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불황에 지친 유럽의 표심이 민족주의와 반(反)유럽통합의 기치를 내건 극우성향의 정당들을 향하고 있다. 서울 신문 18일자 보도에 따르면 소수자에 대한 관용 문화가 뿌리내린 북유럽에서조차 반외국인 정서를 자극한 정당들이 선거에서 약진하며 유럽의 정치·사회 지형을 더 각박하게 만들고 있다.
민족주의 지지와 이민자·무슬림에 대한 반대, 반유럽통합 등을 공약으로 내건 우파 정당의 약진은 2000년대 후반 들어 북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치현상이 됐다.
반 유럽통합적인 정서의 확산과 소수자에 대한 관용 정신의 퇴색은 이주노동자 규제정책에서도 두드러지고 있다. 경제난 속에서 “유럽통합으로 국경이 사라지면서, 이주노동자들이 ‘우리’ 일자리를 빼앗아가고 사회 분위기를 흐리고 있다.”는 반감에 극우 정당들이 편승하면서 국수적인 분위기가 갈수록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주요정당에 대한 유권자 환멸 때문
핀란드에서 17일 열린 총선에서는 반이민과 반외국인, 반유럽통합 등을 구호 삼아 선거전을 벌인 극우 정당 ‘진짜 핀란드인’이 19%의 득표율로 전체 200석 가운데 39구석을 차지해 창당 이후 처음 제3당이 됐다.
‘진짜 핀란드인’당의 비상에는 당수인 티모 소이니(48)는 경기침체 등으로 위축된 핀란드인의 마음을 극우적 포퓰리즘 공약으로 사로잡았다. 특히 포르투갈에 대한 유럽연합(EU)의 구제금융안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히는 등 친EU 노선을 걷는 기존 보수정당과도 선을 그었다. 그는 최근 독일 슈피겔지와의 인터뷰에서 “남의 나라의 빚을 핀란드 납세자가 부담하는 데 대해 분노를 느낀다.”고 말한 데 이어 핀란드 현지TV와의 인터뷰에서도 “포르투갈 구제금융의 조건이 바뀌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2007년 덴마크 총선에서 극우 인민당이 13.9%의 득표율을 기록했고, 2009년 9월에는 노르웨이의 극우 진보당이 22.9%로 선전했다.
특히 지난해 9월 스웨덴 총선에서는 극우 성향인 스웨덴 민주당이 의회 진출 최저선인 4%를 넘는 5.7%를 득표해 처음으로 원내에 진출했다. 극우 정당이 힘을 얻으면서 중도성향의 기존 정당들은 이민과 복지 등의 정책 추진에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 프랑스에서는 아버지 장마리 르펜(82)의 뒤를 이어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의 대표가 된 마린 르펜(42)이 최근 내년 대선 지지율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해 프랑스 사회를 놀라게 했다.
표심 잡기에 여념이 없는 유럽 각 정부는 외국 이주노동자 규제정책을 속속 내놓고 있다. 네덜란드 의회는 이르면 상반기 중 이중국적 폐지, 네덜란드어 시험 통과기준 강화, 3개월 이상 실직 시 강제 추방 등을 골자로 한 법안을 상정할 예정이라고 시사주간지 타임 등이 17일 보도했다.
네덜란드는 자국민과 결혼한 외국인이 모국 국적을 유지하도록 허용해 온 법 조항을 폐지하고, 이민자를 대상으로 실시되던 네덜란드어 시험 통과기준도 강화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도 지난 14일 이민자 감축계획을 밝혔고, 스페인은 이주자 출국을 촉진시키기 위해 3년 내 재입국하지 않는다는 각서를 쓴 이주자에 대해서 편도 항공편 제공과 1만 달러 지원제까지 도입하려 하고 있다. 핀란드 이민정책도 극우 정당인 ‘진짜 핀란드인’당의 약진으로 보수화가 불가피하게 됐다.
●중동 등 탈출주민 유입도 우경화 한몫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정정 불안으로 중동 및 북아프리카 주민들의 탈출 행렬이 유럽대륙으로 이어지자 이민자들에 대한 유럽인들의 경계심과 국수적 정서는 더 높아지고 있다.
이주노동자를 둘러싼 국가 간 갈등도 벌어지고 있다. 17일 프랑스 정부는 튀니지 난민 출신 이주자를 싣고 국경을 넘어오는 이탈리아 열차의 운행을 강제 중단시켰다.
이탈리아 정부는 최근 람페두사 난민수용시설에 있던 튀니지인 2만 6000여명에게 임시거주증을 발급한 뒤 임시거주증 소지자는 프랑스 등 다른 EU 회원국을 비자 없이 여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유럽의 거세지는 국수주의적 정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프랑스는 지난해 떠돌이 집시들을 재입국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고 강제출국시킨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