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한국 영화 관련 행사가 개최되어 주영 한국문화원을 찾았는데 행사를 보조하고 있는 젊은 영국 남성이 눈에 들어왔다. ‘문화원 직원은 아닌 것 같은데, 대체 누구지?’ 호기심이 생겼던 차, 우연한 기회로 인사를 나누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제법 능숙한 한국어로 인사를 건네왔다. 바로 오늘 인터뷰의 주인공 제이슨(Jason Bechervaise)과의 첫 만남이었다.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한 제이슨은 한국 영화에 상당한 관심과 훗날 한국 영화와 관련된 일을 꿈꾸는 영화학도였다. 최근 몇 년 사이에 해외에서 한국 영화의 인지도와 인기가 상승했지만, 이렇게 전문적으로 영화를 전공하는 외국인이 한국 영화에 이토록 큰 관심과 애정을 갖고, 또 실질적으로 한국 영화와 관련된 일에 참여하는 경우는 흔치 않은 일이다. 이후로도 문화원에서 한국 영화 관련 행사가 있을 때마다 여러 번 제이슨을 마주치게 되었고, 오늘 드디어 유로저널 독자들에게 제이슨을 소개하게 되었다.

유로저널: 이렇게 만나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한국 독자분들을 위해 간단한 본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제이슨: 네, 저 역시 한국과 특별히 한국 영화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던 차, 이렇게 좋은 기회를 통해 한국 독자분들께 인사 드릴 수 있게 되어서 너무나 반갑습니다. 저는 올 해 25세로,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했으며 현재 SOAS, University of London 대학에서 국제 영화학 석사 (MA in Global cinemas) 과정에 있습니다. 그리고, 2년 전 한국인 아내를 만나 결혼했습니다.

유로저널: 어떠한 계기로 영화를 전공하게 되었는지요?

제이슨: 저는 어렸을 때부터 항상 영화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영화는 단순히 가장 인기 있는 대중문화의 한 형태이지만, 저는 영화가 단순한 오락을 넘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삶에 대해 어떤 메시지를 건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의 이러한 측면이 저를 매료시켰죠. 더욱이 영화는 외형적인 면에서나 개념적인 면 모두 상당히 복잡한 존재이며, 이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화를 전문적으로 공부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유로저널: 한국 영화에는 어떠한 계기로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요?

제이슨: 사실, 제 아내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 관한 어떤 것에도, 혹은 아시아권에 대한 어떤 것에도 별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저희가 데이트를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제 아내가 한국 영화 산업의 규모가 상당하다고 얘기해 주었는데, 별로 믿겨지지가 않더군요. 그래서, 한국 영화를 접해보려고 HMV(영화, 음반 판매 체인)에 가서 ‘공공의 적’과 ‘집으로’를 구입해서 보았는데, 제법 괜찮았지만 그렇다고 대단한 인상을 받지는 못했더랬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 보게 된 ‘살인의 추억’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저는 지금도 ‘살인의 추억’을 영화관에서 보던 수간을 기억합니다. 작품의 깊이와 긴장감은 저를 압도했고, 저는 극장에서만 ‘살인의 추억’을 네 번이나 보았습니다. 그 이후로는 한국 영화에 완전히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유로저널: 한국 영화와 한국 영화 산업에 대해 대체적으로 어떻게 보고 있는지요?

