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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사는 찢어지게 가난한 배고라 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달동네 꼬불꼬불 골목길을 한참 올라간 곳에 비바...

by eknews  /  on Apr 13, 2011 18:26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사는 찢어지게 가난한 배고라 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달동네 꼬불꼬불 골목길을 한참 올라간 곳에 비바람을 겨우 막을 정도의 판잣집에서 겨울이면 아내와 어린 아들과 함께 꼭 껴안고 서로의 체온으로 강추위를 버텨보지만 나무 벽 틈새로 파고드는 살을 애는 찬바람에 밤잠을 설칩니다. 또 비바람이라도 몰아치는 날에는 온 집이 바람에 날려갈 듯이 덜컹거리고 지붕에서 새는 빗물에 방바닥이 물바다가 되기도 합니다. 일거리가 없는 날이면 멀건 죽 한 사발씩을 마시고 하루 종일 누워서 지냅니다. 밤마다 저 멀리 내려다 보이는 도시의 휘황찬란한 불빛 속을 분주히 오가는 차량과 사람들을 보면서 신세 한탄하는 것도 이제는 지쳤습니다.
 어느 날 하루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모처럼 불고기에 상추쌈을 곁들여 배불리 저녁을 먹고 노곤하여 누워 있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한 줄기 빛이 세 사람에게 내려 꽂히는 것이었습니다. 눈앞이 아뜩하더니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얼마가 지났는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으리으리하게 큰 집의 거실 소파에 세 가족이 누워있었습니다. 바닥에는 페르시안 카페트가 깔려있고 벽에는 작년에 소더비 경매에서 산 세잔느의 그림이 걸려있습니다. 거실 건너편 장식장에는 야드로와 스와로우스키 크리스탈 소품이 반짝거립니다. 가정부가 기다리고 있다가 따뜻하고 향기로운 자스민 차를 가져옵니다. 정원사와 경비원은 야간 교대 근무를 하느라 경비실에 있습니다. 배고라 씨는 재벌 회사의 회장이 되어있었습니다. 적당히 푹신한 침대에서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 이태리에서 직수입한 샤워부스에서 샤워를 합니다. 전날 밤 정부 고위인사와 함께 한 만찬에서 과음하였다고 영양사가 특별히 짜놓은 식단대로 요리사가 준비한 아침을 먹고 북경 법인장이 보내준 보이차를 마시고 있으면 수행비서가 와서 정중히 인사하고 서류 가방을 챙깁니다. 운전기사가 문을 열어주는 최신형 벤츠를 타고 회사에 도착하면 비서실장의 영접을 받으면서 사무실에 들어서면 비서실장이 그 날 일정을 챙겨줍니다. 일정을 점검하고 비서실장에게 업무 지시를 하고 나면 임원들이 대기하고 있는 회장실 옆 회의실에 가서 경영회의를 주제합니다. 일요일에는 사업파트너와 골프를 치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가족들과 일류 호텔에 가서 쇼핑도 하고 저녁을 먹습니다. 어디를 가도 최고의 대접을 받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 변호사가 회계사를 대동하고 와서 재산관리 상황과 새로운 투자방안에 대해 브리핑합니다. 재산이 눈덩이처럼 불어납니다. 세상에 부러운 것이 아무 것도 없고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갑자기 소란스러운 소리에 잠을 깨었습니다. 이웃집에서 또 한바탕 난리가 났습니다. 허구한 날 술 마신다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여인의 신경질적인 고함에 뒤이어 쨍그랑 우당탕 깨지고 부서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꿈이었습니다. 꿈이었지만 너무 생생해서 한 동안 멍하니 앉아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아내와 아이를 둘러봅니다. 아내와 아이도 멍하니 앉아있다가 서로 시선을 맞춥니다. 서로 꿈꾼 이야기를 합니다. 이상한 일도 다 있습니다. 세 사람이 같은 꿈을 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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