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같이 흘러간 젊음 지난했던 45년 세월 백발의 파독광부들
파독 광부 45주년 기념행사 레버쿠젠 시민회관에서 열려
지난 24일(토) 저녁 독일 각지에 흩어져 살던 400 여명의 재독한인글뤽아우프회 (회장 성규환) 회원과 가족 그리고 동포들이 중부독일 레버쿠젠 시민회관에 모여 뜻 깊은 파독광부 45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보릿고개로 모두가 힘들었던 60년대 조국 대한민국. 견딜 수 없는 가난을 극복하고자 이역만리 낯선 땅을 찾아 든 20대의 대한청년들이 다시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그러나 이제 세월은 45년이나 덧없이 흘러 혈기왕성했던 젊은 옛 모습은 간 데 없고 모두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회한과 그리움, 지난 날의 영욕을 고스란히 마음에 담고 거의 반세기를 이국 땅에서 살아 온 파독광부들. 이들은 1963년 12월27일 제 1차, 1진 247명이 독일땅을 밟은 것을 시작으로 1977년까지 15년 동안 모두 8천명이 파독. 지금은 대부분 귀국하거나 제 3국으로 이민을 떠났고 현재 독일에 남아있는 광산근로자 출신은 1.200 여명에 이른다. 이들 파독광부들은 70% 이상이 회갑을 넘긴 노년기에 접어들었다.
성규환회장은 이날 기념사에서 45년 세월을 지내오면서 광산근로자들 모두가 한 가족이 된 만큼 남은 여생을 더욱 가까운 형제처럼 살아가자고 격려하면서 이미 타계한 120 여명의 동료들과 그 유족들에게 심심한 감사와 위로를 전했다. 성회장은 특히 한국의 새 정부를 향해서 연로한 파독광부들의 여생과 복지를 위해 국가차원에서 작은 배려라도 해 주기를 바란다는 간절한 소망을 밝혔다.
축사에 나선 손선홍총영사도 축하와 기쁨을 전하면서 조국이 어려웠던 시절 광산근로자들의 굵은 땀방울이 있었기에 조국이 마침내 가난을 극복하고 지금의 12위 경제대국으로 자랄 수 있었다며 이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손총영사는 이어서 파독광부 6명에게 노동부장관의 표창장과 부상을 전달했다. 영예의 수상자들은 김갑호, 이종하, 정영호, 조상섭, 이봉일, 최수남. 이들 중 베를린 동포 이종하씨는 한일이 있다면 글뤽아우프를 위해 남보다 좀 더 신경을 쓴 것 밖에 없는데 아마도 과거에 지하 막장에서 고생한 것을 생각해 상을 준 것 같다며 수상소감을 말했다.
글뤽아우프 주최측은 또한 역대 회장들에게는 노고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그리고 타계한 회원들 가족에게는 우정의 표시로 쌀 한 포씩을 전달해 수 십년 이어 오는 끈끈한 동료애를 나누었다.
이날 참석한 글뤽아우프 회원 중 최고령자인 이상호(77, 두이스부르크거주)씨는 3년간의 광산근무를 마치고 귀국할 것으로 알고 독일땅을 밟은 것이 이처럼 45년을 살게 될 줄은 몰랐다며 소회가 깊다고 말했다. 이상호씨는 1973년 글뤽아우프 회장으로 재직할 당시 <파독광부 30년사>를 편찬한 바 있다.
한국최초의 광부 유한석(72, 캠프 린트포트 거주)씨는 60년대 국내 상황과 독일 광산생활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는 1963년 당시 대구에 거주하며 농촌진흥청 (5급공무원)에 근무하던 중 어느날 대구일보에 파독광부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의 당시 월급은 3000원, 독일 광산에서 일하면 한국의 장관급 월급보다도 많다는 계산이 나오자 마음에 결심을 했다. 제 1진으로 파독광부팀에 선발되는 행운을 따내 마침내 광산근무가 시작된 한국인들은 그러나 신체검사 결과 대부분 간디스토마 보균자로 판명나 지하막장에 내려갈 수가 없었다. 본국으로 귀국조치 될 수도 있는 위기 속에 마침 영국에서 보내온 약을 복용하고서야 병을 퇴치할 수 있었다고 한다.
가난한 나라 기생충이 만연하던 후진국민의 가슴아픈 이야기였다. 한편으로는 고향에 두고온 사랑하는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제1진이 성공하지 못하면 더이상 파독광부는 없을 것이라는 선구적 의식에서 이들은 40도가 넘는 수천 미터 지하막장 탄가루 먹어가며 힘겹고 고된 막노동을 이겨내었던 것이다.
또한 이날 행사장에는 뜻밖의 손님이 방문해 더욱 뜻깊은 자리가 됐다. 다름아니라 지난 1970년 파독됐다가 77년 귀국한 후 다시 호주로 이민갔던 지의상씨 내외가 행사 소식을 듣고 31년만에 옛 동료들을 찾아온 것. 지의상씨와 부인 김춘임씨(1971년 파독)는 광부와 간호사로 만나 결혼한 전형적인 독일동포였다. 지씨는 자신의 젊음이 묻어나는 이곳 독일땅을 밟으며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공식행사가 끝나고 저녁만찬이 이어졌고 2부순서로 여흥시간이 준비되어 있었다. 섹스폰연주자 송현섭, 가수 이수정, 채송화 그리고 MC 정해철 등 한국에서 초청된 연예인들이 흥을 돋구는 가운데 춤과 노래가 이어졌고 한국왕복 항공권 등 다양한 상품이 출품된 가운데 경품추첨도 진행되자 참석자들은 더욱 달아 올라 행사장은 시간이 갈수록 열기로 가득찼다. 파독광부45주년기념행사의 밤은 이렇게 끝없이 깊어가고 있었다.
유로저널 프랑크푸르트지사 김운경
woonkk@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