제이슨: 저는 한국 영화가 내용이 담고 있는 내러티브(이야기)적인 측면에서나 그것을 표현하는 스타일적인 측면 모두에서 상당한 독창성과 혁신성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메시지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내러티브의 균형을 잘 잡고 있으며, 이를 통해 관객들에게 상당한 의미를 전달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고 봅니다. 한국 영화는 항상 관객들에게 무언가 할 얘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최근 한국 영화들이 헐리우드 영화를 모방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면서, 이러한 한국 영화의 개성이 사라져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최근 영화들인 ‘세븐 데이즈’,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같은 영화들은 물론 상당히 잘 만들어진 좋은 작품들이지만, 실질적으로 한국 사회를 담아내고 있지는 않습니다. 바라기는 한국의 영화 감독들이 과거 그들이 강점을 보였던, 깊이와 긴장을 담고 있는, 또 한국만이 보여줄 수 있는 개성을 담고 있는 영화들을 다시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 영화 산업의 강점 중 하나라면 그것은 한국 영화가 ‘한국의 것’으로 고유함을 지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령, 영국의 영화 산업과 비교해 보면, 헐리우드의 자본이 개입되지 않고 순수하게 영국에서 제작되는, 말 그대로 ‘영국 영화’는 매우 적습니다. 물론, 영국 영화인들이 헐리우드 영화 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다양한 영화 활동을 하고 있지만, 그들이 참여했다고 해서 그것을 ‘영국 영화’로 규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와 달리, 한국 영화는 말 그대로 고유하게 ‘한국 영화’로서 존재하고 있는 만큼, 이를 기반으로 헐리우드 영화와 대적할 수 있다고 봅니다.

유로저널: 가장 좋아하는 한국 영화, 감독, 배우(남&여)는?

제이슨: 앞서도 언급한 것처럼 심오함이 담겨 있는 ‘살인의 추억’이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며, 당연히 본 작품을 연출한 봉준호 감독을 가장 존경합니다. 배우는 설경구와 문소리를 가장 좋아합니다. 그들은 맡은 배역에서 상당한 강렬함을 자아내는 배우들입니다. ‘오아시스’의 경우 그 대표적인 예가 되겠습니다.

유로저널: 그렇다면 가장 실망한 한국 영화는?

제이슨: 최근 영화들 중에서 실망한 작품이 있다면 5.18 민주화 운동을 다룬 ‘화려한 휴가’였습니다. 주제를 표현하는 방식이 지나치게 가볍고, 상업적인 느낌이었습니다. 제 의견으로는 5.18 민주화 운동과 같은 슬픈 역사를 담아낸다면 보다 어둡고 단호한 톤으로 그리는 편이 좋았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화려한 출연진으로 구성되어 있음에도, 영화 속 등장 인물들 모두가 공감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특히, 제가 정말 존경하는 배우인 안성기는 아쉽게도 이 작품에서는 마치 다른 행성이 와 있는 것처럼, 확신이 결여된 연기를 선보인 것 같습니다. 듣기로는 한국에서는 상당히 흥행에 성공했다고 하는데, 아마 제가 외국인이기 때문에 한국의 역사적인 문제를 접하는 과정에서 한계가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차라리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이 5.18 민주화 운동을 오히려 보다 제대로 그려냈다고 생각합니다.

유로저널: 외국인으로서 한국 영화를 관람할 기회를 갖고, 또 관련 자료를 구하는 것이 수월했는지요?

제이슨: 최근 몇 년에 걸쳐 영국에서도 한국 영화를 구하기가 상당히 수월해진 것 같습니다. 2004년도에 ‘올드보이’와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개봉되어 좋은 반응을 얻은 이후, 영국의 영화 배급 업체들이 한국 영화 공급에 본격적으로 투자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현재 영국의 소매점에서 제법 많은 한국 영화들을 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들 대부분이 판매를 목적으로 영국 관객들의 취향을 고려해 선별된 영화들인 만큼, 충분한 다양성을 확보하지는 못했지요.

또한, yesasia.com과 같은 인터넷 경로를 통해 영국 내에서는 구입하기 어려운 한국 영화 DVD를 구입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다운로드 문제로 DVD 시장이 위축되어서인지, 제작자들이 DVD를 충분한  수준으로 제작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 결과, 구하기 어려운 영화들도 많습니다. 또한, 가격 역시 영국과 비교했을 때도 상당히 높게 책정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조만간 보다 저렴해질 것으로 보이긴 합니다만.

