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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로저널 / on Jan 08, 2009 22:33
과학기술이 발달하여 정교한 로봇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자동차 공장에서 페인트 작업이나 용접과 같은 사람이 하기에 위험하고 힘든 일을 공업용 로봇이 대신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청소를 하거나 거동이 불편한 환자나 노인을 보살피는 로봇까지 나왔습니다. 인간을 닮은 로봇도 개발되어 나날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뒤뚱거리며 걷는 수준이더니 지금은 뜀박질에 계단을 오르내리고 춤을 추기도 합니다. 간단한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사람이 지시하는 대로 일을 해내기도 합니다. 학습능력도 가지고 있어 몇 번 같은 일을 되풀이하고 나면 나중에는 스스로 상황을 인식하여 그 일을 한다고 합니다. 이미 연산능력은 사람을 능가한지 오랩니다. 최근에는 단순한 동작을 하는데 그치지 않고 말을 하고 사람처럼 감정을 표현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기술이 발전해 나간다면 사람에 가까운 로봇이 개발될 날도 머지 않은 것 같기도 합니다. 이처럼 로봇이 걷고 뛰고 춤추고, 울고 웃고 한다고 해서 로봇이 살아있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먹고 말하고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한다고 해서 몸이 산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마음이 사는 것이지 몸은 마음의 도구일 뿐입니다. 의식이 없이 식물인간이 되어 누워있는 사람은 현대 의학기술로 목숨은 붙여놓았지만 한 인간으로서 삶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의식(마음)이 없기 때문에 단순한 물체에 다름 아닙니다. 만일 식물인간이 되어 누워있는 사람 옆에 식물 개가 누워 있다면 모양이 다를 뿐 식물 개나 식물 사람이나 물체에 불과합니다. 개가 의식이 되돌아와서 낯선 사람을 보고 멍멍 짓고 주인을 보고 꼬리를 흔들 때 한 마리 개로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식물인간도 의식이 돌아와서 옆에서 간호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음식을 먹고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할 때 한 인간으로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삶은 마음이 사는 것입니다. 마음이 삶의 주인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주인인 마음을 도외시하고 몸을 위주로 살고 있습니다. 몸을 아끼고, 가꾸고, 몸이 바라는 대로 힘든 일이나 더러운 일은 피하고 게으름을 피우기도 합니다. 마음의 도구인 몸은 당연히 잘 관리하여야 합니다. 먹여주고 운동도 적절히 시켜주고 또 쉬게 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도구를 잘 쓰기 위해 단순히 관리하는 것이 아니고 ‘남이 그렇게 하니까 나도 그렇게 해야 해’ ‘남보다 더, 잘 해야지’ 하는 시기하는 마음과 욕심으로 지나치게 하는 수가 많습니다. 에너지 공급을 넘어서 보다 맛있는 것을 찾아 욕심으로 먹다 보니 영양이 과다하여 병을 부르기도 합니다. 추위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보다는 과시하기 위해 지나치게 사치스런 옷을 몸에 걸치기도 합니다. 손가락 끝에 가시 하나만 박혀도 그것 때문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몸을 가꾸는데 많은 시간을 들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수시로 상처 입는 마음에는 거의 무관심합니다. 몸을 아름답고 강하게 가꾸는 만큼 마음을 풍요롭게 가꾸는 일에는 소홀합니다. 주인은 홀대하고 종을 극진하게 모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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