가 보통 ‘간편하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설치미술이나 오브제(object) 만들기는 제 작품의 경우에 있어서 아주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합니다. 여기에는 경제적인 것까지 포함해서, 단지 작품을 만들고 마무리하는 과정까지의 힘과 에너지를 빼고서도, 작품을 운반하고, 설치하고 하는데에도 누군가 다른 사람의 절대적인 도움이 필요하기도 하고요. 작품의 크기나 무게, 그리고 운반에 따르는 다루기 조심스러운 것들까지, 이런 것들때문에 때때로 왠만한 전시회 같은 것은 거절하기도 하죠. 약 20여 명의 같이 공부한 반 친구들 중에 지금까지 조각을 계속하고 있는 친구들이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인 것을 보면 조각가로서의 길이 전혀 수월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유로저널: 본인의 작품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 혹은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면?
송바다: 주로 한 작품에 쏟는 열정과 기간이 길게는 해를 넘길 때도 있기 때문에 개개의 작품에 대한 애정이 모두 깊습니다. 그러나, 역시 지금 만들고 있는 최근의 작품들이 가장 중요하고, 또 그 기대감도 크죠. 약 3년 전에 시작해서 아직까지 진행 중인 작품이 하나 있는데, 지금 저의 작업의 개념을 이끄는 절대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특히 중요합니다. 콘플레이크(Cornflake)라고 하는 작품인데, 톱밥을 이용해서 설치미술, 개념미술 그리고 오브제와 사진을 혼합한 작품입니다.
유로저널: 그 동안 주로 어떤 활동들을 해오셨는지요?
송바다: 그동안 꽤 다양한 활동에 손을 댄 것 같습니다. 공동체 예술(Community Art)이나 벽화 만들기, 잡지 만들기 등. 그리고, 약 3년에 걸쳐 영국의 아트 카운슬(Arts Council)에서 지원를 받은 영국 내의 투어 전시회를 했고, 런던의 여러 갤러리에서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주로 작업실에서의 작품 만들기와 내년에 있을 전시회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유로저널: 본인이 생각하기에 좋은 조각가가 되기 위한 조건은?
송바다: 아주 색다른 질문이군요, 그 동안 한 번도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없었는데. 글쎄요, 일단 인내심과 끈질긴 근성 반드시 필요합니다. 시작한 작업이 어쩌다가 엉망이 되어 버리면 쉽게 포기하는 그런 성격은 곤란하죠. 그리고, 사물이나 혹은 한 사건을 다루는데 있어서 생각해볼 수 있는 모든 각도를 고려할 줄 아는 깊이 있는 성격에 대범함이 가미되면 더욱 좋을 것 같고요.
유로저널: 가장 존경하는 예술가는?
송바다: ‘아는 만큼 세상이 보이고 또 참되게 즐긴다’라는 누군가의 귀띔은 정말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해를 더할수록, 예술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어쩌면 그렇게 존경할만한 예술가들을 많이 보게 되는지 모르겠어요. 때때로 그날 낮에 본 작품의 신비에서 헤어나지 못해서 마치 사랑에 빠진 사람을 되뇌이듯이 밤에 잠을 못 이룰 때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 오랫동안 끈임없이 존경해온 작가로는 현존하는 일본인이며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는 개념 예술가 온 카와라(On Kawara)를 꼽고 싶군요. 회화작업을 주로 했던 그는 1960년대 중반 이전에 만든 전통적 방식의 그림들을 모두 없애버리고, 작가의 의도와 개념이 그의 실제적인 오브제(object) 보다 더 많은 것을 전해주는 그런 작품들을 만들기 시작 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그가 60년대 중반부터 지금 현재까지 꾸준히 매일 그리고 있는 ‘date painting’(the Today series)라는 작품입니다. 만약 그날 하루에 한 작품을 완성하지 못할 경우에는 그 자리에서 하던 작업을 없애 버린다고 합니다. 이 작품을 통해 카라와는 자신의 삶과 작품을 동일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것이 없을 때에도 여전히 그림을 그릴 수 있음을 보여준 하나의 예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온 카와라는 절대 인터뷰를 하지 않을 뿐더러,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의 작품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요즘처럼 예술가가 말을 많이 하고 온갖 신문, 잡지, 방송에 얼굴을 들이미는 세상에 결코 쉽지 않은 일이죠. 저처럼 아주 작은 사람마저 지금 이렇게 수다를 떨고 있지 않습니까? (웃음) 무엇이 예술인지, 예술가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그의 작품 세계와 개인적인 행동을 통해 알려주는 작가죠.
유로저널: 본인이 생각하는 가장 위대한 조각(예술) 작품은? 그 이유는?
송바다: 지난 세기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조각의 위대함을 따지기에는 제 역량에 한계가 있을 듯 싶어요. 이런 관점으로 저에게 있어서 가장 위대한 예술작품들은 두 말할 나위 없이 마셸 뒤샹(Marcel Duchamp)의 작품들이죠. 뒤샹은 예술가(미술가)의 작품 그 자체 보다 예술가의 역할에 대해 강조하고, 또 ‘무엇이 오브제 (Object)인가?’라는 질문을 조각과 연결해서 묻는 작가였습니다. 그의 유명한 ‘샘(Fountain, 1917)’ 작품을 빼놓고는 20세기 미술의 역사를 이야기할 수 없을 만큼 매우 중요한 작품입니다. 뒤샹은 이미 ‘일상의 생활에서 사용되는 제품(ready-made)’인 소변기에 작품의 제목을 달고, 거기에 서명을 함으로써 당시 예술계에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미술계에서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그에 대한 연구는 가히 천문학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로저널: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 꿈이 있다면?
송바다: 그 동안 엄청나게 분투하는 시간이었어요. 최근에야 그 힘들었던 시절에 대한 응답이 제 안에 일상으로 자리잡아 때때로 그것을 즐기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단지 작품을 위한 작업이 아닌, 일상의 즐거움을 위한 그런 예술가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유로저널: 오늘 너무나 흥미롭고 유익한 이야기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송바다 님의 이야기를 통해 일반 독자분들에게 조각, 그리고 예술의 세계가 보다 친근하게 다가설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작품활동 많이 부탁드립니다.
[작품소개]
1) Untitled (Button), Installation view, 358 x 568 cm, sewed buttons on dyed canvas & net curtain.
2) To Be or Not To Be (detail with self-portrait), bronze casting, diameter :50cm (overall size: 207 x 157 x 50 cm).
3) Wig Piece (detail, self-portrait), 21 x 29.5 cm (1/30), photographs on newsprint.
4) Untitled, object & performance, digital print, size variable, a skein of red cotton thread(woven).
유로저널 전성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