그 외에도 영국에서는 DVD로 볼 수 없는 영화들을 관람할 기회를 제공하는 다양한 한국 영화 페스티벌이 개최되고 있고, 주영 한국문화원에서도 월 2회씩 한국 영화를 상영하고 있으며, 방대한 목록을 갖춘 DVD를 문화원에서 감상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진흥위원회(Korean Film Council: www.koreanfilm.or.kr)는 영어로 된 한국 영화 자료들을 제공하는데 있어서 어떤 찬사로도 부족할 만큼 훌륭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웹사이트에서 매우 유용한 자료들을 직접 다운받을 수도 있고, 너무나 친절하게도 제게 인쇄된 자료들을 무료로 보내주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 자료들을 연구 자료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었지요. 영화진흥위원회는 한국 영화계에 있어서 정말 훌륭한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기관을 갖고 있는 나라는 많지 않습니다.

유로저널: 한국 영화가 외국인 관객들을 위해 보다 보강할 수 있는 사항이 있다면?

제이슨: 이전에 비해 한국 영화를 접하기가 훨씬 수월해졌음에도,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좀 더 많은 한국 영화들이 DVD로 제작되었으면 좋겠고, 자막도 보다 개선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훌륭한 성과를 보이고 있는 만큼, 그러한 노력들이 계속 이어진다면 아마도 추후 한국 영화는 국제 시작에서 더욱 번창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영화진흥위원회의 웹사이트가 방대한 자료를 담고 있지만, 인터넷 브라우저에서 탐색이 그다지 수월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영국에서 개최되는 한국 영화 페스티벌 역시 상업 영화뿐만 아니라 독립 영화를 비롯, 다양한 한국 영화들을 계속해서 선보인다면 영국에서 한국 영화는 꾸준히 사랑받을 것입니다.

유로저널: 사실, 요즘 한국 영화는 위기에 처했다는 시각이 지배적입니다. 제작 편수, 흥행 실적 모두 하락하고 있으며, 한국 관객들에게 예전처럼 사랑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원인은 무엇인지, 또 어떤 해결책이 필요할까요?

제이슨: 앞서 언급한 것처럼 아무래도 헐리우드 영화가 매우 인기가 높다보니 한국 영화들이 그것을 따라하는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이견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한국 영화가 헐리우드 스타일의 블록버스터 영화를 선보이고, 관객들에게 호응을 얻기 시작한 것은 ‘쉬리’를 기점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 이후 한국 영화가 선보인 상당한 진보는 긍정적인 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영화는 한국 영화만의 독창성에 재투자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령 ‘살인의 추억’이나 ‘엽기적인 그녀’ 같은 영화들이 담고 있는 독창성을. ‘엽기적인 그녀’는 전형적인 상업 영화였지만, 여성에 대한 주제를 효과적으로 담고 흥미로운 관점들을 선보였습니다. 무조건 헐리우드적인 느낌을 표방하기보다는 한국 영화만이 선보일 수 있는 독창성을 끊임없이 계발함으로써 한국 영화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그러나, 올해 흥행 돌풍을 일으킨 ‘과속 스캔들’이나 심지어 독립 영화임에도 놀라운 성과를 보인 ‘워낭소리’ 같은 영화들의 선전은 올해 한국 영화의 전망을 밝게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올해는 한국을 대표하는 거장 감독들의 작품이 대거 개봉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박쥐’, 이창동 감독의 ‘시’, 그리고 봉준호 감독의 ‘마더’ 같은 작품들이 상당히 기대됩니다. 특히, 메이저급 업체인 Pallisades가 박찬욱 감독의 ‘박쥐’의 영국 배급권을 얻었고, 런던에 기반을 둔 Focus Features가 본 작품에 공동 투자를 한 만큼, 영국 개봉 시 상당한 반응을 얻어낼 것으로 예상됩니다.

유로저널: 영국에서 특별히 한국 영화와 관련해 참여하는 일이 있나요?

