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은정 기자의 영화 리뷰> 압바스 파델Abbas Fahdel, 프랑스 개봉 2016년 2월 10일
< 고국: 이라크 영년Homeland : Irak année zéro 1, 2 >
영화가 기록한 이라크 연대기
전쟁은 언제나 고스란히 민초의 몫이다. 그 목적이 공격이었던 방어였던. 21세기가 그렇게 분홍빛은 아닐 것이라는 것을 알리기라도 하듯 9.11테러를 빌미로 한 미국의 이라크 공습은 초유의 피해를 내면서 끝났고 그 여진은 가라앉지 않았다.
<고국 :이라크 영년>은 걸프전의 여운이 고스란히 남아있던 이라크에 미국의 또 하나의 공습이 몰아 닥친 전후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프랑스에 정착한 압바스 파델 감독은 2002년 전운이 감도는 고향 이라크를 찾아 곧 사라져버릴지도 모르는 자신의 소중한 가족들의 이야기(1부)와 2003년 공습 후 미군이 주둔한 이라크 폐허 속 사람들의 이야기(2부)를 기록한다. 5시간 30여 분에 이르는 방대한 이라크 연대기는 감독의 가족들을 중심으로 전쟁의 공포 속에서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에 초점을 맞춘다. 사담 후세인의 독재와 이를 처벌(감히!)한다는 명목으로 진두중인 미군의 점령하에서 보통 사람들이 살았고 생존했다.
후세인 몰락 전의 이야기를 담은 전편은 공습을 대비해 식량을 비축하고 정원에 우물을 파는 중에서도 아이들은 학교를 가고 어른들은 출근을 하고 가족들은 모여 잡담을 나누는 너무나 평범한 이라크 한 가정의 일상 시간 속으로 우리를 끌어들인다. 웃고 울며 떠들고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삶은 단순하면서도 특별하다. 반복적으로 보여지는 텔레비젼 속 사담 후세인의 모습에서 독재의 그림자는 짙게 깔려있으며 곧 들이닥칠 전쟁에 대한 두려움은 일상에 잠식해 있다. 소소한 가족들의 일상에 다가간 <고국 :이라크 영년>의 중심부에는 감독의 조카인 어린 하이다가 있다. 전쟁이 나면 학교를 안가도 되고 시골로 갈 수 있다며 은근 좋아하는 듯한 하이다의 모습은 철부지 같아 보이지만 이미 걸프전이라는 전쟁의 경험을 가진 이들에겐 전쟁이 하나의 일상이다. 폭격으로 인한 파편을 막기 위해 햇빛이 내리는 큰 유리창문에 테이프를 붙이는 담담한 하이다는 13살의 어린 소년이 아니다. 가족의 일상을 따라가던 전편의 카메라는 이어 후편에서 미군의 폭격이 지나간 바그다드의 거리로 나선다. 전쟁이 할퀴고 간 이라크는 붕괴되었고 약탈자가 횡행하는 거리에서 민중들은 비참함 속에서도 살아가고 있다. 카메라는 하이다와 함께 마치 이라크의 미래에 대한 한줄기 희망을 찾기 위한 몸부림처럼 폐허 속의 이라크인들, 그리고 아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기록한다. <고국 :이라크 영년>에서 보여지는 일상의 파편화된 상황들은 관객의 심리적 동화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지만 관음적 위치로의 전락을 막기 위한 장치일 것이다. 압바스 파델 감독은 가족 이야기라는 아주 사적인 영역을 이라크 사회의 사적 영역으로 확장시켜 감정의 소비를 지양하고 끔찍한 시간을 지나온 민초들의 초상화를 그려낸다.
다큐멘터리의 특징 중 하나는 지금 카메라가 돌고 있는 그 순간들의 끝을 알 수 없다는 것에 있다(물론 특정한 시나리오로 만들어지는 경우도 없진 않다). 특히 어느 날 문득, 한 느낌에 이끌려 무작정 카메라를 들고 어떠한 상황 속에 들어간 <고국:이라크 영년>과 같은 찍기 방식은 감독 자신에게조차 확실한 것은 없다. 이것이 영화로 만들어 질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그대로 한 구석에서 잠자게 될 것인지.
<고국:이라크 영년>의 시간은 이미 십 여 년 전이다. 이 영화가 세상과 만나게 되기까지 많은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이 영화의 중심에 서 있던 감독의 조카 하이다가 촬영이 끝난 후 무법천지가 되어버린 바그다드의 거리에서 총기 사고로 죽었기 때문이다. 감독은 하이다의 죽음과 함께 끝난 이 기록을 영화로 만들 수 있을지, 아니 만들어야 할지 고민했을 것이다. 1편의 중반부를 넘길 쯤 하이다의 죽음을 알리는 자막은 감독의 영화적 윤리를 대변한다. 전쟁영화 속 주인공의 생사는 영화의 긴장감을 높이는데 기여한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에 하이다의 죽음을 알리는 것은 <고국 :이라크 영년>에게 허락되지 않는다. 이 영화는 스크린 위의 전쟁이 선정적 되기를 거부한다. 영화를 이끌어가는 어린 소년은 이제 전쟁의 유령이 되어 그 때의 시간으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이라크 전쟁은 과거가 되었지만 <고국 :이라크 영년>은 그 시간을 ‘하이다’의 영령과 함께 현재의 시간과 조우함으로써 새로운 시간을 만들어낸다. 영화가 끝없는 회귀의 장이 되고 기억이 된다.
<사진 알로시네>
프랑스 유로저널 전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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