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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가 유럽을 무시했다고?
    5월 미-EU 정상회담 취소
    무시당했나 아니면 무시당해도 할말이 없는가?

    유럽연합(EU)과 미국은 일년에 두 번씩 브뤼셀과 워싱턴 D.C.를 오가며 정상회담을 개최해왔다. EU에서는 행정부 역할을 하는 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 The Commission) 위원장과 순회의장국 수반이 EU를 대표해 미국 대통령을 만났다. 그런데 올 해 5월 예정된 미국과 EU 간의 정상회담이 취소될 지경에 이르렀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국내 업무에 너무 바빠 EU와의 정상회담에 참석할 수 없다’고 통보해왔기 때문이다.
    EU 각 회원국이나 언론은 이를 두고 상반된 분석을 내리고 있다. EU가 아프가니스탄과 중동 등에서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어 미국이 EU를 무시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냉소적인 의견부터 미국이 중요한 맹방인 유럽을 무시했다는 비판까지 다양하다. 오바마 대통령을 환대하고 지지해 온 유럽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사정의 전후를 분석해보자.

        순회의장국 스페인과 유럽이사회 상임의장 헤르만 반 롬푸이
    우선 EU는 누가 정상회담에 참여하는가를 두고 낮 뜨거운 논쟁을 벌였다. 리스본조약(개혁조약)이 지난해 12월 발효되어 회원국 각 수반들이 모여 큰 틀을 논의하는 유럽이사회(European Council)는 상임의장(이른바 유럽대통령)을 가지게 되었다. 벨기에 총리 출신인 헤르만 반 롬푸이가 국제무대에서 EU를 대표하게 되었고 그는 1월부터 임무를 시작했다. 이전에는 회원국들이 6개월마다 돌아가며 EU를 대표했다(순회의장국). 대신 회원국 장관들이 모여 각 종 법안을 만드는 각료이사회(Council of European Union)는 순회의장국(rotating presidency)이 그대로 유지된다. 외무장관뿐만 아니라 재무나 경제장관, 노동장관 등 많은 각료이사회 모임이 있는데 순회의장국은 6개월 동안 이런 모임을 주재하고 의사록을 기록하며 EU차원의 업무를 맡고 있다.
    따라서 유럽이사회 상임의장이 임명된 상황에서 미국과의 정상회담에 신임 상임의장과 집행위원회 위원장이 참여하는 것이 당연하다. 유럽이사회의 순회의장직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각료이사회 순회의장국 스페인은 오바마 대통령이 자국의 수도 마드리드로 5월 정상회담에 와야 하며 스페인이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순회의장국이라는 기득권을 끝까지 놓지 않겠다는 논리인데 EU를 전공한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스페인은 말도 안되는 억지를 부리고 있다. 서로 이렇게 누가 참여하는 가를 두고 논쟁을 벌이는 와중에 오바마 대통령이 건강보험개혁과 금융규제 등 국내 업무가 산적해 EU와의 정상회담에 참석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미국의 EU 무시는 당연한 것”
    이런 배경에서 EU를 좀 더 비판적으로 보는 인사들은 EU가 맹방 미국에게 무시당해도 할말이 없다고 주장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말 아프가니스탄에 군대를 추가 파병한다고 발표했고 이를 실행에 옮기고 있다. 또 지난해 크리스마스 당시 미국 민항기 폭파기도 시도 등 테러와의 전쟁은 끝이 없는 상황에서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이라는 테러와의 전장에서 승리를 거두려 한다. 그런데 유럽연합 회원국 가운데 독일이나 영국 등은 아프간 추가 파병을 꺼리고 몇몇 국가는 일부 병력을 철수했다. 중동이나 우크라이나에서도 EU 회원국들은 서로 자신의 앞가림에 바빠 미국이 원하는 만큼 적극적으로 관여하거나 지원해주지 못하고 있다. 물론 미국이 원하는 만큼 다 해주는 것이 EU 회원국들이 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테러와의 전쟁은 EU 회원국이 말로는 미국을 지원한다고 공감해왔으나 실제 파병 등은 매우 꺼려왔다.
    미국은 EU가 세계 최대의 단일 시장에 걸맞는 역할을 군사와 정치 등 각 분야에서도 수행하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EU 회원국들은 여전히 이런 문제에서 의견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분열되어 있다. 터키의 EU가입을 두고 프랑스는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고 독일도 반대한다. 반면에 영국과 다른 회원국들은 터키의 EU가입을 적극 지지한다.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으로 아시아와 유럽의 길목이라는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곳에 위치한 터키가 EU 회원국이 되면 이슬람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유럽에도 안정을 가져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미국은 경제뿐만 아니라 군사와 정치 등에서도 한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유럽연합(EU)을 원하지만 EU는 여전히 수사(rhetoric)와 현실 간의 괴리를 보여주고 있다. 미국이 EU와의 정상회담을 취소한 것은 EU를 만나봐도 별로 얻을 것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EU는 누가 참석하느냐의 문제부터 아프가니스탄 파병 등 핵심 문제에서 미국과 보조를 맞추지 못했다. 따라서 미국이 EU를 무시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안 병 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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