제이슨: 영국에서 개최되는 다양한 한국 영화 페스티벌에 참여하고 있는데, 제게는 너무나 영예로운 일이며 또 즐겁게 참여하고 있습니다.

유로저널: 한국 영화를 떠나서 한국에 대해서 상당히 해박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한국과 관련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제이슨: 저는 다양성과 독창성 때문에 한국 음식을 좋아합니다. 매운 음식도 좋아하지요. 그러나, 그럼에도 사실 한국 음식을 처음 접하고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또, 한국의 사교, 여가 문화도 너무나 좋아합니다. 참 할 것들이 많더군요, 노래방부터 펑키한 술집까지. 한국인들은 항상 즐길 것들이 많고, 어떻게 즐겁게 사교, 여가 활동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친근하고, 보편적으로 그들의 속에 있는 것을 표현합니다. 영국 사람들은 속을 잘 드러내지 않는 면이 있어서 비교가 되더군요. 저는 한국이 일본과 중국에 다소 가려져서 아직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발견하지는 못한, 숨겨진 보석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다행히 그 보석이 이제는 보다 많은 이들에게 공개되고 있으며, 저는 이미 그것을 발견했고 그 안에 담긴 것을 너무나 즐기고 있습니다. 한국 문화에 대해 알면 알수록 더욱 놀라운 것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유로저널: 그렇다면 한국과 관련해 안 좋은 점이 있다면?

제이슨: 제가 발견한 바로는 한국인들은 무엇을 할 때 늘 서두르고 거의 쉬지를 않습니다. 물론, 이것은 다소 게으른 축에 속하는 영국인들에 비하면 단점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한국인들이 항상 “빨리 빨리”를 행하고 있는 것을 보다보면 정지 버튼을 누르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비교해 보면 게으른 영국인들라고 해서 일의 결과가 무조건 허술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부지런한 한국인들이라고 해서 일의 결과가 무조건 최고인 것만도 아닙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아마도 한국과 영국의 속도 문화 그 중간 지점이 가장 적당한 게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한 가지 더 바라는 점은 한국이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살 때 보다 용이하게 개선해 주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영국에서 사는 한국인들은 사실 영국인들이 하는 대부분의 것들을 똑같이 하면서 살 수 있습니다. 물론, 국가 수당이나 투표권 같은 몇몇 제한은 있지만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저의 경우 DVD를 대여하는 것도 외국인이기 때문에 어렵더군요. 외국인 신분증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도 그것을 받아주는 곳이 별로 없으니, DVD 대여나 휴대폰 마련과 같은 일들도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물론, 한국의 규정이 중요하고 필요한 규정들이겠지만, 그럼에도 어느 정도 선에서는 외국인들이 보다 편리하게 지낼 수 있도록 배려한다면 한국은 국제적으로 더욱 인기가 높아질 수 있을 것입니다.

유로저널: 미래의 계획과 꿈이 있다면?

제이슨: 제 꿈은 한국에서 영화 제작자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제가 극복해야 할 많은 장애물이 있겠지만요. 가장 중요한 항목이 한국어인 만큼, 현재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데 정말 쉽지 않은 언어인 것 같습니다. 그 다음에는 경쟁이 매우 치열한 영화 업계로 진입하는 과제가 기다리고 있겠지요. 계획으로는 일단은 영화 배급 분야에서 일을 한 뒤 점차적으로 제작 분야로 옮겨가고 싶습니다.

유로저널: 마지막으로 한국 독자들에게 전할 메시지가 있다면?

제이슨: 한국 영화를 전문으로 다루고 있는 제 웹사이트(www.koreanfilm.org.uk)를 많이 찾아 주시고, 여러분들의 의견을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유로저널: 오늘 너무나 좋은 얘기 들려주셔서 감사드리며, 특별히 한국 영화를 사랑해 주시고 한국 영화의 발전을 위해 응원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유로저널 전성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