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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2024.12.08 15:10
원주 지광국사탑, 113년 만에 고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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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지광국사탑, 113년 만에 고향으로 "국보 ‘원주 법천사터 지광국사탑’이 1,975㎞ 긴 유랑 끝에 113년 만에 복원을 마치고 고향 땅에 우뚝 섰다."고 한국 언론들이 앞다투어 보도했다.. 지광국사탑은 승탑 전체에 걸쳐 코끼리 눈 무늬, 구름무늬, 넝쿨무늬, 불보살, 봉황, 신선, 구슬, 가릉빈가(불경에 나오는 상상의 새) 등 화려한 무늬가 돋보이는 승탑이다. 가장 아름다운 승탑(僧塔)으로 평가받는 지광국사탑은 일제강점기인 1911년 처음 반출된 뒤 1,975㎞에 달하는 길고 긴 유랑 생활을 시작했다. 서울 명동(1911~1912)을 거쳐 일본으로 반출되었지만, 조선총독부의 압력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때 조선총독부는 문화재 약탈과 불법 반출에 관한 나라 안팎의 비난이 거세지자 이를 잠재우기 위해 직접 운송비까지 내가며 찾아와 경복궁에서 열린 조선물산공진회에 내놓았다. ▲ 경복궁에 있던 국보 ‘원주 법천사터 지광국사탑, ( 문화유산청 전재 ) 이렇게 돌아온 지광국사탑은 6·25 때 폭격을 맞아 1만 2,000개로 조각났다가 1957년 시멘트로 땜질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땜질 부분까지 떨어지자, 보존 처리를 위해 2016년 해체돼 대전 국립문화유산연구원으로 옮겨졌고, 5년 동안의 전면 해체ㆍ보수 공사를 한 뒤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과 원주시는 11월 10일 오랜 유랑 생활을 끝내고 원래 자리였던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법천사터에 다시 세운 지광국사탑을 기려 복원 기념식을 개최했다. 아름다운 지광국사탑이 이제라고 복원되어 고향으로 돌아온 것은 다행이다. < 기사: 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제공 > 한국 유로저널 노영애 선임기자 yanoh@theeuro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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