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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knews15 / on Mar 18, 2013 21:41
어떤 사물을 백 사람이 보면 백사람이 다 다르게 봅니다. 하나의 사물을 백 사람이 백 가지의 모습으로 본다는 것은 사물의 실상을 보지 못하고 허상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그렇게 봅니다. 보는 순간(인식하는 순간) 본 것(인식한 것)을 마음에 담고 담는 순간 담은 것(인식한 것)으로 사물을 봅니다. 이것이 한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을 (눈으로) 보고 ‘느끼하다’고 (마음이) 인식하는 순간 느끼하게 봅니다. 옆에 있는 사람은 ‘담백하다’고 마음이 인식하는 순간 담백하게 봅니다. 실제 있는 사람과 (마음이 인식한) 느끼하거나 담백한 모습이 겹쳐져 있습니다. 각자가 마음에 담아놓은 것으로 봅니다. 이렇게 마음에 담아놓은 것이 허상입니다. 허상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가 없고 자기만 있다고 생각합니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보아서 마음에 담은 것(인식된 것)은 모두 허상입니다. 마음에 담은 것으로 사물을 보는 것은 실제로 있는 사물을 보는 것이 아니고 허상을 보는 것입니다. 마음에 담은 것이 실제의 사물에 덧씌워져 있어(실제의 사물과 마음에 담은 것이 겹쳐져 있어) 실제의 사물을 보는 것 같지만 덧씌워진 허상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 있는 공간도 그렇게 보고 모든 현상도 그렇게 봅니다. ‘나’라고 하는 존재도 마찬가지로 허상을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이 오감으로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느껴서 인식한 일체는 허상입니다. 그러니 허상의 세상에서 허상의 존재가 허상의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오감으로 인식하고 배우고 경험한 것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위를 합니다. 오감으로 인식하고 경험하고 배운 것 일체가 허상이어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하는 것이 모두 실이 아닌 허입니다. 지난 일들을 생각해 보면 자기 마음에 담아놓은 허상 속에 있었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고향시절 있었던 일을 생각해 보면 그 때의 장소와 함께 고향의 산천과 마을의 모습과 어린 시절 동네 친구와 그 시절의 어린 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모두 내 마음에 담겨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도, 중고등학교 시절도 모두 마음에 담겨있습니다.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살았던 것도 직장생활을 했던 것도 사연 사연의 장소, 인연, 나의 모습이 그대로 저장되어있습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하루를 보냈던 것도 떠올려 보면 그대로 떠오르고 ‘나’는 마음에 담아놓은 것 속에 있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마찬가지로 그 속에 있습니다. 고향에 대해 이야기해 보라고 하면 내 마음에 담아놓은 것을 떠올려서 그것을 이야기합니다. 또 학교에서 배운 것을 물어보면 마음에 담아놓은 지식을 가지고 말을 합니다. 담아놓지 않은 것은 생각할 수도 말할 수도 없습니다. 이렇게 마음에 담아놓은 것들은 모두 허상입니다. 마음에 담아놓은 것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위를 합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가 말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Je pense, donc je suis)'는 철학적 명제는 유명합니다. 이 말은 다른 모든 사물은 의심할 수 있어도 생각하는 나는 의심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본바 생각하는 것 자체가 허상입니다. 그리고 애시당초 ’나’라는 존재 자체가 허상의 존재입니다. 허상의 존재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뿐입니다. ‘나’는 있다고 생각해서 있는 존재, 생각 속의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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